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소풍
'글. 유병숙'

바그마티(Bagmati)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동쪽에 자리한 성지이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내리며 형성된 강은 또 하나의 성지인 갠지스 강의 상류이기도 하다. 이 강변에 파슈파티나트 사원(Pashupatinath Temple)이 있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시바 신을 모신 신성한 사원으로 명성이 드높지만,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으로 더 유명했다. 지위가 높거나 부자는 상류의 화장터에서, 비천할수록 하류로 내려갔다. 재가 되면 모두 하나의 강으로 흘려보내건만 마지막 의례에도 카스트제도는 진행 중이었다. 살랑 바람이 불었고, 따가운 햇볕이 내리꽂혔다. 구름 한 점 없는, 귀천(歸天)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때마침 강둑의 아랴 갓(Anrya Ghat)에서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금빛 비단 천을 덮고 주홍색 꽃 타래를 휘감은 시신이 대나무 들것에 실려 왔다. 망자(亡者)가 장작 단 위에 반듯하게 올려졌다. 26개에 불과한 장작더미가 소멸을 예고하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 허상처럼 느껴졌다. 단 위의 사자(死者)는 낙엽처럼 메말라 보였다.
부모가 죽으면 아들들은 삭발을 했다. 시신의 둘레를 돌다가 걸음을 멈춘 장남에게 불이 전달되었다. 먼저 고인의 입에 물린 기름 먹인 실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올랐다.
시신을 짚으로 덮자 고요가 엄습했다. 불이 댕겨졌다. 순식간에 주홍의 불꽃이 너울댔다. 한 생(生)이 무(無)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울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너울을 쓴 여인들이 눈물을 찍어냈다. 가족에 둘러싸인 고인은 외롭지 않아 보였다.
화장터는 만원이었다. 시신들이 한쪽에서 화장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손과 발을 강물로 닦으며 오욕에 찌들었던 삶을 씻어냈다. 강물은 온통 먹색을 띠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이 강에 뿌려지길 일생 소원한다. 고통스러운 윤회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강가에서의 화장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마치 우리가 잃어버렸던 시원(始元)을 찾은 듯했다.





강물로 들어가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긴 줄에 자석을 매달고 물속을 헤집고 다녔다. 흘려보낸 망자의 노잣돈을 찾고 있는 거였다. 내 눈이 철퍽거리는 소년의 걸음을 따라다녔다. 아이는 둥둥 떠다니는 옷가지 몇 개를 주워들었다. 죽음을 훔치는 삶, 불경하게도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었다.
화장장 근처 공터에서 노인들이 느긋하게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아낙들이 강변에서 빨래를 했다. 툭툭 털어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나부꼈다. 침통한 마음이 빨래처럼 마르기 시작했다. 죽음은 삶을 너그럽게 껴안고 있었다.
화장터를 벗어나 파슈파티나트 사원으로 올라갔다. 사원은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로 북적였다. 시바 신을 모시는 제단과 사원 군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규모였다. 중앙에 우뚝 선 사원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이 사원의 문 안쪽에 시바 신이 타고 다닌다는 소, 난디(Nandi)의 거대한 황금 신상이 모셔져 있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이곳의 관습이 이해되었다. 축복이 폭포처럼 내린다는 곳, 그러나 힌두교도가 아닌 이방인은 들어갈 수 없었다.
한 움큼의 향을 든 사람들이 한 사원 앞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향 연기가 가득한 내부로 들어서니 숨이 막혔다. 차례차례 신상 앞에 놓인 향로에 향을 꽂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 낯설지 않았다.
사원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이 있었다. 정장 차림의 신랑과 빨간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신부의 미소가 환했다. 행복의 출발점에 선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적한 벤치에서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떠들썩하게 정원을 뛰어다녔다. 웃음소리가 사원 곳곳에서 들려왔다.
파슈파티나트는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의 이름 중 하나이다. 파슈(Pashu)는 생명체를 뜻하고 파티(pati)는 존엄한 존재를 의미했다. 생명을 관장하는 존엄한 파슈파티나트 사원에는 신을 향한 경건한 경배 이면에 우리네 삶에 대한 경외감이 넘치고 있었다. 시바 신이 베푼 은혜일까? 나마스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원의 돌기둥 사이로 원숭이가 보였다. 관광객이 바나나를 바닥에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녀석이 달려들었다. 어미의 등에는 새끼가 매달려있었다. 원숭이에게 줄 먹이도 살 겸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로 향했다. 점방마다 열대과일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성물들과 귀걸이, 목걸이, 팔찌, 부채, 인형, 천연 염색한 수공예품 등등 진귀한 잡화가 나를 잡아당겼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 보이면 가슴이 쫄깃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현장을 숙연하게 보고 왔건만 그새 허욕에 마음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사원 곳곳에 사두(sadhu)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사두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라 평생 수행하는 사람이다. 터번을 두르고 얼굴에는 천연물감을 칠하고 이마에는 자신의 종파를 나타내는 표식을 했다. 덥수룩하게 긴 수염, 겹쳐 입은 너덜너덜한 옷, 주렁주렁 늘어뜨린 염주, 흡사 걸인 같았다. 그들 앞에 돈이 놓였다. 형형색색으로 칠한 사두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손사래를 치며 붙여놓은 종이를 가리켰다. 사진을 찍으려면 5달러를 내란다. 세속적인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한 사두가 엄지손가락에 빨간 파우더를 발라 신도들의 이마에 찍어주며 기도를 했다. 양미간 사이의 빨간 점은 힌두교도들의 상징으로 제3의 눈, 혹은 축복, 기원 등의 의미가 있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신도들, 간절한 눈빛이다. 할머니가 손녀의 손을 끈다. 소녀의 이마에도 빨간 점이 생겼다.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나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축복의 점 하나, 문신처럼 새기고 싶어졌다. 어느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그 하나가 축복처럼 느껴졌다.
언덕에 올라 바라보니 아랴 갓에선 아직도 연기가 피워 오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체험한 삶과 죽음의 공존이 생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풍 같은 날들이 스러지면 나는 돌아가 과연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을까?

EDITOR AE류정미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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