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얼굴
'글. 유병숙'

손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마음이 그럴 수 없이 허전하다. 유리창에 고사리 같은 손가락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다가가 바라본다. 손자국들이 서로를 포옹하듯 다정하게 포개져 있다. 마당을 내다보며 유리창을 두드리던 손자, 손녀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까르륵 웃음소리가 손바닥 무늬에 배어있다.
자식들이 출가해 일가를 이루니 숙제를 다 한 듯 뿌듯하다. 하지만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의 표정을 무심결에 살핀다. 잘 웃지 않거나 눈길을 피하면 걱정이 움튼다.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생긴 건 아닐까? 육아에 치여 힘들어 그러나? 다툰 건 아닐까? 내가 무슨 서운한 말을 했을까…. 괜스레 가슴을 졸인다. 문득 아이들이 남긴 손자국들 너머로 시아버님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시아버님을 처음 뵌 건 김 과장이 제작팀 전원을 집으로 초대한 날이었다. 마당에서 경치를 둘러보고 있는데 불쑥 유 천사가 누구요? 묻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거실 창문에 한 어르신이 계셨다. 훤한 이마에 부리부리한 눈매,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도인처럼 보였다. 김 과장이 당황하며 나를 소개를 했다. 아들이 사무실에 유 천사가 있다고 하더라니… 하며 미소를 지으셨다. 모시 적삼이 인상적이었다. 아버님을 뵙고 난 일 년여 후 나는 그 집 며느리가 되었다.



시아버님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마루를 닦는 나를 며칠 지켜보더니 깨끗한 데 무에 그리 매일 닦으라 하노? 말씀을 툭, 던지셨다. 당황한 시어머님은 어디 내가 시켜서 하는 일인가요? 문풍지 사이로 들려오는 말에 참견할 수도 없고 난감해서 서성이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러 간 사이 아버님은 방학하고 온 손녀들과 집을 지키셨다. 다람쥐가 창고에 숨어 있다며 손녀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상서로운 일이라 생각한 아버님은 다람쥐가 빠져나갈 때까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손녀들만 내리 다섯을 본 아버님은 은근 손자 소식을 기다렸다. 숙모가 낳을 아기가 딸일까 아들일까? 손녀들에게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딸이요 했다가 단체 기합을 받았단다. 아버님 기대와는 달리 나는 딸을 낳았다.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았으나 서운한 기색이 없으셨다. 아기가 잠 못 이루면 손수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울며 보채던 아기는 할아버지 품이 포근한지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이 녀석 잠자는 모습 좀 보아라. 천사 같구나! 곁에 있던 시어머님께서 피는 못 속인다더니 영락없이 당신을 닮았어요, 화답하셨다. 그 말에 아버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볕 좋은 날에는 아카시아화관을 만들어 씌워주었고, 첫걸음마를 떼자마자 무에 그리 급한지 세발자전거부터 사들이셨다.
둘째로 아들을 낳자 아버님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꽃이 지지 않았다. 이마에 패인 골짜기가 숯불 다리미 지나간 옥양목처럼 펴졌다. 아기가 오줌을 누다가 할아버지 발등을 적셨다. 호들갑 떠는 시누이들에게 오줌발 죽는다 조용히 하라고 눈으로 꾸짖으셨다. 손녀들이 안기를 다투면 아기 다친다 호령을 내리셨다.
아버님은 하루 세 번 커피를 청했다. 티스푼으로 커피 하나, 프림 둘, 설탕 두 스푼이면 황금비율이 된다. 커피를 들고 아버님 옆에 앉았다. 아버님 무슨 생각하고 계셨어요?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하신다. 사업 실패 후 실의에 빠진 아버님을 위해 남편은 부암동에 집을 마련했다. 비록 수돗물도 시간 맞추어 나오는 집일 망정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셨다. 서울의 근경이 한눈에 보이는 집이었다. 종종 풍경 바라기를 하시며 지난 일들을 잊는 듯했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걱정이 덜어지더구나. 아범이 고생이 많다. 창밖에 펼쳐진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문득 돌아보니 아버님의 얼굴에도 산이 어려 있었다.
어느 해 봄 뜬금없이 시아버님이 친정아버지를 집으로 초대했다. 친정아버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아버지께서 덕담을 건넸다. 어멈이 우리 집에 들어온 후 하루하루 신간이 펴지니 내가 복이 많아요. 우리 자주 봅시다. 취향이 비슷한 시아버님과 친정아버지는 서로 의기투합하는 일이 많아졌고 동기간처럼 우애가 깊으셨다.
나는 아버님이 우는 걸 딱 한 번 보았다. 둘째 시누이의 남편이 암 투병 끝에 삼십 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 오신 아버님이 딸의 손을 붙잡더니 차마 한마디도 못 하고 흐느끼셨다. 지켜보던 우리도 울컥하여 따라 울었다.
딸아이가 자라서 유치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시고모님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당신 일 인양 채근했다. 유치원도 없는 동네에서 손녀를 촌년 만들 거유? 마음이 상한 시부모님은 여유가 되면 분가하라 하셨다. 정릉으로 분가한 후 일주일 만에 본가를 찾았다. 아버님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시더니 “밝아졌구나, 됐다!”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속마음을 들킨 듯하여 볼이 화끈거렸다.

됐다// 분가한 지 일주일/ 환해진 내 얼굴// 시아버님/ 놓치지 않으셨다// 어깨를 두드려준/ 목소리//그리워/ 가끔/ 돌아본다// 지금/ 내 모습 보고도/ 됐다/ 하실까
-졸저, <됐다>, 전문

서른 해가 꿈결처럼 지났다. 그 해 겨울 아버님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집에서 임종을 모시자고 가족들과 약속했지만, 까닭 없이 마음이 급하고 불안해졌다. 시계는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님 병원에 가실까요? 아버님이 눈이 번쩍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몇 번을 물어도 물끄러미 나만 바라보셨다. 치매를 앓고 계시던 어머니가 잠시 정신이 돌아왔는지 네 얼굴을 보고 이제 마음이 놓이시는가 보다. 보내 드려야겠다 하셔서 서둘러 119 구급대를 불렀다.
손주들이 찍어 놓은 손자국을 다시 들여다본다. 내가 바라는 게 무엇 있으랴. 자식들의 환한 얼굴, 그거 하나면 되었다. “내가 복이 많지, 됐다.” 하시던 그 날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다.

EDITOR AE류정미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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