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나마스테
'글. 유병숙'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 8,850m)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첩첩이 주름처럼 겹쳐진 봉우리가 일행을 따라왔다. 낮은 봉우리는 이름조차 없다는 히말라야산맥, 지대가 높아질수록 하늘은 더 멀리 달아났다. 나는 자꾸 하늘바라기가 된다. 말갛게 헹궈진 가슴에 코발트빛이 담긴다.
트레킹 도중 마을 어귀에 세워진 마니석을 만났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새겨진 글자를 쓰다듬었다. 라마교 창시자인 구루 림보체를 기리는 ‘옴마니반메홈’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옴마니반메홈은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라는 뜻으로 이 주문을 계속 외우면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행운의 상징인 만(卍)자가 가리키는 방향이 왼쪽이기에 반드시 마니석 왼쪽으로 돌아야 한단다. 주술에 걸린 듯 셰르파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곳곳에서 경전이 새겨진 마니차를 볼 수 있었다. 마니차를 돌리기만 해도 경전을 읽은 것과 진배없단다. 이방인인 나도 마니차를 돌려보았다. 손끝에 절로 기도가 실렸다. ‘바람의 말’이라고 불리는 룽다(Lungda)에 깨알처럼 새겨진 불경을 바람이 읽고 지나갔다.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주황색의 신성한 깃발 룽다는 형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 룽다에 새겨진 부처님 말씀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중생을 해탈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봉우리를 감싼 구름이 서서히 걷히자 아마다블람(6,812m)이 자태를 드러냈다. ‘어머니의 진주목걸이’라는 뜻을 지닌 아마다블람은 마치 새가 너른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아마다블람은 안나푸르나(8,091m) 남쪽에 자리한 마차푸차레(6,993m)와 알프스의 마터호른(4,478m)과 더불어 세계 3대 미봉(美峰)으로 꼽힌다. 만년설을 이고 선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고고한 빛을 내뿜었다. 누구랄 것 없이 두 팔을 벌리고 환호성을 올렸다.
잠시 바위에 기대어 숨을 돌린다.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사위가 조용해졌다. 돌아보니 등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매트를 깔고 경건하게 서 있는 다섯 명의 젊은이를 향하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이들은 후리후리하게 키가 컸고, 근육이 드러나는 딱 붙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슬림들의 등산복 차림이 낯설게 느껴졌다. 청년들은 일시에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 하루 다섯 차례 이루어진다는 무슬림의 예배 중 ‘태양이 천정을 지난 후 곧장’ 드린다는 주흐르 예배(정오 예배)를 참관하게 된 것이다! 코란을 낭송하고 이마를 땅에 대는 것은 신에 대한 복종을 나타낸다. 그들의 의식에 경외감이 들었다. 무슬림들은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까닭 없이 가슴이 두방망이질해댔다.
무슬림의 예배를 지켜보는 세계 각국에서 온 각양각색의 등반객들을 둘러보았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러나 경건하게 청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종교는 본래 화해와 사랑을 표방한다. 이러한 종교의 기원에서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 자신들의 율법을 내세워 타종교를 배척하고 억압해 왔던 인류의 역사는 종교의 참뜻을 위배한 것이 아닌가? 대자연 아래 펼쳐지는 예배를 바라보다 보니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광기의 역사가 한낱 햇볕에 부서지는 먼지처럼 느껴졌다.
문득 아마다블람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다블람은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도 잠시, 거대한 산맥과 어깨동무하고 있는 봉우리에 미혹된다.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번뇌가 사라지는 것 같다. 불현듯 큰 바위나 나무만 보아도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이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무얼 빌으셨어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는 “그냥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지 않니?” 하셨다. 바람이 선선하게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예배를 마친 무슬림 청년들이 매트를 돌돌 말아 배낭 사이에 끼워 넣고 있다. 먼 여정을 챙긴 듯 불룩한 배낭이 제법 무겁게 보였다. 신발 끈을 조인 그들은 등산용 선글라스를 꺼내 끼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는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세상 환하게 웃는 모습에 아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청년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마스테! 나는 어느새 익어버린 습관처럼 손을 모으고 인사를 건넸다. 나마스테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란다. 그들도 나를 바라보며 나마스테! 한다. 검은 눈망울에 쌍꺼풀진 눈이 아름다웠다. 예배를 지켜보던 등반객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마스테! 하며 나누는 인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마치 태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스스럼없이 튀어나오는 말, 나마스테! 이마에 연결된 띠에 의지해 무거운 짐을 짊어진,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포터가 설산의 주민답게 싱긋 웃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산중에 만국기처럼 걸쳐진 오색 타르초(Tharchog)가 우리를 마중하듯 바람에 휘날렸다.

EDITOR AE류정미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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