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가고파
'글. 유병숙'

어머니가 틀니를 끼다 말고 TV를 바라보았다. 한 성악가가 이은상의 <가고파>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앉아 노래를 들었다. 듣다 보니 목청 높여 노래 부르던 시절이 아련하기만 했다.
돌아보면 어머니 곁에는 늘 노래가 있었다. 어머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장단에 맞춰 <동백 아가씨> <노란 셔츠의 사나이> <산 너머 남촌에는> <바다가 육지라면> 등을 부르기 시작하면 우리 4남매는 너나없이 따라 부르곤 했다. 허름한 티셔츠에 몸빼 바지를 걸치고 빨래를 하거나 방바닥을 닦으며 부르는 노래지만, 어머니가 이미자의 노래를 하면 이미자처럼, 조미미의 노래를 부르면 조미미처럼 멋지게 보였다. 유행가의 노랫말은 어린 가슴을 사무치게, 때론 달뜨게 했다. 우리를 혼구멍 내던 어머니의 흥얼거리는 소리는 나를 무장해제 시켰고, 한없이 살가운 느낌이 들게 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늘 노래가 살고 있었다. 두 살 터울의 우리 남매는 다들 음악 과목을 좋아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로 경쟁하듯 노래를 불러댔다. 음악책을 펴고 교과서에 실린 노래를 함께 불렀다. 학년이 바뀌어도 음악책은 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동요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잘못 부르면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루는 남동생이 <빨간 마후라> 영화를 단체 관람하고 와서는 마후라를 휘두르며 노래를 불렀다. 막내가 따라하다 마루에서 떨어졌다. 어머니의 지청구에 그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다. 우리는 유행가도 메들리로 불렀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특히 좋아해 누가 시작하면 “아아아~ 안녕!”하고 합창을 하곤 했다. TV 화면에 <님과 함께>가 나오면 여동생들은 가수의 동작을 흉내 냈다. 언젠가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살리라 하며 가슴을 콩닥거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성당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가를 온종일 불렀다. 노래에는 중독성이 있는지 한번 시작하면 잘 멈춰지지 않았다. 지나가던 이웃들이 “이 집은 또 노래 시작이네!” 하며 대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음악 시간에 가곡을 배우게 되었다. 노래는 목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배에서부터 소리가 흘러나와야 한다며 동생들에게 아는 체를 했다. 동생들 눈이 동그래졌다. 한 번 해보라 해서 눈을 감고 감정을 잡으며 부르는데 바로 밑 남동생이 “에게, 목에서 나오는 소린데?” 하며 놀렸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야, 몰라서 그래, 잘 들어봐.” 하며 힘주어 부르다 그만 목이 쉬고 말았다. 영문도 모르고 심각하게 바라보던 여동생들, 깔깔거리던 남동생, 누나 놀리지 말라며 등을 토닥여주던 어머니, 그날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어느 여름날 공부를 하다 더위에 지쳐 마루로 나섰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는 수도가, 그 옆에는 물을 받아 두는 확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어머니 곁에는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문득 미안한 마음에 마루를 내려서는데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무울 눈에 보이네, 꿈엔드을 잊으리요오, 그 잔잔하안 고오향 바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어머니가 가곡을 부르다니! 그 노래, <가고파>는 엊그제 학교에서 배운 노래였다. 어느새 그걸 들으셨단 말인가? 아니, 부르는 모양새가 오래전부터 알고 계신 듯했다. 트로트 부르던 모습만 보아서인지 너무나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는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판 위에 놓인 빨래에 비누질하며 처량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새삼 노랫말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때까지 어머니에게도 옛 동무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부여에서 태어난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군산의 친척 집에 얹혀 살았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곳이 바다 가까운 곳이라는 걸, 제2의 고향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떠밀리며 살았을 청소년기에 대해 어머니는 별반 말씀이 없었다. 집안 건사하기에 늘 바쁘신 어머니에게는 그저 우리가 세상 전부일 거라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부르는 <가고파>라니!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언제부터 몰래 그 노래를 부르고 계셨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그 후 <가고파>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정신없이 TV 화면에 몰두하고 계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시절 집 안을 채웠던 노래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틀니를 낀 어머니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얼굴에는 노환의 자욱이 역력했다. 인디언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픈 자가 생기면 그에게 묻는다. 마지막 노래를 부른 게 언제인지.” 그 말에 따르면 노래에는 치유의 기능이 있는 게 아닐까?
어머니의 탁자에는 86, 91이라는 숫자가 크게 쓰여 있다. 요즘 인기 있는 <미스터 트롯> <미스 트롯> 등이 방영되는 채널이다. 혼자 계실 때도 노래를 즐겨 들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 둔 것이다. TV 채널을 91번으로 옮겼다. 그새 곤히 잠든 어머니의 곁에는 여전히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EDITOR AE류정미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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