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소설] 예비 검증
'글. 박순철'

“금천동 진입하는 골목에서 음주운전 단속한다고 하네요.”
“그곳에 경찰관이 몇 명이나 있는지 몰라도 이렇게 SNS로 실시간 알려주는데 멍청하게 걸려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안 되겠다. 김 부장 술 먹었잖아. 차 세우고 대리 부르자?”
“괜찮아요. 술 조금밖에 안 마셨어요.”
“부국장님 말이 맞아요. 같이 술 마신 우리까지 끌고 들어가지 말고요.”
“걱정도 팔자다. 내가 이런 장사 한두 번 해보냐. 그리고 지난번 청장님 취재할 때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어. 우리 친구 오빠란 말이야.”
“그래서 걸리면 정말 청장님께 전화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송년 모임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신 H 신문 여전사 3인방, 그들이 탑승한 차량이 금천동을 향해 달린다. 아니나 다를까. 효성 병원 앞에서 좌회전해 조금 올라가자 정말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었다.
“김 부장! 정말 조금 먹었지?”
“네. 부국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4차선 도로를 양방향에서 막고 있는 단속반은 차를 돌려 도망가는 차량을 추격하기 위해 순찰차 한 대와 오토바이 두 대를 각기 반대편 방향을 향해 세워놓았다.
김 부장의 차량으로 다가온 경찰관은 뜻밖에도 여자였다. 두툼한 방한복 밑으로 드러난 잘 익은 복숭앗빛의 앳된 얼굴. 그의 어깨에 얹혀있는 세 개의 무궁화 잎!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협조해주십시오.”
“음. 추운데 수고해. 어디 소속인가?”
김 부장이 눈을 치뜨고 경찰관을 향해 뚱딴지같은 말을 건다. 차 안을 살피던 경찰관이 코를 찡그리며 얼른 고개를 외면한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드셨습니까?”
“아니야. 나 술 안 먹었어. 아직 실적을 올리지 못한 모양이지?”
“여기 측정기 입에 대고 한 번만 불어주십시오.”
“술 안 먹었다니깐?”
“이렇게 냄새가 진동하는 데 술 안 드셨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리고 사모님 목소리도 풀려있고 얼굴도 무척 빨갛습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부국장과 오 기자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지금이라도 내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택시 타고 집에 간다고 했을 때 한사코 데려다주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험한 꼴 보이려고 그런 친절을 베풀었단 말인가?
“아직 새내기 냄새가 솔솔 나네. 철저한 것도 좋지만, 술 먹은 사람만 단속해야지. 안 그래.”
“자,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불어주시면 됩니다.”
“아니, 대한민국 경찰관은 선량한 시민의 말을 그렇게도 못 믿나? 그것도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경찰관이 말이야.”
김 부장의 혀는 자꾸 꼬여가고 있었다.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뒤에 서 있는 차량 보이시죠?”
이쯤 되자 앞에서 단속하던 남자 경찰관 두 명이 달려왔다.
“차량을 오른쪽으로 이동 주차해 주십시오.”
“뭐, 그러지”
드디어 김 부장이 갓길로 이동해서 차에서 내리자 다시 측정기를 입에 갖다 대려 한다.
“나 못 불어.”
“측정에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아. 선량한 사람 이렇게 장시간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사모님께서는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셨습니다. 자꾸 그러시면 지구대까지 임의동행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 나 사모님 아니야. 이래 봬도 골드미스라고.”
신경질적으로 답하는 김 부장의 말에 여자 경찰관은 깜짝 놀라 한발 물러선다.
“아!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지구대까지 가셔야 하겠습니다.”





상당 지구대에는 일반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구대까지 따라온 여자 경찰관이 다시 김 부장에게 다가왔다.
“물 한잔 드시고 측정에 임해주십시오. 혈중알코올농도가 적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야! 내가 누군지 알아? 청장님께 전화 좀 걸어”
“저는 골드미스님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청장님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입니다.”
“그럼 내가 하지….”
김 부장이 휴대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청장 오빠! 안녕하세요. H 신문사 정치부장 김수정입니다. 경자 친구 수정이요.”
“….”
“무슨 일은요.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며 지구대에 잡혀 왔어요. 직원 바꿔 달라고요?”
의기양양하게 핸드폰을 경찰관에게 건네는 김 부장의 얼굴은 승자의 미소 그것이었다.
“네, 청장님!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은데 측정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핸드폰을 돌려주는 여자 경찰관의 표정이 굳어진다.
“거봐! 그냥 보내라고 하시지? 역시 아는 사람이 좋아!”
“아닙니다. 끝까지 측정 거부하면 채혈하고 구속하라고 하십니다.”
“하하하, 역시 공과 사는 뚜렷하신 분이구먼, 하는 수 없지. 자 측정해.”
“현장에서 측정에 임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잖아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 불어주십시오. 더~더~더”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측정기의 수치가 올라가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 자신만만하게 측정기를 들이대던 여자 경찰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개도 갸웃거린다.
“다시 한번 불어주십시오”
“그래, 열 번을 불어도 변함없을 거야. 나는 절대 술을 먹지 않았거든.”
정말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 비틀거리던 몸짓은 씻은 듯 사라지고, 혀 꼬부라진 목소리도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여자 경찰관도, 동행했던 일행들도 눈이 동그래지기는 마찬가지다.
“미안해요. 사실 술을 전혀 먹지 않았어요. 차 바닥이랑 옷에 일부러 술을 쏟았어요.”
“어이없네. 우리까지 완벽하게 속인 그 이유가 뭐야?”
부국장이 불쾌한 기색을 나타냈다.
“죄송해요.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청장님이 출마할 거란 소문이 돌아서 미리 검증 차원에서….”
음주측정기를 들고 서 있던 여자 경찰관의 눈초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EDITOR AE류정미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