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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X 발효
미생물의 완전한 연금술, 발효
'우리 농산물의 개성과 역동성을 깨운다'

'발효'를 빼고 한국의 식문화를 거론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최고의 문화유산, 한식을 완성하는 발효식품은 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진화를 거듭하며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자연을 품어 생명의 역동성을 지닌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 그 특별하고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본다.
MZ세대, 발효문화를 꽃피우다
최근 문화의 트렌드는 평균적인 것, 통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고유성과 개성을 가진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MBTI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고, 좀 더 이색적인 경험과 공간을 원한다. 익숙하여 진부하게 여겨졌던 우리 전통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는 이 같은 흐름과 함께 한다. 팬더믹을 거치면서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발효의 식문화가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만의 고유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성향과 기호가 반영되어 K-소스, 전통주, 발효유, 발효차 등이 새로운 시대의 발효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발효식품은 오랜 세월 인간의 생존을 책임지며 역사적 검증을 거친 식품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맛과 식감으로 미각의 즐거움, 건강에 유익함을 가져다 준다. 한층 젊어진 발효문화는 놀랄 만큼 다채롭고 역동적인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이 있기에 가능했다.



한식의 근간인 자연 발효식품
발효는 곰팡이, 효모, 세균 등 미생물의 작용으로 원래 물질이 분해되어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발효는 흔히 불없이 음식을 조리하는 기술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람이 음식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조리를 하는 이유는 소화 흡수를 돕고,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하며 체내 흡수율을 증가시키고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서인데, 발효식품은 불로 익히지 않았음에도 이같은 효과를 낸다. 이러한 발효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음식을 보존하거나 소화가 쉽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코올 발효, 우유를 발효한 요구르트와 버터, 치즈 외에도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만든 차를 발효시킨 콤부차 등의 건강음료, 곡물의 발효, 채소의 발효, 육류 및 어류의 발효, 콩류 및 씨앗류의 발효 등 놀랍도록 다양한 발효식품이 있다.
발효식품은 이토록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나, 한국의 발효법은 '복합균에 의한 자연 발효'라는 점에서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음식의 발효는 자연 발효와 기능성 발효로 나뉜다. 세균이나 효모, 곰팡이 등 복합적인 미생물이 관여되어 복합 발효가 이루어지는 것을 자연 발효라 하며, 목적에 따라 기능이 우수한 균을 선발해 집중 배양하고 단일균을 중심으로 발효시키는 것을 기능성 발효라고 한다.
한국의 발효식품은 대부분 자연 발효에 속한다. 발효식은 부패의 시간성을 역이용해 새로운 맛을 창조해낸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음식의 고유한 특징이자 발효식의 지혜다. 한식의 발효식품은 종류와 유형이 다채로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발효식품을 먹는 빈도와 활용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한 끼 식사에서 다양한 발효식품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음식이 발효와 얼마나 밀접한지를 말해준다.
숙성, 염장, 발효의 차이
숙성, 염장, 발효는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종종 뒤섞여 사용되곤 한다. 숙성(Ageing)은 시간을 두고 음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소금을 넣을 경우 염장(Curing)이 되고, 여기에 미생물이 작용하게 되면 발효(Fermenting)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염장 과정에서 지나치게 소금을 많이 넣어 염도가 높을 경우 미생물이 활동할 수 없어서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 발효는 미생물이 유기화합물을 분해하여 알코올류, 유기산류, 이산화탄소 등을 발생시키게 하는 화학적, 물리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술, 된장, 식초, 간장, 치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
미생물의 활동으로 화학적, 물리적 변화가 일어나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상태를 '발효'라고 하고 섭취할 수 없는 상태를 '부패'라고 한다. 각 민족이나 국가마다 차이는 있으나 발효가 잘된 음식은 감칠맛을 내며 인간에게 유익할 물질을 생성해낸다. 하지만 부패된 음식은 형태 유지력이 거의 없고 견딜 수 없는 향과 매우 강한 신맛이나 쓴맛이 난다. 발효된 음식들은 먹어도 탈이 잘 나지 않지만 부패한 음식들은 식중독의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콩을 발효시킨 한식의 기본 전통 장류
콩을 주 원료로 하는 한국의 전통 장류는 크게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이 있다. 콩은 단백질, 식물성 지방, 탄수화물 및 미네랄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날통에는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신의 소화를 방해하는 물질이 들어 있어 반드시 가열해서 먹어야 한다. 이런 콩을 삶고 으깨어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만들어 오랜 시간 곰팡이를 번식시킨 것이 장의 기본이 되는 메주다. 일본의 된장은 황국균 단일 종으로 발효되지만, 한국의 전통 메주는 황국균 외에 털곰팡이, 뿌리곰팡이, 푸른곰팡이, 누룩곰팡이, 좁쌀곰팡이, 홍국균 등 다양한 곰팡이와 고초균 등이 작용하여 천연의 복합적인 맛을 낸다. 메주에서 자란 각종 곰팡이와 세균은 효소를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콩의 식물성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전분질은 당분으로 분해된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몇 달간 해볕에 쬐며 항아리 속에서 발효시키면 메주 속 콩의 향미 성분은 소금물에 녹아 분해되고, 이것이 소금물 속에서 다시 발효되면서 오묘한 맛을 품은 간장이 된다. 풍미가 더해진 간장을 빨아들인 메주를 건져 가른 뒤 소금을 섞어 치대어 다시 발효시키면 된장이 된다. 그리고 이 메주를 가루로 내어 쌀밥 또는 찹쌀밥과 고춧가루 등을 섞으면 고추장이 된다. 콩으로 만든 메주에서 간장과 된장, 그리고 고추장까지 제각기 고유의 깊은 맛을 품은 우리 장이 탄생한다.
저장성을 높인 발효채소 장아찌
장류가 발달하면서 장에 절인 장아찌 문화도 크게 발달했다. 오래 기다리고 삭힌 장은 그 시간만큼 깊은 맛을 담는다. 깻잎, 고추, 양파 같은 채소는 물론 콩잎, 수박껍데기, 참외 껍질처럼 버려지는 재료마저도 장에 담아 일정 시간 삭히면 아삭하고 짭조름한 장아찌가 된다. 예전에는 채소를 오래 보관해두고 먹기 위해 장아찌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다. 무엇보다 장아찌의 최대 장점은 어떤 식재료로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콜라비, 양파 등 어떤 재료라도 장아찌로 만들어 보면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곡물과 과실을 발표시켜 만드는 발효주
발효주는 효모가 유기화합물을 분해해 알코올을 만들어낸 술을 말한다. 한국의 발효주는 주로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는 막걸리와 약주, 청주가 있다. 이 발효주들을 관통하는 중요한 발효제가 누룩이다. 누룩은 곡물 속 전분을 당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재료다.
과실주는 과실 또는 과즙을 주원료로 사용해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 제성한 것 또는 발효과정에 과실, 당질 또는 주류 등을 첨가한 것을 말한다. 과실은 과당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과실은 과실주를 만들 수 있다.
동물성 식재료를 발효한 젓갈
동물성 식재료인 육류도 먹거리가 부족할 경우를 대비하여 건조하거나 훈제하거나 발효해 저장하고 보관했다. 농경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목축을 통한 육류와 유제품 공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사냥을 통해 얻은 짐승이나 강과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어물을 절여 발효시켰다. 소금만 넣어 만들면 '젓갈', 소금의 양을 줄이고 곡물을 넣어 발효시키면 '식해"라고 불렀다.
삼면이 바다인데다가 어선, 어구의 발달과 더불어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조기젓, 멸치젓, 새우젓과 같이 해산물을 발효시킨 젓갈이 더 보편화되었고 운송망이 발달하면서 내륙 지방까지 보급되며 김치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갔다. 소금에 절인 젓갈은 보존 기간이 늘어나 오래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반찬으로 또는, 철마다 계절 채소를 활용해 만드는 다양한 김치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발효를 이끄는 마법의 도구, 옹기
한국의 발효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숨쉬는 그릇'인 옹기이다. 흙을 그릇 형태로 만들어 불에 구워 만드는 홍기는 표면에 오짓물을 발라 물이 새지는 않지만, 기공이 생겨 통기가 된다. 이러한 통기성 때문에 옹기에 저장한 음식물은 부패하지 않고 장기간 저장된다. 뿐만 아니라 옹기는 산도를 떨어뜨려 발효식품을 최적의 맛으로 유지해준다. 발효 중 발생하는 탄산을 적당히 머금어 김치의 시원한 맛을 살리기도 하고, 열전도율이 낮아서 온도 변화를 최소화하여 젖산균의 생존도 유리하게 한다. 김치, 장, 술, 식초 등 한국의 발효식품 대부분은 옹기 안에서 발효, 숙성되었고, 소금, 쌀, 곡식, 과일까지 옹기에 보관하여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했다.

EDITOR AE류정미
농림축산식품부
전화 : 044)861-8843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다솜2로 94 정부세종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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