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 소설] 동작 그만
'글. 박순철'

배움터지킴이 이 선생이 학교에 출근해보니 교문 앞 주차금지구역에 승합차 두 대가 주차되어있다. 차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연락처가 없다. 이곳 주민들 같으면 통학버스가 다니는 길목이란 것을 알기에 주차하지 않는 곳이다. 하는 수없이 담당지구대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는 청주 사랑 학교입니다. 교문 앞에 승합차 두 대가 주차되어있는데 우리 학교 통학버스 진?출입에 지장을 주기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연락처가 없어서 그러니 좀 알아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신가요?”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냉랭함을 너머 볼멘소리에 가까웠다.
"아닙니다. 지킴이입니다.”
"오늘은 해드리는데 앞으로는 시청 민원실로 전화하세요.” 하며 전화를 끊는다. 이 선생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아니 9시가 되려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데 그때까지 있었다간 학교 통학버스가 들어오지 못하고 길을 막고 서있어야 할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시청 민원실로 전화를 걸었다.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되긴 했는데 들려오는 답변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담당 직원이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야 차주 인적사항을 알 수 있다며 9시 넘어서 전화하란다.
"이런, 빌어먹을,”
그러는 사이 30여 분이 훌쩍 지나갔다. 좀 있으면 대형 통학버스가 들어 올 텐데 걱정이 태산 같았다. 버스가 제대로 교문에 들어오지 못하면 운전기사들이 짜증 낼 것이고 그러면 지킴이들은 뭐했느냐고 투덜거릴 게 분명했다.
그 와중에도 학생을 태운 학부형의 승용차와 활동보조원들의 차는 속속 들어왔다가 나가고 다른 날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그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 셋이 나타났다. 건들거리며 걷는 모습 하며 담배를 꼬나문 모습이 한주먹 하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뒤에는 아가씨도 두 명이나 따라온다. 주차한 자들로 보였다.





"뭐야, 이 땅 학교에서 샀어?”
"아니, 도로를 누가 판답니까. 여기 어린이보호구역에 주차하면 안 된다는 것은 젊은이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요?”
"통행에 지장이 없는데 왜 차를 빼라고 하는 거야, 학교만 다야?”
자식뻘 되는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하고 나니 기분이 몹시 상하는 듯했지만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같이 대거리해서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인 듯했다. 한 젊은이가 점퍼를 벗어서 차 문을 열고 던지는 데 보니까 반소매셔츠 밑으로 드러난 문신이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대들 것처럼 꿈틀거린다.
"차 다니는 데 지장 없으면 그만이지 이런 걸 가지고 지구대에 전화를 걸어?”
"지금은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 있으면 버스가 들어와요. 그러면 제대로 꺾어서 교문으로 들어가지 못해요.”
"뭐야, 지금도 다른 차 다니는 데 지장 없잖아?”
뒤에 있던 젊은이까지 합세한다. 누가 봐도 불공평한 게임이 분명했다. 60이 넘은 지킴이 선생에게 젊은이 셋이 대들고 있다. 출근하던 여선생이 이 험악한 상황을 행정실로 달려가서 이야기했나 보다.
행정실장을 앞세우고 덩치가 커다란 젊은이 둘이 교문으로 달려 나왔다. 그 와중에도 젊은이들은 지킴이 선생에게 삿대질해가며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 기세등등하다. 그냥 두면 봉변당할 게 분명해 보였다. 행정실 직원인 젊은이가 그들을 가로막고 나섰다.
"너희 뭐야? 나이 많은 분에게 이래도 되는 거야?”
"얼씨구! 이 작자는 뭐야, 아침부터 몸 좀 풀어야 하겠구먼.”
이제 공격대상이 지킴이 선생에서 행정실 젊은이에게로 바뀌었다. 그때였다.
"동작 그만!”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모두가 깜짝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 소리를 내뱉은 사람은 지킴이 선생이었다. 천천히 젊은이들에게로 다가가는 지킴이 선생, 조금 전 비굴하게 굴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또 그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배짱이 나올까?
"행정실 직원들은 빠지세요. 내가 지금껏 젊은이들 보면서 참으려고 했는데 더는 봐줄 수가 없다.”
그 말은 날카롭기가 비수보다 더했고, 사람의 간장을 파고드는 듯 차갑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기세등등하던 젊은이들이 주춤한다. 지킴이 선생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는데 그 동작이 여유롭다.
"자 너희 중에서 제일 센 사람 나와라. 나와 한판 겨뤄보자?”
문신한 젊은이들이 코웃음을 친다.
"내가 너희하고 주먹대결을 하면 경찰서에서 달려 나올 테니 팔씨름으로 하자.”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나이 먹었다고 봐 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먼.”
“선생님!”
행정실장이 말리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있었다.





조금 전 기세등등하던 그 모습 그대로 덩치가 제일 큰 용 문신을 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킴이 선생이 선 채로 팔을 내밀었다. 새카맣게 그은 지킴이 선생의 팔뚝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문신한 사내도 마주 잡은 손에 힘을 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젊은이가 쉬 이길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표정에 별 변화가 없는 지킴이 선생과는 달리 문신의 젊은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단순히 생각하면 젊은이가 우세해 보이지만 넘기지 못하고 용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한 1분 정도 지났을까. 지킴이 선생이 포기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손을 놓는다.
"내가 졌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곳에 주차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팔씨름에서 이긴 젊은이의 표정이 벌레 씹은 모양이다. 팔꿈치를 자꾸 쓰다듬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 어서 가라. 실장님 저 친구들 그냥 보내주세요.”
젊은이 중 한 명이 차에 올라타더니 흘금흘금 지킴이 선생을 쳐다보며 차를 운전해서 멀어져 간다. 나머지 두 명도, 뒤따르던 아가씨들도 차에 올라타더니 쓰다 달다 말없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큰 구경거리가 생기려나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너무나 싱겁게 끝난 게임이 아쉬운 듯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젊은 사람하고 팔씨름을 다 하세요?”
"이제 힘이 달리네요. 전 같았으면 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기셨어요. 일부러 져 주셨잖아요? ”
"아, 아닙니다.”
그러나 둘러선 사람 중에서 지킴이 선생이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DITOR AE류정미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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