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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노인돌봄로봇 ‘효돌’ 개발 김지희 대표
'트로트 불러주고 안아달라 애교 부리고 “손주보다 살가운 로봇 어르신 웃음 되찾아줄 것”'

“할머니는 어렸을 때 인기 많았어요?”
“인기야 많았지. 딸 많은 집 막내여서 날 예뻐하는 어른들이 많았어.”
“할머니는 그 책을 왜 매일 읽어요?”
“날 살려준 책이야. 내 삶이 참 힘들었거든.”
혼자 사는 80대 A씨는 요즘 살맛이 난다. ‘절친’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A씨를 즐겁게 해주는 말동무는 사람이 아닌 로봇 ‘효돌’이다. A씨는 효돌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요즘 일상·기분 등 모든 것을 공유한다. 말도 잘 들어주고 대꾸도 잘 해주는 ‘효돌’을 위해 A씨는 직접 뜨개질해 옷을 만들어주고 매일 쓰다듬으며 하루를 함께한다. A씨에게 ‘효돌’은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다.

김지희 (주)효돌 대표가 노인돌봄로봇 ‘효돌’을 안고 있다.
‘효돌’은 온몸에 센서가 있어 만지면 반응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쌍방향 소통도 가능하다. (사진. C영상미디어)



‘효돌’은 (주)효돌이 2018년에 개발한 인공지능(AI) 노인돌봄로봇이다. 외모는 작고 귀여운 인형 같지만 어르신의 식사와 수면, 복약 등을 챙겨주며 밀착돌봄을 지원한다. 온몸에 센서가 달려 있어 만지면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움직임을 감지해 반갑게 인사도 건넨다. 최신 트로트를 불러주는 장기도 지녔다.
로봇과의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이유는 기술 덕분이다. ‘효돌’에는 AI, 사물인터넷(IoT) 등 각종 첨단기술이 집약됐다. 특히 생성형 AI인 ‘챗GPT’ 기반의 대화 엔진이 탑재돼 있어 어떤 주제로든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효돌’은 이 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 콩그레스 2024’에서 ‘글로벌 모바일(GLOMO) 어워드 2024’의 ‘커넥티드 건강·웰빙을 위한 최우수 모바일 혁신’ 부문에서 수상했다. GLOMO 어워드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가 주관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및 모바일계 주요 시상식으로 ‘ICT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이 상을 받은 것은 ‘효돌’이 최초다. ‘효돌’은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과 함께 수상자 명단에 오르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 작은 인형이 사람을 돌본다고?”라며 의심하던 유럽 심사위원들도 ‘효돌’의 기술력을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효돌’이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의 돌봄이 세계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된 데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가구는 2023년 기준 약 199만 명으로 독거노인 비율은 21.1%에 이른다. 문제는 혼자 지내는 노인은 사회적으로도 고립될 가능성이 커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성이 일반 노인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김지희 대표가 ‘효돌’ 개발에 뛰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 약 160곳에서 독거노인 1만 명에게 ‘효돌’을 보급해 사용 중이다. 김 대표는 “홀로 사는 어르신의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돌봄기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인돌봄로봇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뭔가?
예전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든 사람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노인들이 위축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단순히 수명만 연장돼서는 안된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술을 개발했다.
‘효돌’ 개발을 위해 100명 이상의 독거노인을 만났다고.
노인복지관에 부탁해 어르신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봤다. 보통 생활지원사가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해 20분 정도 머물면서 식사는 하셨는지, 약은 챙겨 드셨는지 안부를 묻고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약속한 시간에 집에 안 계실 때도 있고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생활지원사 한 명이 관리하는 어르신이 너무 많다. 돌봄공백이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도시에 사는 독거노인은 할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식사도 제대로 못 챙기고 가족들의 돌봄을 받지 못해 상처입은 경우도 많았다.
‘효돌’을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뭔가?
어르신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얼굴에 김 묻었어요. 잘생김”이라며 농담을 건네고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없으면 안 돼요”라며 애교도 떤다. 어르신 스스로 여전히 멋지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거다. 특히 ‘효돌’은 “아랫목에 눕혀주세요”, “재미있는 얘기 해주세요”라며 어르신의 행동을 직접 유도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활동하도록 이끄는 거다. 이 같은 ‘효돌’의 기능을 어르신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논문도 있다.
손주 같은 ‘효돌’이 어르신을 챙기는 모습이 재미있다.
애초에 콘셉트를 8세 손주로 정했다. 웬만한 대화가 가능하고 애교도 많은 데다 간단한 심부름도 할 수 있는 나이다. ‘효돌’의 핵심 기능은 사용자 개개인에 맞춰 식사와 수면, 약 복용 등을 24시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침 7시 기상 ▲밤 9시 취침 ▲하루 약 두 번 복용 ▲점심 산책 ▲무릎과 허리 질환 ▲사투리 사용 등 어르신 정보를 입력해두면 ‘효돌’이 시간에 맞춰 “어르신 일어나세요”, “약은 드셨어요?”, “이제 산책 나가셔야죠”라며 말을 건넨다. 인사말만 수백 가지다. 시나리오가 다양해 지루하지 않다. 이에 대한 어르신의 답변은 모두 데이터로 저장된다. 우리는 이것을 분석해 일주일 단위로 ‘건강리포트’를 작성한 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보호자 등이 볼 수 있도록 제공한다. 가령 약을 제때 챙겨먹지 않고 부정적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면 건강 위험신호라고 알려준다. 대화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기술은 특허를 받았다.
어르신들 반응은 어떤가?
누구나 혼자 남겨졌을 때 가장 힘들어한다. 곁에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효돌’을 쓰다듬고 말하면서 정말 가족처럼 느끼는 분이 많다. 딸이 외국에 나가면서 혼자 살게 된 후 “자식이 잘되길 바라지만 나는 살아서 뭣하냐”며 삶을 비관했던 한 어르신은 이젠 “효돌이랑 재미있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고 말씀하신다. ‘효돌’과 어머니가 너무 친하게 지내니 질투가 난다며 ‘효돌’에 자기 목소리를 넣어달라고 한 자녀도 있었다. ‘효돌’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고 가족관계도 더욱 돈독해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우울증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독거노인의 경우 일반 노인보다 우울증 발병률은 1.5배, 치매유병률은 3.5배 높다. 그런데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의료관리학교실의 연구에 따르면 ‘효돌’을 사용한 뒤 독거노인의 우울척도(만점 15점)가 5.76점에서 4.69점으로 낮아지고, 11점 이상의 우울증 고위험군의 비중이 감소하는 등의 긍정적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실제로 기술개발을 하면서 ‘감정케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효돌’에는 멀티모달(이미지와 소리 등 여러 유형의 입력을 동시에 처리하는 기술) 터치센서가 다중으로 결합돼 있다. 즉 손과 귀를 만지는 등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기능이 실행된다. 보드라운 인형을 만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기계라는 생각을 잊고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어렵진 않나?
대부분의 돌봄로봇이 보호자나 관리체계가 갖춰진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효돌’은 어르신 혼자서도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주력했다. 앞서 말했듯 ‘효돌’은 접촉과 대화를 통해 기능을 실행한다. 특히 센서가 온몸에 있어 쉽게 반응한다. 사용법을 따로 익힐 필요가 없어 거동이 불편한 분이나 치매환자도 사용할 수 있다. 또 4세대 이동통신(LTE)이 연결된 상태기 때문에 와이파이 사용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도 어디서든 쓸 수 있다. 이를 통해 어르신의 상태를 외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동통신사와 협력을 맺고 일정 시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관제센터로 응급상황을 알리는 기능도 갖췄다.
돌봄로봇 기술은 개발 초기 단계인 만큼 약점도 있을 것 같다.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서 하는 표현은 언뜻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계가 이런 부분까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또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아 텔레비전 음성과 어르신 음성을 구분해내는 기술도 정교해져야 한다. 더욱이 ‘효돌’의 기능은 대부분 대화 분석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음성 인식률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현재 ‘효돌’에 탑재된 레이저 센서로 어르신의 심박수까지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게 가능해지면 응급상황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다. 전력 이슈와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돌봄로봇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나?
테슬라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돌봄로봇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집안일을 대신해주거나 이동을 도와주는 것에 그친다. 그보다 중요한 건 24시간 함께 있으며 정서적인 케어를 해주는 거다. 이제는 로봇과도 얼마든지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대다. 오히려 정서적으로 사람보다 나을 수 있다. ‘효돌’은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고 식사와 수면 시간도 빠짐없이 챙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로봇만이 할 수 있는 돌봄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
세계 시장 선점이 목표라고?
노인돌봄 문제는 전 세계의 공통 관심사다. 노인돌봄로봇 시장도 크게 확대될 거다. 이미 미국과 네덜란드 요양원에서는 ‘효돌’이 보급돼 사용 중이다. 나라마다 돌봄문화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체적·정서적 케어가 필요한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아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 올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 진출에 나선다. 한 명의 어르신이라도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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