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 소설>
[엽편] 피는 물보다 진하다
'글. 박순철'

요양원 문을 들어서는 소갈 씨의 표정이 어둡다. 아니 인상을 찡그린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꽉 막힌 건물, 하얀 벽, 사방에서 풍겨오는 소독약 냄새가 신경을 자극해서다.
옛 직장동료 풍골 씨가 입원해 있는 6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전 같으면 걸어서 올라왔겠지만, 이제는 체력을 자랑할 나이가 아니다. 자신도 언제 풍골 씨처럼 병원 신세를 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 좋던 젊은 시절은 꿈결같이 흘러가 버리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그저 비썩 말라빠진 몸뚱이 뿐이다.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남 신세 안지고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해보지만, 어찌 하늘이 내린 명을 인간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겠는가.
병실에는 침대가 네 개 놓여있고 침대마다 환자가 누워있다. 사람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간호사만이 누구를 찾아왔느냐는 듯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모습이 퍽 사무적이다.
사방을 둘러보는 소갈 씨 눈에 이내 낯익은 모습이 포착되었다. 앙상한 몰골만 남은 어깨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풍골 씨는 벽을 향해 돌아앉아서 무엇인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서 가까이 가도 모르고 있었다.
“이 사람! 뭣하고 있는가?”
중얼거림을 멈춘 풍골 씨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무척 빨랐다. 마치 전광석화같이. 그 얼굴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자신의 손에 든 먹을 것을 빼앗으러 온 사람같이 느끼는 것 같았다.
“나 박 소갈이네 알아보겠는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그제야 간병인이 다가온다.
“가족 되시나요? 기억력이 없어진 것 같아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서 그래요.”
“어쩌다 이 모양인가 그래?”
젊어서는 준수한 용모를 자랑하던 풍골 씨, 한 인물 할 때는 그야말로 여자들이 줄을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 예로 술집에 가면 도우미들이 모두 풍골 씨 옆에 앉으려 해서 일행들이 시기하던 때도 잦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말이다. 소갈 씨나 풍골 씨나 이제는 성 쌓고 남은 돌, 그 어디에도 반겨주는 곳이 없다.





몸이나 건강하면 오죽 좋으련만 하느님은 야속하게도 풍골 씨에게 치매라는 무서운 중병을 안겨주었으니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면회 왔을 때에는 희미하게나마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몰라보는 게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싶다.
풍골 씨는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한 운동과 사회활동으로 병행하며 노후를 즐겼다. 다달이 나오는 연금만 가지고도 생활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위로 아들은 미국에 교환 교수로 가 있고, 딸은 능력 있는 신랑 만나서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달리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예부터 잔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풍골 씨 자녀도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가고 병을 고쳐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우주를 날아다니는 신기술을 가지고도 풍골 씨의 병은 치유되지 않았다.
풍골 씨 칠순잔치 하던 해부터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했으니 10년이 훌쩍 넘었나 보다. 처음에는 위문금을 들고 찾아오던 친구나 지인도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쩌다 가까운 친척만이 찾아올 정도이다.
하긴 문병을 온다고 해도 전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문병 온 사람 입장에서도 허탈해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자녀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병구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눌러앉고 딸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자연, 풍골 씨 병구완은 부인 차지가 되었다. 병구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없다는 것은 안 해 본 사람은 모를 게다, 풍골 씨 부인도 처음에는 지극정성으로 병구완했으나 여자 힘으로 덩치 큰 남편을 추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의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남편을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아들과 딸도 매월 어느 정도의 요양비를 부담하겠노라고 했다.
병실에는 나이도 비슷하고 증세도 비슷한 환자들이어서 젊어서 잘나가던 때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풍골 씨의 무용담이 제일 걸걸하다.
“아마 내가 먹은 술을 한꺼번에 무심천에 토해놓으면 큰 장마가 지고도 남을 게야. 젊어서는 술 잘 먹는 사람을 최고로 쳐주기도 했지. 한번은 그 유명한 해동집에 아가씨가 새로 왔다고 해서 김 과장과 둘이 가지 않았겠어. 정말 사근사근하더라고, 그런데 이 아가씨 어찌나 술이 쎈지 둘이서도 당하지를 못하겠는 거야. 새벽 두시까지 마신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까 맥주병이 방 네 귀퉁이를 한 바퀴 뺑 돌았더라고. 그래도 이튿날 출근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야…….”
기억력이 좋을 때의 일은 잊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 병실 환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가 아무리 찬란하면 무엇하겠는가? 자신은 병실에 매인 몸인 것을. 그리고 흘러간 세월이 어떻고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없었다.
중후한 중년 신사 한사람이 풍골 씨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왔다. 모두 들 누군가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의문의 신사가 환자를 죽 둘러보다가 풍골 씨 침대로 다가간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얼른 일어나셔야지요?”
풍골 씨 눈에 이내 생기가 돌더니 이슬이 맺힌다. 앙상한 손을 내밀어 아들의 손을 잡는다. 그러는가 싶더니 침대 밑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 찾는 눈치이다. 이윽고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이거 가지고 가서 애들 과자 사 주거라”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말하는 풍골 씨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 넘쳐났다.
“아버지!”
앙상한 몰골의 풍골 씨 손을 잡고 흐느끼는 아들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병실을 휘감고 있었다.

EDITOR 편집팀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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