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근대와의 조우
기찻길 너머로 퍼져 나간 근대라는 시간
'대전 원도심'

요란한 기차 경적과 함께 ‘한밭’에 거센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1905년 경부선 철길이 놓이면서 한촌에 가까웠던 대전이 ‘교통의 요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역사 주변 대전의 원도심은 교통의 요지라는 수식이 갖는 인상만큼 번화하지 않다. 외려 시간이 멈춘 듯 백여 년을 머금은 장소가 소복하니 그 시간을 되짚어 기찻길을 건너보게 된다.

소제동 철도 관사촌



아름답고도 고요한 호숫가에 불어닥친 소란
대전역 동광장에서 솔랑산 언덕바지로 이어지는 소제동은 본래 아름다운 호수 ‘소제호’가 잔물결 짓던 마을이었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 우암 송시열이 그 모습에 반해 1653년 소제호 언저리에 집을 짓고 살았다.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송자고택이 바로 그 집이다. 그런데 오늘날 송자고택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호수는 보이지 않는다. 일제의 침탈이 시작되면서 고요하던 호숫가 풍경이 급변했다.
1905년 대전역이 문을 열자 많은 일본인이 대전으로 유입됐다. 1907년 소제호 주변에 신사가 세워지고 호숫가도 일본풍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1927년에는 호수마저 매립됐다. 솔랑산을 깎아 호수를 메웠고, 그 자리에는 소제동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그 후 소제동은 철도 관리자와 기술자를 위한 관사촌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左) 구(舊)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 中,右) 소제동 철도관사촌



땅거미처럼 낮게 깔린 철도관사촌
대전역 주변 3개 지역에 100여 채의 관사가 조성되어 하나의 마을을 이룬 것이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그중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은 6·25전쟁 때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 소제동 솔랑시울길 따라 형성된 동관사촌에 40여 채의 옛 관사가 남아 있다.
철도관사인지 아닌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있다. 지붕 아래 목재 벽면에 가로 살을 넣은 환풍구가 있고, 그 아래에 문패처럼 달린 판이 있다면 틀림없는 관사다. 그 판이 바로 철도관사 번호판이다. 번호판이 없더라도 철도관사에는 도드라지는 건축적 특징이 있다. 철도관사는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2호 연립주택’ 구조다. 건물 중앙의 벽을 경계로 건물 한 채에 두 가구가 나란히 배치됐다. 그 때문에 집의 정면 너비가 일반 주택에 비해 길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양쪽에 좌우 대칭이 되는 창고가 설치된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철도관사는 꽤 영향력 있는 관리자급과 기술자에게 제공됐으니 일제강점기 소제동은 대전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였단다. 그러나 광복 후 전쟁을 거치며 상당 기간 방치되어 노후된 철도관사촌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 다행히 2012년 대전시와 목원대학교 공동연구단인 ‘대전근대아카이브즈포럼’에서 소제동 사람들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프로젝트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레트로 유행을 타고 관사를 개조한 음식점과 카페가 속속 등장하며 근래 대전의 명소로 부상하게 됐다.
그러나 소제동 일대의 철도 관련 문화유산이 멋스러운 장소로 소비되는 데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미 소제동 일대에 젠트리피케이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전시는 지난해 9월 대전역 동광장에 있던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이하 ‘철도보급창고’)를 신안2역사공원으로 이전했다.
이 철도보급창고는 광복 이후인 1956년에 건설되었는데, 일제강점기의 목조 건축술이 적용된 데다 6·25전쟁을 거치며 근대 목조 건축물 대부분이 소실된 까닭에 그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런데 동광장 주변으로 주차장이 들어서면서 본의 아니게 수많은 자동차에 포위당한 모양새로 쓰임을 잃고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문화유산은 현장보존을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등록문화유산은 일정 범위 내 활용을 허용하는 가운데, 대전역사를 둘러싼 장소적 맥락에 변화가 발생했고, 복합환승센터를 비롯하여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사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대전의 근대 유산이자 우리나라 철도 유산의 일부를 없애버릴 수는 없다. 많은 고민과 논의 끝에 대전시는 철도보급창고를 이전하되 해체하여 복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듈 트레일러를 이용해 건물 전체를 옮기기로 했다.
이 ‘원형 보존 전체 이동 공법’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방식이다. 대전시는 이 철도보급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단장해 활용할 계획이다. 소제동 일대에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향후 철도관사촌도 일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전·보존될 것으로 전망된다.

테미오래 충청남도지사 공관 내부



시민 공간으로 재편된 도청소재지 시절의 흔적
철도보급창고 외에도 대전에는 이미 시민 공간으로 재편된 근대문화유산이 있다. 1932년 충청남도청사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조성된 옛 충청남도청과 관사촌 이야기다. 옛 충남도청사는 E자 평면 구성이며, 아치형 천장과 현관 중앙에 배치된 견고한 대리석 계단, 밝은 갈색의 스크래치 타일 마감 등 그 당시 건립된 관공서의 전형을 보여주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지금도 건물이 내뿜는 위용이 상당한데 1930년대 한밭 사람들에게 이 청사가 얼마나 압도적이었을지,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떠올려 보면 어렴풋이나마 이 공간을 둘러싼 100여 년의 시차가 서서히 극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12년 충남도청사가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청사는 현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구석구석 둘러보면 대전의 근현대를 더욱 풍성히 이해하게 된다.
한편 옛 충청남도청사 인근에 있는 충청남도지사공관(국가유산자료) 관사 건물이 밀집된 대전 충청남도청 구 관사 1·2·5·6호와 부속창고(국가등록문화유산)가 2019년 ‘테미오래’라 명명하고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힐링공간으로 개방됐다. 옛 충청남도관사촌은 소제동 철도관사촌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 당시 관등과 직급에 따른 주택 규모와 가구 설치 규정이 있었지만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철도관사와 달리 한 필지에 한 가구가 배치되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또한 한국식 온돌과 일본식 평면 구조, 서양식 외관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절충된 것도 인상적이다. 현재 각 공간은 전시실, 갤러리, 공방, 살롱 등 다양한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전 원도심에서 마주한 근대문화유산은 원형 훼손을 최소화하는 데서 나아가 현재적 쓰임과 가치까지 내다보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전의 근대문화유산은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답을 찾아 기찻길 너머로 발걸음할 시간이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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