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정책주간지 K-공감
여성 1호 대통령 경호원 출신 배우 이수련
'무표정 경호원서 천의 표정 배우로 오디션만 150번 내 삶에 ‘안 돼’는 없다!'

매일 새벽 4시 30분, 이수련 씨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다.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하얀 입김이 까만 새벽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청와대 경호원을 시작한 2004년부터 2024년까지 2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은 그의 루틴이다. 그 사이 직업은 경호원에서 배우로, 이름은 이미령에서 이수련으로 바뀌었지만 새벽 달리기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수련 씨는 경호원을 했기 때문에 배우도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들어오는 길에 종이신문을 집어든다. 정치면부터 사회면, 문화면까지 꼼꼼히 읽는 습관 역시 오래됐다. 사실 그의 운명을 바꾼 것도 이 신문이다. 이화여대 영문학과 재학 당시 언론사 공채를 준비하던 그는 우연히 신문 하단의 ‘경호원 모집 공고’를 봤다.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을 정도로 단련된 체력과 외국어 능력, 취업을 준비하며 쌓인 상식이 그를 ‘대한민국 여성 최초 청와대 경호원’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신문을 꼼꼼히 읽지만 뉴스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모든 뉴스에 ‘나였다면?’을 대입시킨다. ‘내가 이 사람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한다. 10년 동안 엑스트라부터 단역, 조연을 거치면서 불륜녀도 돼보고 소매치기도 돼봤다. 표정 없던 그의 얼굴에 다양한 삶의 군상이 담겼다.
배우로 산 시간이 경호원으로 산 시간만큼 길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1호 여성 경호원’이 수식으로 붙는다. 2023년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내가 출연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나의 지난 이력이 다시 화제가 됐다. ‘이 사람이 그 배우야?’라고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져서 감사했다. 액션 연기도 많이 했지만 사기꾼, 불륜녀, 범죄자, 진상고객 같은 역할도 했다. “같은 사람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기분이 좋다.
진상고객 역할을 하기 위해 직접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첫 배역을 따내기 위해 150번이 넘는 오디션을 봤다. 배역이 없는 동안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석쇠에 닭다리 굽는 일도 했고 신문 배달도 했다. 그중에서도 배달 아르바이트는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나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이 업체 사장님일 때도 있고 고객일 때도 있고 건물 관리인일 때도 있다. 그 모든 이들의 표정과 태도를 보면서 ‘이 표정과 감정을 언젠간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경호원일 때는 아무 표정이 없어야 했는데 지금은 모든 표정을 다 담아야 한다.
그게 제일 어려웠다. 경호원은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무표정이 나의 표정이었는데 연기를 시작하면서 그걸 바꿔야 했다. 몸은 유연한데 얼굴이 유연해지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단단했던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니까 표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반대로 경호원으로서 시간이 연기에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일단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돼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사실 경호원을 안 했다면 배우가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배우는 ‘굉장히 특별한, 아주 뛰어난’ 끼와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호원을 하면서 배운 것이 ‘아니라고 하지 말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봐’이다. 경호를 할 때 ‘그건 안 된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상황, 어떤 상태에서도 최선의 대비를 해야 한다.
오늘 인터뷰에도 먼저 와서 장소를 탐색하고 있더라.
오랜 습관이다. 비상구는 어디인지, 어디로 탈출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전기가 어디서 흘러들어오는지도 미리 봐두고 천장이 무너진다면 어느 정도의 무게일지도 가늠해본다. 경호원은 살고자 하는 본능까지 거슬러야 하는 직업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이 아닌 경호하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였나?
딱 한순간을 꼬집어 말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난다. 행정 수반뿐 아니라 외국 국빈들 경호 임무도 수행했다. 가장 큰 보람은 경호원 생활 10년 동안 사고가 없었다는 거다. 사고가 있었다면 그건 실패한 경호다.
안정된 직업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었다. 후배 여성 경호원도 여럿 들어왔다. 후배들에게 나의 노하우와 내가 입던 옷도 다 물려줬다. 양복점에서 안주머니가 많이 달린 양복을 맞춰서 필요한 물건을 다 넣고 다녔다. 지금은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어서 좋다. 스타나 셀럽이 되고 싶어 배우가 된 게 아니다. 단역이나 조연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나는 성공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연기가 하고 싶다.
오디션만 150번 이상 봤다고?
모든 오디션이 재밌었다. 연기를 전공한 적도,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연출가나 작가를 만날 기회가 오디션장밖에 없었다. 모든 걸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비한 걸 모두 하려다 보니 오디션이 길어질 때도 많았다. 이제 제발 나가달라고 할 때까지 있었다(웃음). 그렇게 하고 나면 결과와 관계없이 후회가 없었다.
상처를 받은 적은 없었나?
별소리를 다 들었다. 나이가 많다는 건 예사였고 대부분 ‘해봤자 안 될 거다’라는 태도였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상처를 안 받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말들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했다. 10년 가까이 소속사 없이 혼자 다 했다. 스태프 중 누군가에게 “다음번에도 수련 씨와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을 듣는 것이 내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면 힘들지 않나? 체력은 괜찮은가?
나는 우심방 중격 결손을 가지고 태어난 선천성심장병 환아였다. 심방 사이 벽에 구멍이 있어 혈류가 생기는 병인데 대부분 자연적으로 막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아 수술을 했다. 지금도 가슴에 17㎝ 정도의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그래서 어려서는 밖에서 뛰어놀지 못했다. 부모님이 항상 걱정했다. 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지 않나(웃음). 부모님을 설득해서 태권도장에 다녔고 지금은 태권도 5단이다.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심장수술 이력이 있어서 못 갔다. 경호원 시절에도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체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가?
타고났다기보다 노력과 연습으로 채우는 편이다. 사격훈련을 할 때도 경험이 없으니까 남들보다 2~3배 연습했다. 지금은 담배꽁초를 맞힐 정도로 잘 쏜다. 인생이랑 비슷하다. 목표나 꿈은 항상 멀리 있다. 그 표적을 한 번에 맞히려고 하면 늘 빗나간다. 그보다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총기의 조준선을 잘 봐야 한다. 단숨에 맞히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내가 든 총의 가늠쇠와 가늠자를 흔들리지 않고 유지하다보면 저만치 보이는 표적에 명중한다. 지금 하루하루도 ‘주어진 눈앞의 일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꿈꾸는 곳에 닿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배우를 좀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시간을 돌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경호원이 될 것 같다. 체력, 근성, 팀워크 등 여러 면에서 더 강하고 나은 사람이 됐다. 내가 뭘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도 배웠다. 나는 경호원을 했기 때문에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스물 셋, 그가 경호원이 됐을 때 사람들은 “너무 어리다”고 했다. 서른 셋, 그가 배우를 시작할 때 사람들은 “나이가 너무 많다”고 얘기했다. 이제 마흔 셋이 된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다.
이수련 씨는 아직도 청와대 꿈을 꾼다. 불 꺼진 청와대 경내를 돌며 당직을 서는 꿈, 아침에 연무관에서 운동하는 꿈, 낙하산을 메고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꿈. 다른 사람들은 꿈에 대통령이 나오면 복권을 사기도 한다는데 그에게 대통령이 등장하는 꿈은 그저 일하는 꿈이다. 어떤 꿈을 꾸든 그는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언제든 일할 수 있기 위해서다.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요리도 배우고 외국어도 배우고 춤도 배운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늘 대비한다.
“한 가지 직업으로만 살기엔 인생은 너무 길다”고 말하는 이 씨는 늘 한 가지를 생각한다. 도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될 때는 일단 도전해볼 것, 그 도전이 헛되지 않도록 오늘 하루에 충실할 것.
이수련 씨가 알려주는 호신 팁!
이수련 씨가 뉴스와 신문을 보다가 가장 흥분하는 순간은 약자를 향한 범죄 사건을 접했을 때다. “나한테 걸렸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보통 사람들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1. 엘리베이터 등 밀폐된 공간에 들어갈 때는 주위를 살펴라.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 근처에 있다면 전화를 받거나 다른 용무가 있는 것처럼 자리를 피하는 게 좋다. 위험한 상황이 오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예방하는 것이다.
2. 누군가 공격할 때는 소리를 질러라.
“불이야”처럼 음절이 짧은 단어를 외치면 주위를 환기하는 데 도움을 준다.
3. 급소를 가격해 도망갈 시간을 벌어라.
눈을 찌르거나 코를 때리거나 머리를 이용해 상대의 머리를 친다. 혹은 다리로 몸의 중심을 가격한다. 이때 힘을 최대한 모아 일격을 가해야 한다. 상대가 타격을 입었을 때 최대한 빨리 도망친다.
4. 평소 호신용품을 들고 다녀라.
호루라기나 호신용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길 권한다. 위급상황에 꺼내기 쉽도록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에 걸고 다녀야 한다.

EDITOR 편집팀
K-공감
전화 : 044-203-3016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갈매로 388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