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K-유산속으로
전통과 현재를 넘나드는 즐거움
'계암고택 체험 심정보·조혜린 가족'

충청남도 서산시에 자리잡고 있는 고택에 참새 같은 아이들 셋이 포로롱 날아들었다. 펜션과 풀빌라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국가민속문화재인 고택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선물한 아빠, 엄마가 흐뭇한 미소로 아이들의 뒤를 따른다. 서산 경주 김씨 고택, 계암고택으로도 불리는 이곳에서 보낸 특별했던 시간을 전한다.

전통과 현재를 넘나드는 즐거움 ‘계암고택’ 체험 심정보·조혜린 가족



고택 숙박, 첫 경험의 설렘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즈넉하다. 계암고택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가문의 위용을 말해주는 듯한 솟을대문, 기와가 켜켜이 자리잡은 고운 지붕선, 사박사박 밟히는 흙의 푹신함, ‘ㅁ’자 집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과 편안함까지… 도시민의 복잡한 심경을 달래는 데 그만인 풍경이 사방에 가득하니 엷은 미소가 절로 감돈다.
계암고택이 있는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마을은 경주 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500년 전부터 모여 살았던 집성촌이었다.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임꺽정을 토벌하고 얻은 사패지(賜牌地)를 근거로 집성촌을 이룬 이 지역에서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태어났고 추사 김정희도 가문의 일원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또 배출한 정승의 숫자가 무려 37명이었다니, 인재가 끊이지 않는 명당이자 명문가였던 셈이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계암고택은 김연의 후손인 김기현·이효원 부부가 직접 생활하는 공간이자 전통한옥문화체험 숙박시설이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고택으로, 하루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이곳을 방문한 가족은 심정보·조혜린 부부와 규민, 아현, 아린이다.
“저희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또 애들이 어리기 때문에 지금까지 휴가나 여행은 풀빌라나 펜션으로 가는 게 당연했습니다. 고택 숙박은 아이들에게도, 저희 부부에게도 첫 경험이에요.”
아내 조혜린 씨가 활짝 웃는다. 이 끝부터 저 끝까지 달려도 “아래층에서 올라온다”라고 아무도 엄포를 놓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고택은 신나는 놀이터 그 자체다. 무엇보다 이곳 계암고택의 장점은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데 있지 않다. 경험 혹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게 이곳의 매력이기도 한 것이다.

左.기와 탁본 체험에 나선 가족 右.따끈한 온돌을 좋아하는 아이들



느끼는 우리 전통
오늘 규민이네 가족이 해 볼 체험은 ‘기와 탁본’이다. 사랑채 툇마루 앞에 기둥을 세우고 차양을 덧달아 만든, 여느 고택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 안에 마련된 나무 탁자 위에 탁본을 위한 도구가 차례대로 준비되자 아이들은 물론이고 엄마, 아빠의 눈도 초롱초롱 빛난다. 오늘 탁본을 가르쳐줄 사람은 계암고택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이효원 선생이다. 먼저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간단하게 설명 해 준다.
“처마끝 기와 한쪽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을 ‘막새’라고 해요. 보통 집에서는 지금 보는 것처럼 하얀 회로 막았지만 궁궐에서는 다양한 무늬를 찍어서 장식했지요. 오늘 여러분은 마음에 드는 막새 모양을 골라 한지에 찍어볼 거예요. 먼저 모양을 골라보세요.”
아이들과 함께 엄마, 아빠도 열심히 참여한다. 한지 위에 점점 막새 모양이 도드라지자 다들 신기해한다. 가족 모두가 탁본 경험은 처음이라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사진으로 남기느라 바쁘다.
이제 다들 궁금해하던 방으로 들어갈 차례다. 창호지가 발라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 모두가 “우아!” 감탄사를 연발한다. 크진 않지만 정갈한 공간, 노란 장판이 깔린 온기 가득한 바닥, 옆 칸에는 책을 볼 수 있는 낮은 탁자와 두꺼운 방석 등 모든 게 처음 보는 풍경인 덕분이다. “예전에 할머니 댁이 이랬다”라고 설명하는 아빠 심정보 씨의 얼굴에 마치 할머니 집에 온 듯한 포근함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건 낮은 벽장에서 직접 두꺼운 요와 이불을 꺼내 바닥에 깔고 그 안에 쏙 들어가는 것. 화로에 묻어둔 고구마를 뒤적여 호호 불어가며 손주들에게 까줄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 또한 절로 그려진다.
아이들은 온돌이나 아랫목에 호기심을 보였다. 버튼 하나면 따뜻한 물과 집안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한다는 것, 서양 벽난로와 다른 모습에 특히 규민이가 관심이 많은 듯했다. 여름철의 기후환경에 대응한 마루방과 겨울철의 기후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온돌방은 우리나라 대표 주거 요소로, 현재 온돌방 생활양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온돌방’ 문화로 대중화됐다. 침대가 아닌 두꺼운 솜이불에 누워 온기를 느끼는 아이들, 아이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난을 치면서 온돌문화를 온전히 즐겼다.

01.우물 안을 확인하는 부자 02.사랑방에 마주 앉은 부녀 03.실제로 아궁이를 처음 본 규민이를 위해 불을 지펴보는 아빠



잊지 못할 고택에서 쌓은 추억
동생들이 신나게 이불 위에서 뒹구는 동안 규민이가 아빠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말로만 듣던 아궁이를 직접 보기 위해서이다.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아궁이를 보자 규민이가 요리조리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아빠와 함께 잘 마른 장작을 아궁이 안에 밀어 넣자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장작 타는 냄새가 퍼진다. “옛날에는 이렇게 아궁이를 통해서 방을 따뜻하게 하고 밥도 지었다”라는 아빠의 설명에 규민이가 “신기하다”라며 열렬히 호응한다. 안마당의 우물을 본 규민이가 도르래를 이용해 물을 퍼올리는 걸 책에서 본 적이 있다며 아빠와 함께 덮어놓은 뚜껑을 열어 연신 안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한다. 작지만 큰 공간, 고택에 짧은 겨울 해가 서서히 땅거미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즐거움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다.
“여기에 오기 전에 규민이한테 우리 조상님이 살던 옛날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올 거라고 얘기해 줬거든요. 무척 기대했는데 막상 와 보니 공기도 좋고, 애들이 교과서나 영상을 통해서만 보던 곳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까 저희 부부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남편의 말에 아내도 고개를 끄덕인다.
“온돌방이 주는 따뜻함과 여유가 정말 좋네요. 요즘 아이들은 사실 어른 못지않게 바쁘게 살거든요. 우리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오붓하게 가족만의 여유를 찾으니 정말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부부는 우리 전통과 문화를 아이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었다. “코딩, AI 같은 첨단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는 세상이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미래를 말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 전통과 문화를 경험하고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자긍심과 긍지를 갖는다면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 가족에게 오늘의 고택 체험과 온돌문화 경험은 문득 문득 꺼내보고픈,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 남길 바라 본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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