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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똑같지만…십장생도의 붉은 해
'옛 그림이 전하는 지혜'

새해 첫날의 일출은 특별해 보입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합니다. 분명 어제 뜬 해와 오늘의 해가 똑같은데도 다르게 보입니다. 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사라진 날들에 대한 애틋함으로 해를 봤다면 오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후회와 애잔함이라면 다가올 시간들은 두근거림과 설렘입니다.

‘십장생도’, 비단에 채색, 187.5×350.4㎝, 국립고궁박물관



해는 미래를 상징합니다. 해는 어둠을 몰아내고 온기를 전해주며 지상의 생명들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인류 최초의 신앙은 태양숭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동굴 속에서 밤새 추위에 떨던 원시인들에게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해는 감동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추위를 물리쳐줄 온기였고 먹을 것을 찾게 해주는 밝음이었을 테니까요. 한마디로 해는 전지전능하고 막강한 힘의 원천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해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열폭 병풍으로 된 ‘십장생도’에도 하늘에 붉은 해가 떴습니다. ‘십장생(十長生)’은 ‘열(十) 개의 오래(長) 사는(生) 것들’을 말합니다.
해, 산, 물, 바위, 달, 소나무, 불로초, 거북, 사슴, 학입니다. 때로는 구름이 추가될 때도 있습니다. 십장생도는 주로 궁중에서 사용했습니다. 십장생도에 해가 들어간 이유는 하늘의 태양이 그러하듯 왕의 권위가 백성에게 태양처럼 밝게 비추기를 기원하는 차원에서였습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권위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었습니다. 장수를 나타내는 상징물들이 열 개나 들어간 ‘십장생도’만 봐도 당시 장수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에는 십장생 외에도 천도복숭아가 보입니다. 천도복숭아는 삼천갑자 동방삭이 곤륜산의 주인인 서왕모의 정원에 서 훔쳐 먹고 18만 년을 살았다는 전설 때문에 장수식품으로 유명합니다.
천도복숭아를 먹는다고 해서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천년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십장생이 들어간 화려한 병풍을 두르고 왕처럼 산다고 해서 꼭 행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 속에 묘사된 십장생을 보는 순간만큼은 잠시라도 버거운 현실에서 벗어나 영혼이 쉴 수 있을 것입니다. 지친 영혼을 쉬게 함으로써 회복시키는 작용이야말로 그림의 가장 큰 효능 중의 하나입니다. 왕조시대에는 왕만이 이런 호사를 누렸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왕과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2024년에도 365일 어김없이 해는 떠오를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짙은 먹구름과 천둥번개 때문에 해를 볼 수 없는 날에도 저 높은 곳에는 해가 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인생이 온통 해가 사라진 어둠 같더라도 부디 신념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해는 매일 우리의 앞길을 비추기 위해 떠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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