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명사와 국가유산
첨단기술로 복원한 국가유산 K-뮤지엄의 힘을 보여주다
'문화재디지털복원가 박진호 고려대 연구교수'

21세기 문화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세계 각국이 자국 문화의 위상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려 애쓰는 것도 경제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힘과 그 영향력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국내 문화재디지털복원가 1세대 박진호 고려대 연구교수는 시공간을 초월해 세계에 국가유산을 전파하고, 해외 문화유산을 우리 기술로 복원해 냄으로써 K-컬처의 영향력을 K-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뿌리고 있다.

문화재디지털복원가 박진호 교려대 연구교수

타임머신을 꿈꾸던 소년, 디지털 공간으로 뛰어들다
지난 201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전시가 펼쳐졌다.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서 동아시아 불교유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석굴암이 3D 디지털 영상물로 재현된 것이다. 박물관을 찾았던 수많은 뉴욕 시민과 해외 관광객들은 신라시대, 더 나아가 석굴암에 깊이 매료됐다. 중국이나 일본으로 대표되던 동양미술에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이 전시회의 성공 뒤에는 국내 문화재디지털복원가 1세대로 꼽히는 박진호 교수가 있었다. “전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의 대표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1호인 석굴암을 선보였다는 사실이 남다른 의미를 가졌지요.





박진호 교수는 이 전시를 위해 석굴암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3D 스캐너를 이용해 최대한 세밀하게 촬영해 현장 관람객도 볼 수 없는 석굴암의 뒷모습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뉴욕에 있던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3D로 복원된 석굴암의 정교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탄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라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그때의 영광이 기쁘게 떠오른다.
그는 지난 24년 동안 문화재디지털복원가로 활동해 왔다. 문화재디지털복원가란 유·무형의 국가유산을 첨단기술을 통해 복원하여, 사라졌거나 훼손된 국가유산, 역사적 인물, 없어진 도시 등을 새롭게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전문가를 일컫는다. 국가유산 복원이라는 박진호 교수의 꿈의 시작은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시대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언젠가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겠다는 꿈을 키워 왔다.




하나의 한류, K-뮤지엄의 위상
“물리학을 공부해 보니까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했지요. 그러다가 디지털 세계에서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디지털복원이라는 답을 얻었어요. 그래서 1999년부터 작업을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한 박진호 교수의 국가유산디지털복원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00여 건에 달한다.
박진호 교수는 올해 태국국립박물관에서 디지털문화유산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태국 아유타 시대의 유물과 그림을 우리나라의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결과물을 선보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복원기술로 태국의 유물과 유적을 복원해 전시한다는 사실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에요. 이와 같은 복원기술의 수출을 저는 ‘K-뮤지엄’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K-뮤지엄은 글로벌 시장에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한류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인류학을 전공했지만 디지털복원을 위해 다양한 첨단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융·복합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박진호 교수는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 안에서 문화재디지털복원가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을까?
“한국문명교류연구소의 정수일 교수님이 제게 늘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우리는 조선시대를 두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나라라고 배워 왔는데, 그 이전인 고려나 삼국시대로 가면 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한 나라라고요. 석굴암은 토속적인 신라 장인의 솜씨로 만든 문화유산이 아니라 로마에서 시작한 실크로드가 마침내 동아시아에 다다라 완성을 이룬 작품이라는 거죠. 저는 역사학자, 고고학자는 아니지만 학자분들이 우리 한반도 역사의 이면을 밝혀내면 그 역사적인 팩트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나 AR, VR 같은 다양한 기술로 재현해 내고 있어요.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동원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여 누구나 국가유산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국가유산디지털복원을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미디어, IT를 전부 능숙하게 다뤄야 한다며 박진호 교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겸양의 말을 덧붙인다.

01. 2006년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의 국보급 유물인 자이야바르만 7세 조각상 세계 최초 3D 스캔 작업 현장
02.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간다라 불교 유적인 탁티바히 사원을 디지털복원 후 가상현실로 콘텐츠상으로 관람 중인 모습
03. 현재 구상 단계에 있는 신라 타임머신 XR-Bus
04. 박진호 교수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베트남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카이딘 황릉을 가상현실로 디지털복원한 모습

국가유산디지털복원, 도시에서 사람으로 확장
그가 지금까지 해 온 국가유산디지털복원 작업은 우리나라는 물론 타국의 문화유산과 역사 콘텐츠에 수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경기도 이천시에서는 그가 디지털복원 작업을 했던 고구려의 안학궁 복원물을 기반으로 해서 역으로 거대한 실제 모형을 만들어 전시 중이다. 또한 첫 해외 프로젝트였던 ‘앙코르와트 디지털 복원 작업’의 높은 완성도 덕분에 박진호 교수는 타국의 세계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해외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박진호 교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국가유산디지털복원작업을 ‘도시’에서 ‘사람’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에 경주 서라벌 디지털복원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 교수가 1,300년 전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잘 재현됐는데 왜 신라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느냐고 묻더라고요. 그 말에 좀 충격을 받았어요. 과거의 환경과 도시를 재현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 안에 사람이 없다면 과연 그게 진정한 복원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들에 대한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는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유일한 그림인 중국 양나라 때의 <양직공도(梁職貢圖)>를 바탕으로 그곳에 등장하는 삼국시대 사람들을 꼼꼼히 연구 중이다. 그 시대 사람들의 얼굴 형태는 물론 복식까지 생생하게 되살려 현대인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디지털복원은 원래 유물과 유적의 독창성을 밝혀내는 작업인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살아가려면 과거에 자기가 속한 개인과 집단, 국가, 민족에 대한 추론이나 기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하는 작업들이 과거 우리 조상과 민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밝혀주고, 이를 통해서 개인의 미래를 행복하게 설계하는 단초를 제공해주길 바랍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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