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함께 즐기다-잇다,놀다
쪽빛보다 더 푸른 진심을 우리 일상에 전하는 손길
'정찬희 염색장 이수자'

청아한 하늘을 닮은 푸른 물결의 천이 바람에 일렁인다. 쪽빛염료는 초록색 쪽풀에서 나와 발효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염색이 가능한 꽃물1)이 된다. 꽃물에 천을 재차 담가 내면 고운옥빛에서부터 까마귀 깃처럼 검붉은 감색까지 다채로운 쪽빛이 생기를 얻는다. 오래도록 이어져 온 전통 쪽염색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이 어우러져 전승되고 있는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에서 정찬희 이수자를 만나보았다.
자연이 품은 빛깔에 정성으로 더하는 깊이
천연섬유와 종이, 그리고 나무까지 다양한 소재를 선연한 파랑으로 물들이는 것이 전통 쪽염색의 매력이다. 항아리 가득 들어찬 꽃물(전통 쪽염색 과정에서 쓰이는 염료)에 손을 담가 옥사(玉絲) 원단을 들어올리는 정찬희 염색장 이수자가 환한 미소로 진하게 묻어나는 색을 어루만진다. 자연이 품은 빛깔이 스며든 광목을 햇빛 아래 드리우면, 살랑이는 바람으로 색의 깊이는 더해진다.
“아버지가 국가무형문화재 염색장 보유자이시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항상 그 모습을 지켜봐 왔어요. 그러다 보니 천연염색의 길을 운명처럼 여기며 성장했어요.” 염색장 보유자 정관채가 6.25전쟁 이후 자취를 감춘 전통 쪽염색을 되살려 전승에 매진해 왔다면, 정찬희 이수자는 소중히 이어온 가치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연관 분야인 의류학, 섬유공학, 공예 중 진로를 고민했어요. 전통 쪽염색이 폭넓게 쓰이게끔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론을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전남대학교에서 고분자섬유공학 전공을 선택했고, 동 대학원에서 7년여간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어요.”
2022년 초, 드디어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현재 같은 학교 화학공학부 소속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쪽 염료를 추출하는 옛 기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생물 발효에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16년부터 ‘컬쳐앤조이’를 창업해 천연염색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아버지가 염색장 보유자로 지정받은 2001년부터 해마다 이곳 전수교육관에서 꾸준히 전시를 개최하고 있어요. 기존에는 전시기획을 담당하다가, 2015년부터 제 작품도 전시하기 시작했어요. 관람객분들 대부분이 전통 쪽염색의 색감에 반하시고, 이를 응용한 다양한 작품에 매력을 느끼시더라고요.”

정찬희 염색장 이수자


전통에서 현대로, 천연 쪽염색이 완성해 나갈 가치
쪽염색이 그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일상에 멋을 더할 수 있도록 공예품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 가는 작품활동은 정찬희 이수자에겐 보람이자 사명이다. 지난 1년간 전승자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유산 창의공방’에 참여한 정찬희 이수자는 이를 계기로 더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작년 3월 무렵에 누비장 이수자, 매듭장 이수자, 사기장 이수자등과 레지던시에 입주했어요. ‘Pro-Pose; 전문가의 제안’이란 주제로 이수자 5명이 개인작품과 협업작품을 창작했어요. 전통 기술의 현대적 쓰임새를 고민하고 제안하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아이디어가 나왔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01. 연꽃 전등 (사진. 정찬희) 02. 인디고 컬럼 (사진. 정찬희) 03. 전통 쪽염색 손무명 원단 (사진. 정찬희) 04. 인디고 가리개 (사진. 정찬희)


쪽염색 과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형광빛의 노란색부터 녹색을 거쳐 푸른색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순간을 설치 작품으로 표현한 <인디고 스펙트럼>과 원기둥 형태의 조명 모듈 <인디고 컬럼>이 세상에 나왔다. 또, 이순협 누비장 이수자와 협업해서 각각 쪽염색의 푸른색 그러데이션과 소목 염색한 붉은 계열 천을 켜켜이 배열해 한복의 배래 형태로 누빈 작품 <색. 동.>은 사무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매트로써 활용을 제안하였다.
돌이켜보니 어느새 바쁘게 지낸 한 해가 가고 다시, 봄이 왔다. 3월에 파종했다는 쪽풀이 따스한 볕 아래 여린 싹을 내밀었다. 늘 그랬듯이 7~8월이면 쪽풀을 수확하여 독에 채워 넣고 이틀간 물에 담가 색소를 추출할 것이다. 소석회를 넣고 힘차게 저어 침전한 앙금을 모으면 사자성어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뜻하는, 쪽보다 더 진한 니람(泥藍)이 나온다.
“니람과 잿물을 1:10으로 혼합해 섞은 다음 30℃ 온도를 한 달간 유지합니다. 전통 방식으로는 미생물 발효, 즉 환원을 반드시 거쳐야 염료를 만들 수 있거든요. 반면 현대 산업 과정에선 하이드로셀파이트라는 강한 환원제를 이용하기에 안타깝게도 청바지 등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질오염이 발생해요. 이를 개선할 방법은 바로 선조가 우리에게 물려준 지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옛것 역시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여지는 있다. 따라서 정찬희 이수자는 자신의 역할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며 참신한 시도를 통해 전통염색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조심스레 전한 다짐에서 더없이 참된 진심이 묻어난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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