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형유산의 맛·멋·흥
살아있는 무형유산이자 오래된 미래 씨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100대 문화상징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씨름은 범인류적인 의미를 갖는 스포츠이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 신체활동의 일환으로 출발한 씨름은 인류의 오래된 경기 가운데 하나이다. 일찍부터 각 나라와 민족은 자연환경과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저마다 개성 있는 씨름을 발달시켜 왔다.
한국인의 삶 속에서 이어져 온 씨름
씨름은 개인 경기이지만, 공동체 놀이의 성격을 갖는다. 특히 17세기 이앙법이 발달하면서 씨름은 모내기, 김매기, 추수 등 농사의 절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조선 후기에 씨름이 단오, 백중, 추석 등의 세시풍속이자 마을공동체의 의례로 정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씨름이 근대식 경기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생기면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가 열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해방 후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바꾼 뒤, 1966년부터는 종래의 경기 규칙을 왼씨름으로 통일하였다. 1983년 민속씨름의 출범과 함께 이만기, 강호동 같은 스타를 배출하면서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잠시 위축되었다가,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에 이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중이다.




가장 오래된 무예이며 놀이이자 스포츠
씨름은 주로 모래가 있는 강가나 생활 주변에서 펼쳐졌다. 경기는 애기씨름(어린이), 중씨름(청소년), 상씨름(성인)으로 나누어 마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가운데 성인 경기에서 이긴 최종 승자에게는 ‘장사’의 칭호가 부여되며, 부상으로 황소를 주었다. 황소를 주는 관습은 농사를 더 잘 지으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장사는 소를 타고 마을을 돌며 사람들의 축하와 환호 속에서 행진을 벌였다. 씨름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한국 씨름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샅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샅바는 허리와 한쪽 허벅다리에 둘러 묶는 천으로 만든 끈을 말한다. 다른 문화권의 씨름에서도 바지를 잡거나 허리에 두른 띠나 벨트를 잡는 사례가 있지만, 허리와 한쪽 허벅지에 낀 샅바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씨름의 특징은 샅바씨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이러한 씨름을 ‘고려기(高麗技)’라고 불렀다. 한국의 씨름이 중국은 물론 몽골, 일본의 그것과도 크게 달랐음을 잘 말해 준다. 샅바씨름은 샅바를 지렛대로 삼아 힘과 기술을 다양하게 쓸 수 있다. 그 결과 승부가 빠르고 박진감이 넘치며, 체구가 작아도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때 관중에게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짜릿한 쾌감은 샅바씨름이 주는 최대의 즐거움이다.
둘째, 공동체 문화라는 점이다. 씨름은 농사와 관련하여 세시풍속으로 정착하였다. 정월 초에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 위해, 가뭄이 심할 때 비를 기원하기 위해, 농번기에는 마을 주민의 단결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씨름이 성행하였다. 모내기할 때 어느 마을에 물을 먼저 댈 것인가를 놓고 마을대항 씨름대회가 열렸다. 경기에서 이기는 마을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먼저 쓸 수 있었다. 따라서 씨름은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 전체의 역량을 집결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소통과 사회적 연대 그리고 축제의 한마당으로 씨름이 한국인의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셋째, 문화정체성으로서의 상징성이다. 씨름은 가장 오래된 무예요, 놀이이자, 스포츠이다. 근대 시기에 새로운 스포츠가 도입되어 확산될 때, 씨름은 고유한 종목으로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씨름은 ‘국기’라 불리며, 식민지 시기에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버팀목이자 구심점으로 작용하였다.

01. <각저총 '씨름도'>, 한성백제박물관 소장 : 각저총의 널방 동남벽에 그려진 씨름도를 본떠 그린 모사도
02. 씨름, <단원 풍속도첩>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 보물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중 씨름을 묘사한 풍속화)
03. 다쾌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 씨름과 택견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놀이를 통하여 백성들이 크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그림)


인류무형문화유산 남북의 첫 공동등재
씨름은 2018년 11월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공동 유산으로 인정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공식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다.
씨름 등재 논의는 2014년 7월에 처음 시작됐다. 당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무형유산보호 협력회의에서 남북한은 씨름의 공동등재 의사를 교환했으나, 2015년 3월 북한이 단독으로 씨름 등재를 신청하자 한국도 2016년 3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북한이 2016년 제11차 정부간위원회에서 정보보완 판정을 받으면서 2017년 신청서를 다시 제출하였다. 유네스코 심사 규정에 따라 2016년에 제출된 한국의 신청서와 2017년에 제출된 북한의 신청서가 2018년 같은 해에 심사 선상에 올랐다.
그러다가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 당시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남북 공동등재를 제안했고, 이후 평양에 유네스코 특사가 파견되는 등 공동등재 논의가 급 물살을 탔다. 결국 정부간위원회 24개 위원국들은 남북 씨름이 그 연행과 전승 양상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의미에 공통점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결정이라는 의미도 더해져 만장일치로 공동등재를 결정하였다.
씨름의 규칙 속에는 경기 기술을 표현하는 고유한 언어가 잘 담겨있다. 씨름의 전승이 곧 옛 고유어를 전승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씨름은 2006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100대 문화상징으로 선정되었으며, 2017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세기 초 씨름을 하는 소년들(사진.문화재청)


분단을 넘어 세계를 잇는 무형유산
씨름은 한민족과 생사고락을 같이 해 온 살아있는 유산이다. 하지만 지난 1948년 남북이 분단된 뒤 씨름도 갈라졌다. 그 결과 남북의 씨름은 기술, 용어, 체급, 복장, 장소 등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샅바를 매고 경기하는 방식은 똑같다. 북한의 각 지역은 씨름의 다양한 기술적 특성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 씨름이 한국 문화의 기반이자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상징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씨름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는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실제로 남북한이 개별 신청한 유산을 유네스코에서 만장일치로 공동등재시킨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씨름이 분단을 넘어 세계를 이은 셈이었다. 실제로 씨름은 그 명칭과 형태는 달라도 많은 나라에서 즐기는 놀이이자 경기이다. 이 점은 각 나라와의 씨름 교류 가능성을 높여 준다. 저마다 발달시켜 온 씨름을 소개하고 각 나라의 씨름 마당을 한자리에 마련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몸 문화를 경험하는 흥미로운 자리가 될 것이다.
씨름은 두 사람이 맞붙어 힘을 풀어내는 몸의 제전(祭典)이다. 하나의 끈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씨름이 갖는 매력이다. 허리와 허벅지에 매어진 샅바에는 가능한 한 위험성을 배제하며 힘과 기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고민한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가 스며 있다. 맨몸으로 힘을 겨루는 씨름 경기에는 감성적 원시성과 합리화된 근대성이 잘 결합되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씨름은 현대인과 그의 옛 선조 사이에 몸짓의 연속성을 느끼게 해 준다.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는 씨름판은 늘 열린 공간이자 오래된 미래가 분명하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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