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잇다, 놀다
전통과 현대를 넘어 신명 나게 어우러지는 ‘모두와 탈춤’
'천하제일탈공작소'

가지각색 익살스러운 탈 뒤에 살포시 얼굴을 감추고, 무대 위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때론 부조리한 지배계급을 향해 신랄한 한마디를 던지는 하인 말뚝이었다가, 어느 순간 광기에 휩싸인 전쟁영웅 오셀로로 변신한다. 탈춤을 기반으로 시대와 교감하는 천하제일탈공작소는 객석을 넘나드는 ‘모두의 탈춤’을 넘어 다 같이 어우러진 ‘모두와 탈춤’으로 신명 난 춤판을 벌이고 있다.





우리 문학부터 그리스 비극까지, 해학 넘치는 탈춤으로 승화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듯 거칠고 붉은 오셀로가 탈을 벗자 환하게 미소 짓는 이주원 대표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속내를 감춘 모사꾼인 이아고가 한 겹 민낯을 벗어내자 재미난 표정을 한 허창열 대표가 얼굴을 내민다. 이 놀라운 ‘탈바꿈’은 바로 천하제일탈공작소를 이끄는 두 사람이 무려 17년간 탈춤판을 벌일 수 있게 된 탈춤의 매력 중 하나이다.

천하제일탈공작소


“2006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탈춤 전공자 셋이 모여 천하제일탈공작소를 만들었습니다. 탈춤을 정말 추고 싶어서 흥에 목말라 직접 춤판을 연 셈이죠. 다양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탈춤에 대한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어요. 지금도 전통 탈춤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국 13개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탈춤꾼 여러분들도 가세해 큰 힘을 보태주고 있고요.”
허창열 대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주원 대표가 그간 호흡하며 장단 맞춘 작품을 손꼽아본다. 창단 공연 <천하제일탈>을 시작으로, 2010년 선보인 <추셔요>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창작연희 작품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바 있다. 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유쾌하게 해석한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도 이채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석가모니 제자이자 반야심경을 저술한 사리자와 그 불경을 중국에 전한 현장법사가 천년이란 시간을 넘어 만났다고 가정한 <강가에서 노닥이더라> 역시 인상적인 공연으로 꼽힌다.
특히 2017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오셀로를 바탕으로 창작한 <오셀로와 이아고>는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지닌 역량을 널리 알린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신재훈 연출가와 음악그룹 나무가 참여한 일명 고전 시리즈가 연이어 탄생했다. 염상섭의 소설 ‘삼대’를 각색한 <삼대의 판>, 연암 박지원이 경험한 중국 기행을 담은 <열하일기>, 그리스 비극을 새롭게 바라본 <아가멤논> 등이다. “탈춤을 통해 우리 사회에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관객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일까 고심했어요. 대중에게 친숙한 고전이 가장 알맞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선보인 공연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 신나게 판을 벌일 수 있었죠. 그 덕분에 관객들에게 ‘잘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잘한다’는 관객들의 추임새가 무엇보다 강한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01.삼대의 판(사진.BAKi) 02. 아가멤논(사진.BAKi) 03. 추는사람, 남산(사진.GoGuMa) 04. 오셀로와 이아고(사진.BAKi)


탈춤꾼과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무대 위 흥겨운 소통
다시 탈 뒤로 숨어본다. 미얄할미탈을 쓴 이주원 대표의 걸음걸이가 영락없는 어르신의 모습이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 왕비로 변신한 허창열 대표는 목소리와 손짓마저 나긋하게 바뀐다. 이미 극에 몰입한 그들에게 실제 나이나 성별은 전혀 가늠 할 수 없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과거 남성이 모든 배역을 소화했던 탈춤판에 젠더프리 캐스팅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선 사례와 반대로 오레스테스 왕자를 여성 춤꾼이 맡기도 한 것이다.
또한 <오셀로와 이아고> 공연 당시 한국예술문화위원회 온라인 확산지원사업을 통해 국내 최초로 배리어프리 생중계를 진행했는데,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수어 통역과 시각장애인 음성해설의 지원으로 더 많은 관객과 호흡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공연이 어려워지자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유튜브 채널을 열어 미디어의 장점을 살린 독특한 탈춤 작품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특히 ‘TAL TAL TAL(탈탈탈)’ 영상은 코로나19라는 역병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흥겨운 탈춤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전통 탈춤의 멋과 흥을 천하제일탈공작소만의 방식으로 알리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지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작품 해석과 창작을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는 참으로 쉽지 않았어요. 탈춤의 전통을 지켜 온 많은 선생님께서 천하제일탈공작소의 활동을 응원해 주신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탈춤’을 우리 젊은 탈춤꾼이 더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올해 다양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 천하제일탈공작소는 먼저 <모두와 탈춤, 금천> 워크숍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탈춤을 가르치며 그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춤꾼과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춤판에서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함께 춤추고, 춤추고, 춤추자! 얼씨구 좋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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