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형유산의 맛·멋·흥
천년 신비의 진달래 꽃술 면천두견주
'진달래꽃의 향기를 더한 가향주 면천두견주'

온 산하가 꽃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봄이 찾아왔다. 벚꽃, 산수유, 유채, 진달래, 철쭉, 민들레 등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화사하게 피어나 봄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러한 꽃의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술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매화, 국화, 진달래, 야생화 등의 꽃을 이용해 다양한 술을 빚어 왔다. 그중 진달래꽃으로 빚은 술이 바로 두견주이다.





진달래꽃의 향기를 더한 가향주
두견주는 진달래꽃을 두견화(杜鵑花)라고 불렀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식용이 가능한 진달래꽃은 지역에 따라 참꽃 또는 약꽃으로도 불린다. 진달래 꽃잎에는 아지라인이라는 성분이 담겨 있어 항산화 효과뿐만 아니라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의 식품과 약리학적 분석에서도 만성 기관지염 완화, 혈액 순환 촉진,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우리 술에 곧잘 사용되었다. 두견주는 진달래꽃의 약성을 이용한 약주(藥酒)이며 진달래꽃의 향기를 더한 고급스러운 가향주(加香酒)이기도 하다.
진달래의 효능은 두견주의 설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운 1등 공신인 복지겸 장군의 이야기다. 개국의 위업을 이룩한 복지겸 장군은 나라가 안정되자 고향인 면천으로 낙향해 백성과 더불어 살아갔다. 그러던 그에게 큰 병이 들었다.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자 효성이 지극했던 그의 어린 딸 영랑은 쇠약해진 아버지를 위해 매일 면천의 아미산에 올라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기도한 지 백일째 되던 날 영랑은 꿈에서 신령의 계시를 받게 된다. 집 뒤에 은행나무를 두 그루 심어 정성을 들이고, 기가 막힌 물맛을 자랑하는 ‘안샘’의 물과 아미산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어 아버지께 드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빚은 술을 마신 복지겸 장군은 병이 씻은 듯 나았고, 이때부터 면천두견주는 ‘효성으로 빚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술’이라는 명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면천에서는 두견주를 약술로 빚게 되었다. 이 설화에 나오는 아미산과 안샘 그리고 은행나무는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천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당진 면천 은행나무>는 옛 면천초등학교 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당진시내 최고 수령을 자랑한다.

左)4월 초순에 진달래꽃 채취 모습 中)채취한 진달래꽃 右)진달래꽃의 꽃술을 제거하는 과정


효도주에서 풍류주 그리고 건배주로
복지겸 장군의 병을 고친 설화로 효도주의 상징이 된 면천두견주는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 조선시대 문장가 연암 박지원, 시인 유한집, 정치가 김윤식의 시·문에 등장하는 풍류주로 전해졌다. 일제강점기 민속주 쇠퇴의 시기를 지나 근대화 과정의 우여곡절을 겪은 두견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주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면천두견주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에 이르는데,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당진시가 준비한 선물이 바로 면천두견주였기 때문이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면천두견주가 만찬주로 선정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이 두견주를 찾았지만, 두견주의 특성상 100일의 장기 발효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전국적으로 품귀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천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면천두견주는 문배주, 경주 교동법주와 함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로서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左)진달래꽃 말리는 과정 中)말린 진달래꽃을 누룩과 혼합 右)100일의 장기 발효 후 만들어진 연한 황갈색의 면천두견주


명주로서의 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한 전통주
면천두견주는 4월 초순에 진달래꽃을 채취해 꽃술을 떼고 말려 두었다가 술을 빚을 때 누룩과 혼합하여 빚는다. 밑술과 덧술 모두 찹쌀을 사용하며, 90~100일이라는 장기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진달래꽃 빛깔이 그대로 술에 녹아들어 연한 황갈색을 띄며, 신맛과 누룩 냄새가 거의 없고 진달래꽃의 그윽한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함량은 18%로 다소 높은편이지만 은은한 단맛이 있고 부드러워 마시기에 편하다.
예로부터 술은 ‘명주삼절(銘酒三絶)’이라고 하여 ‘향’, ‘맛’, ‘색’을 두고 평가했다. 이는 술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발효에 의해 생성된 순수한 물질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면천두견주는 명주로서의 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한 전통주라 할 수 있다. 우리 고유한 생활문화 중 하나인 전통주는 세시풍속과 식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고 한국인이 주식으로 삼는 쌀을 주재료로 하고, 전통누룩을 발효제로 하되,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아 온 고유한 양조방법을 바탕으로, 자연물 이외의 그 어떤 인위적인 가공품이나 식품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발효에 의해 만들어지는 술’. 이러한 정의는 바로 면천두견주의 제조 공정이기도 하다.

두견주 설화에 등장한 아미산(당진시)


역사와 전통이 현재와 만나 더욱 의미 있는 술
면천두견주는 1986년 11월 1일 고(故) 박승규 씨가 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 돼 전승됐다. 이후 2004년 8월에 만들어진 면천두견주보존회가 2007년 3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보유단체로 인정받으면서 국가무형문화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당진의 시화인 진달래꽃과 더불어 면천두견주도 당진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해마다 면천에서는 진달래꽃을 소재로 한 ‘두견주와 함께하는 면천진달래 민속축제’도 열리고 있다. 이처럼 면천두견주는 역사와 전통이 현재와 만나 더욱 의미가 있는 꽃이며 술이다. 따뜻한 봄날, 진달래꽃으로 예쁘게 부쳐낸 화전과 함께 두견주를 한잔하면 멀리 아미산에서 피고 지는 진달래꽃 향이 입안에 그윽하게 퍼질 것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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