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근대역사기행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미래를 짓다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

통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항(美港)으로 손꼽힌다.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별미가 많아서 미항(味港)으로도 불린다. 발길 닿는 곳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과 조형물이 산재했다.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근대문화유산도 많아서 통영에는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비롯해 총 18점의 국가등록문화재가 있다.
통영 시내의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과 ‘강구안’ 전경. 맨 왼쪽 뒤편에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의 여러 건물도 보인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이전으로 조선 최대의 군항이 되다
통영은 임진왜란 직후까지도 거제현의 작은 포구에 불과했다. ‘두룡포(頭龍浦)’로 불리던 이 포구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옮겨 온 선조 36년(1603)부터 조선 최대의 군항으로 자리 잡았다. 정유재란의 전화(戰禍)를 입어 한산도 진영이 폐허가 된 뒤로 삼도수군통제영은 완도 고금도, 거제 오아포, 고성 춘원포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로 옮겼고, 1605년에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여황산의 남쪽 기슭에 세병관(국보), 백화당, 정해정 등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사적)은 고종32년(1895) 각 도의 병영, 수영과 함께 없어질 때까지 292년 동안 유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는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에 따라 객사인 세병관을 제외한 통제영 건물의 대부분이 철거되었다. 100여 동의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찰, 법원, 세무서, 학교 등이 들어섰다. 다행히 2000년부터 시작된 복원사업으로 12공방, 내아, 경무당, 백화당, 중영청, 운주당, 병고 등 많은 건물이 제자리를 다시 찾았다. 크게 훼손된 통영성의 성벽 일부도 근래에 동피랑마을 정상의 동포루, 서피랑공원 꼭대기의 서포루, 여항산 정상의 북포루 등 3개 포루와 함께 복원됐다.
오늘날의 통영항은 크게 내항, 외항, 통영항, 도남항 등 4개 항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곳은 ‘강구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내항이다. 통제영에 소속된 수많은 군선이 정박했었던 이곳에는 지금도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척이 떠 있다. 강구안 일대에서는 대한제국 때부터 매립공사가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에 더 큰 규모로 진행됐다. 오늘날 통영시 중앙동과 항남동의 일부가 된 매립지에는 근대적인 형태의 상가와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일대 14,444㎡에 이르는 근대역사문화공간과 그 공간 내에 자리한 건물 9곳이 2020년 3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
01. 항남로1번가길 초입의 ‘초정 김상옥 거리’ 안내판 02. 통영 김상옥 생가 근처의 ‘문화마당’ 버스정류장 앞에 세워진 김상옥 동상
03. 세병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중앙동 근대주택1·2와 중앙동 근대상가주택1 04. 서피랑공원에서 바라본 통영 세병관(국보) 일대의 야경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의 옛 집을 둘러보다
맹위를 떨치던 세밑 한파가 잠시 누그러진 날에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둘러봤다. 세병관과 가깝고 중앙우체국과 이웃한 중앙동 근대주택1·2와 근대상가주택1을 먼저 찾았다. 세 곳 모두 조선시대부터 이용되던 옛길이자 일제강점기의 번화가인 세병로를 끼고 있어서 찾기가 수월했다. 중앙우체국 앞을 지나는 세병로 구간은 ‘청마거리’로도 불린다. 통영 출신의 시인인 청마 유치환의 창작공간 ‘영산장’이 근처에 있고, 그가 지인들에게 편지 5,000여통을 부쳤다는 ‘통영우편국’이 지금의 중앙우체국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동 근대주택1·2는 일제강점기에 상점의 부속 주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지금은 통영시에서 매입해 주변을 정리해 놓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근대상가주택1은 세병로를 사이에 두고 근대주택1·2와 마주보는 2층 건물이다. 이곳의 주인이었던 일본인은 1919년 3.1운동 당시 많은 독립 운동가에게 큰 고초를 안겼다고 한다. 등사기용 종이 2,000장을 한꺼번에 구입 하려는 조선인들을 수상히 여겨 일제 당국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2층에 부동산중개소가 아직 영업중이다.
左) 통영시 항남동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에 자리한 삼성공작소의 이평갑 씨. 17세 때부터 60년 넘게 대장간 일을 해 왔다고 한다.
右) 구 석정여인숙, 항남동 근대상가 등 국가등록문화재가 위치한 강구안 골목길

청마거리 입구에서 중앙로를 따라 100m쯤 걸어가면 항남1번 가길 입구에 들어선다. 이 골목길 안쪽에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이 운영했던 대흥여관, 통영 출신의 시조시인인 초정 김상옥(1920~2004)의 생가가 있다. 그래서 이 길은 ‘초정 김상옥 거리’라 이름 붙여졌다. 두 곳 모두 내부 출입이 금지돼 있지만 조만간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한다.
중앙로 동쪽의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에 위치한 국가등록문화재 4곳 가운데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중앙동 근대상가주택2한 곳뿐이다.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 건물의 1층에는 귀금속, 예물 전문점이 30년째 영업 중이다. 하지만 구 통영목재, 항남동 근대상가, 구 석정여인숙 등 나머지 3곳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이 공간 내의 국가등록문화재 건물 9곳은 새로운 도약과 변신을 꿈꾸고 있다. 건물 외부는 원형 그대로 복원하거나 보존하되, 내부는 새롭게 꾸며서 근현대 책공방, 예술가하우스, 근대역사문화체험관, 북아트센터, 디자인 소극장, 통영독립운동역사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금도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냥 골목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여기저기서 오랜 풍상을 견뎌 온 문화유적과 내력 깊은 노포, 오감을 자극하는 전통시장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지금도 통영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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