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무형문화재
공동체의 역사와 지혜가 담긴 식문화
'김치 담그기'

최근 김치 종주국 논쟁이 뜨겁다. 중국 동북아공정의 일환으로 제기된 문제이지만 김치의 원조가 중국이라는 주장만으로도 우리는 매우 당황스럽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치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건강하고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되며 한국인의 솔푸드(Soul Food)이자 대표 음식이라는 정도로 충분할까?

절인 채소 음식 중 단연 뛰어난 맛과 영양을 지닌 김치(사진. 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채소 절임, 그 이상의 가치
김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저장되는 한국식 채소 음식의 한 종류이다. 한국인이 채소를 재료로 해 만들어 낸 음식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김치이다. 사실 단순히 채소를 소금에 절인 ‘저(菹)’의 형태는 중국과 일본에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김치에는 이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다.
김치는 배추를 비롯한 다양한 채소에 온갖 종류의 동식물성 양념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어우러지는 음식이다. 그리고 이런 재료가 함께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이로운 여러 요소를 만들어 내야 비로소 김치로 불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치는 중국의 ‘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유하면 비빔밥처럼 ‘섞음의 미학’을 잘 실천한 음식이다. 채소에 여러가지 양념을 넣고 멸치나 새우 같은 동물성 식품을 발효시켜 만든 젓갈을 섞어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외국에서 들여온 고추를 활용한 지혜는 김치의 식품영양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춧가루에서 매운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캡사이신’이라는 생리 활성물질은 비타민C가 풍부해 항산화제 기능을 한다. 또 고추에는 미생물의 부패를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일반적인 채소 절임과 명백히 구분되는 특징이 여기에 숨어 있다.
즉, 보통의 채소 절임은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소금에만 주로 의존하기 때문에 짜게 절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채소 절임이 이런 예이다. 그러나 한국 김치는 고춧가루를 함께 사용해 소금의 비율을 훨씬 줄였다. 감칠맛을 더하는 젓갈을 넣어도 쉬이 상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고춧가루를 쓰면서 젓갈 등 풍미를 높이는 다양한 재료를 더하고 도 많이 짜지 않고 비교적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左) 고춧가루를 넣어 빨갛게 양념한 배추김치. 외래 식물인 고추는 김치의 식품영양학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右)김치의 종류는 어떤 채소와 양념을 사용하지는에 따라 200여 종에 달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김지호)


무한히 변주되는 다채로운 김치의 세계
지금까지 알려진 김치의 종류는 200여 종에 달한다. 소금에 절인 채소 음식인 ‘저’ 한 가지를 놓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새로운 재료를 넣으며 시도한 결과이다. 아마 세상 어느 민족도 단일 음식을 200종 이상 개발해 내는 끈기를 발휘한 예는 드물 것이다. 서유구(徐有?)가 1827년에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 편에서 이미 90가지 이상의 김치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서유구의 형수인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의 저서,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당시에 실제로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종의 김치가 나오는데 한겨울에 담가 먹는 겨울 김치나 간장을 넣어 담그는 장짠지, 전복에 유자나 배 등을 곁들여 만든 전복김치 등이다. 김치의 종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났다. 특히 지방마다 새로운 김치가 만들어졌다. 전라도의 고들빼기김치나 갓김치, 개성의 보김치, 서울의 깍두기나 감동젓무 등이 모두 그런 예이다.
김치의 주 재료는 주인공인 채소류와 양념, 젓갈, 고명 등으로 나뉜다.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채소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흔히 쓰는 채소 외에도 들깻잎, 박, 시금치, 고춧잎, 콩잎, 우엉, 죽순, 으름, 뽕잎, 부들, 곤달비, 토란 줄기, 두릅, 포도 잎, 근대, 원추리, 메밀 순 등 온갖 채소가 재료로 활용된다. 양념 또한 모두가 아는 것 외에도 겨자, 고추장, 천초, 후추, 청각, 꿀(청밀), 석회, 백반 등도 쓰인다. 젓갈 또한 다채롭게 사용된다. 여기에 찹쌀풀을 넣어 풍미를 높이고 고명으로 실고추, 깨, 밤, 실백, 석이, 석류, 대추, 회향, 화초 등을 더하기도 한다.
그 밖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낙지, 해삼, 생새우 같은 육류와 해산물도 들어간다. 그 외에도 맨드라미꽃이나 백두옹 등을 김치의 산패(酸敗)를 막는 부재료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특히 고추가 양념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김치를 홍색으로 물들일 때 맨드라미꽃과 잎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 외에도 다양한 재료가 모여 한국 김치라는 창작품을 만들어 내는 만큼 김치의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左)김장재료. 김치에는 무척 다양한 채소와 양념이 사용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김지호)
右)김장독에서 김치냉장고로, 김치를 만들고 저장하는 방식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안에 담긴 정체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김치 담그기
한국어에는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입맛’과 ‘손맛’이라는 말이 있다. 입맛이 입안의 미뢰(味?)가 느끼는 화학적인 맛을 뜻하는 말이라면 손맛은 음식과 관련된 무한히 복잡한 경험이다. 그 안에는 음식을 만든 사람이 음식을 하면서 담은 정성, 생각, 개성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춧잎 한장 한장 양념을 발라 오므리고 항아리에 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도 손맛을 더하기 위해서이다. 손맛은 사람의 맛이다. 이 땅에는 김치 명인이나 장인도 존재하지만, 각자의 손맛을 이어가는 종가나 반가 그리고 각 가정도 존재한다. ‘김치 담그기’에 한국 식문화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김치 담그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국민이 공동체로 참여하는 삶의 문화로서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협동과 나눔이라는 공동체 정신이 담긴 문화이다.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행위는 문중, 친인척, 마을, 이웃 혹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결속을 다지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전 지역에서 전승되는 생활관습이기도 하다. 이런 성격을 고려해 문화재청은 김치 담그기를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종목으로 지정했다.
김치 담그기 문화 중에서도 온 가족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더욱 특별하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전통지식을 담고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강조되는 나눔, 결속 등의 정신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전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김장문화’는 이미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 김치의 문화적·식품영양학적 가치가 국내외에서 재조명되면서 2020년에는 ‘김치의 날’이 제정되었다. 「김치산업진흥법」 제20조의2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김치산업의 진흥과 김치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장문화와 김치 담그기 문화를 소중히 지켜 내야 할 국가무형문화재로서 보전, 전승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미래 세대인 젊은이와 어린이가 김치를 외면하고 우리의 김치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래에는 김치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치를 향유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역사와 정체성이 담긴 식문화로 인식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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