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두 번 생각하다
패각(貝殼) 자개로 완성한 아름다운 빛 나전칠기(螺鈿漆器)
'자개의 무지갯빛 유혹'

인간은 예로부터 반짝임에 매혹되어 왔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말은 거꾸로 광택에 집착하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낸다. 나전(螺鈿)은 패각(貝殼)의 탄산칼슘 층이 빛을 난반사해 무지갯빛을 내는 현상을 이용한 공예기법이다. 예로부터 사랑받는 금은이나 비단벌레는 재료 자체가 희소한데 비해 한국 나전의 주된 재료인 전복류는 바닷속에서 비교적 흔하게 자라지만 공들여 갈아내는 수고를 거쳐야 비로소 자개로 거듭난다.

上) 국보 <나전 화문 동경>, 통일신라 8~10세기, 청동, 나전, 호박, 터키석, 지름 18.6cm, 두께 0.6cm (사진. 문화재청)
下) 국보 <나전국당초문경함> 고려 13세기, 나무, 칠, 동, 나전, 대모, 높이 25.5cm, 25.0 x 47.5cm (사진. 영국박물관)


자개의 무지갯빛 유혹
통일신라시대의 국보 <나전 화문 동경(螺鈿 花文 銅鏡)>은 빛나는 재료를 한데 모은 물건이다. 번쩍번쩍 광을 낸 청동거울 뒷면에 자개, 호박, 터키석을 더해 찬란한 무늬로 꾸몄다. 장인이 갈아낸 패각이 귀한 보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나전공예는 당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동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전파된 칠기공예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은 두껍게 올린 칠을 조각하는 조칠(彫漆), 일본은 금은박과 가루를 흩뿌리는 마키에(蒔繪)가 대표적인 칠기 장식기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나전이 목칠공예를 대표하는 장식으로 계승되었다. 고려와 조선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개의 무지갯빛은 시대를 관통해 우리를 매료시킨 아름다움이었다. 나전은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된 어휘이다.
특히 ‘나(螺)’에서 엿보이듯 패류 가운데서도 껍데기가 나선형으로 감기고 안쪽에 무지갯빛이 뚜렷한 전복, 야광패(夜光貝) 등을 가공한 장식재를 나전이라 불렀다. ‘자개’는 나전의 순 우리말로, 1103년경 고려 언어를 기록한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나왈개개(螺曰蓋慨)’라 했는데, ‘개(蓋)’는 ‘차(差)’의 오기로 보이므로 고려시대에도 이미 나전을 ‘차개’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공장(京工匠)으로서 공조와 상의원에 각각 2명씩 소속되었던 나전장(螺鈿匠)이 한양으로 진상된 전복 패각을 갈아내어 자개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국장도감의궤』에는 나전장에게 필요한 도구로 중?소 크기의 줄칼 각각 3개, 줄못 1개, 망치 2개를 들었다.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 故송방웅 보유자의 자개 가공 과정을 살펴보면 이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전복 겉면의 석회질을 맷돌에 문질러 갈아내고 귀패와 바닥패를 분리해 자개를 평면에 가깝게 만든다. 이후 자개를 줄칼로 갈아 두께 1mm 이하의 얇은 판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전복껍데기는 이런 수고를 거쳐 비로소 자개가 되며 칠장(漆匠)의 손으로 기물(器物)에 올라가야 비로소 나전칠기가 완성된다.

01) 각줄의 모서리로 귀패와 바닥패를 분리하는 나전장 故송방웅 보유자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02) 나전 칠 연꽃 모란넝쿨무늬 상자, 조선 16~17세기, 나무, 칠, 나전, 높이 12.7cm, 44.5 x 68.5cm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03) 나전 칠 포도무늬 서류함, 조선 18세기, 나무, 칠, 동, 나전, 높이 7.6cm, 26.4 x 37.1com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시대, 섬세한 공예미의 정점
고려 나전칠기는 문양의 구성요소 각각을 극히 작은 부분으로 오려 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넝쿨무늬를 기본으로 연꽃, 국화, 모란 등의 꽃무늬를 조합하였는데 문양 단위 하나의 크기가 1cm를 넘지 않고 작은 것은 2~3mm에 불과하다. 줄톱 등의 세공 도구가 없던 시대에 전복 패각을 이 정도 크기로 잘라내려면 고도의 손기술이 있어야 했다. 나전칠기의 연속무늬 도안은 은입사(銀入絲) 금속기와 상감청자에도 공통된 요소였다. 문양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이를 기물에 바탕과 다른 재료로 박아 넣는다는점에서 재료를 뛰어넘어 섬세한 장식미를 추구했던 고려시대 장인의 미의식이 느껴진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모자합(母子盒), 불자(拂子), 염주합(念珠盒), 경함(經函) 등에 집중되어 있다. 상류층의 생활용품과 종교 기물을 가장 화려한 장식재로 꾸몄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나라현 다이마데라[當麻寺]에는 고려에서 만들어진 <나전대모국화넝쿨무늬원형합[螺鈿玳瑁菊唐草文圓形盒]>이 전하고 있다. 뚜껑 중앙에 나전으로 산스크리트어 ‘옴’ 자를 나타내고 그 주변에 꽃넝쿨무늬와 구슬무늬를 가득 배치했다. 나전과 주(朱)를 복채(伏彩)한 극히 작은 대모(玳瑁) 조각으로 피워낸 꽃이 넝쿨의 구리선 줄기로 이어져 환상적인 빛깔을 보여준다.
13세기에는 원나라 황후가 나전칠기 경함을 요구하자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을 설치해 응대한 기록이 전한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전하는 10점 내외의 나전 경함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박물관 소장 <나전국당초문경함(螺鈿菊唐草文經函)>은 고려 경함을 대표한다. 극히 세밀한 나전조각을 끝없이 이어 나타낸 꽃넝쿨무늬에서 고려 장인의 종교적 열망을 느낄 수 있다.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에서 구입해 기증한 보물 <나전경함(螺鈿經函)>은 국내에 돌아온 귀한 고려 나전칠기이다.

나전 칠 포도무늬 서류함, 조선 18세기, 조선 18세기, 나무, 칠, 동, 나전, 높이 7.6cm, 26.4x37.1cm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대담한 광택과 서정의 세계
조선시대 나전칠기 기법은 고려에서 이어졌지만 세공의 품은 덜 들이면서도 자개 본연의 빛깔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자개를 문양 윤곽선대로 큼직하게 잘라내는 주름질은 자개 표면의 칠을 긁어낼 수 있어 빛깔이 더 찬란하게 드러난다. 자개 곡면을 기물에 망치로 때려 붙여서 자연스럽게 금이 가게 만드는 타찰법(打擦法)은 주름질과 잘 어울리는 기법이다.
현존하는 조선 전기의 나전칠기는 관복함이 주를 이루는 것을 보아 상류계층의 기물임이 뚜렷하다. <나전 칠 연꽃 모란넝쿨무늬 상자[螺鈿漆蓮牡丹唐草文箱子]>는 고려의 꽃넝쿨무늬를 계승하되 조선다운 시원스러운 의장이 돋보이는 관복함이다. 연꽃은 봉오리와 만개한 꽃이 넝쿨에 번갈아 등장하는데 꽃잎 하나의 크기가 고려 경함보다 훨씬 더 큼직하다. 넓은 자개 조각을 타찰법으로 붙여서 전복 패각 특유의 무지갯빛이 한층 살아났다. 넝쿨도 구리선 대신 자개로 선을 끊어가며 이었다. <나전 칠 포도무늬 서류함[螺鈿漆葡萄文書類函]>은 주름질 기법으로 완성한 한 폭의 그림같다. 붓으로 그려낸 듯 힘차게 휜 가지와 알알이 열린 포도가 짙은 갈색 바탕에서 빛난다. 여백에 날아든 벌은 공예 의장(意匠)에 서화의 서정성이 깃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18세기 이후에는 나전칠기 기물의 종류가 점차 늘어나더니 실패나 반짇고리 같은 여성 일상용품까지 자개로 장식되기에 이르렀다. 수요의 증가는 장식기법의 변화도 불러왔다. 자개를 국숫발처럼 가늘게 오린 상사를 기물 표면에 대고 칼로 끊어 가며 문양을 연출하는 끊음질은 주름질보다 대량생산에 적합했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나전변증설(螺甸辨證說)』에서 “갈아 내어 얇은 선으로 만든 나전을 칠기에 올려 장식하면 서화물상이 모양을 이루는데 무지갯빛이 현란하다”라고 했다. 끊음질은 이미 19세기 전반에 나전칠기를 대표하는 장식기법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나전 칠 빗접[螺鈿漆梳匣]>은 19세기 후반에 대량생산된 나전칠기를 대표한다. 끊음질로 귀갑문(龜甲文)과 회화적 도안을 연출했을 뿐 아니라 주름질을 함께 사용해 화려한 생활용품을 완성했다. 갖가지 길상무늬에서 현세의 복을 찾으려 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면서도 나전칠기는 고급품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한국 특유의 장식기법일 뿐 아니라 기념품 등 다양한 기물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53년 6월, 대한민국 정부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축하 선물로 김진갑(金鎭甲, 1900~1966)이 제작한 나전칠기 응접탁자를 보냈다. 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에도 우방국의 정상에게 증정하는 최고 기물의 영예는 오색찬란한 나전칠기의 차지였다. 기물과 도안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나전의 무지갯 빛 광택은 앞으로도 한국인을, 나아가 세계인을 매료시킬 장식미로 이어질 것이다.
나전의 무지갯빛 광택은 앞으로도 한국인을, 나아가 세계인을 매료시킬 장식미로 이어질 것이다.

EDITOR AE류정미
문화재청
전화 : 1600-0064 (고객지원센터)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 1동 8-11층, 2동 14층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다양하고 유익한 문화재 관련정보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