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과 내일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한복의 아름다움
'동양화가 신선미'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 속에 현대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있다. 아이를 병간호하는 엄마 곁에 놓인 체온계, 배고 누운 메모리폼 베개, 손에 들린 스마트폰, 한지위를 수놓은 한복의 섬세한 색감은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져 환상적인 느낌을 선물한다. 그동안 한복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온 신선미 작가가 지난 5월, 그림책 『한밤중 개미 요정』으로 일본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번역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전통기법으로 그린 한복 그림이 담견 책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동양화가 신선미 작가를 만났다.
어린 시절 환상에서 탄생한 개미 요정과 고양이의 모험
신선미 작가에게 한복은 늘 특별한 존재였다. 어렸을 적 한복이 보고 싶어 매주 역사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시청 했다는 그에게 어떤 장소이든 화사하고 기품 있게 바꿔 주는 한복은 작품의 영감이 되었다. 울산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통기법 그대로 한복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선 먼저 한지에 아교반수*를 하고 합판에 고정한 뒤 따로 스케치한 종이를 덧씌워 볼펜으로 눌러 스케치를 따야한다. 이를 따라 먹선을 긋고 그 위에 여러 번 색을 올려야 비로소 완성된다. 50호(약 116.8×91cm) 크기의 작품에 꼬박 한 달이 소요될 만큼 번거로운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 아교반수: 동양화 안료를 안착시키는 접착제인 아교와 명반(백반)으로 종이를 코팅하는 과정





“먹선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채색의 경우 수정이 불가능해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어요. 염색하듯 엷게 발라 말리고 색 올리고, 말리고 색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하죠. 새빨간 치마를 완성하려면 이 과정을 몇 십 번 반복해 야 돼요. 색을 섞어서 만드는게 아니라 처음에 노란색을 올리고, 그다음에 주홍색을 올리고, 그런 식으로 나눠 빨간색이 만들어질 때까지 쌓는 거예요.”
배경을 삭제하며 인물에게 집중한 작가의 그림은 독자가 그림 속 상황을 상상하게 해준다. 여백 곳곳을 수놓은 자그마한 ‘개미 요정’과 앙증맞은 고양이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개미 요정과 고양이 모두 신선미 작가의 어릴 적 일화를 반영한 요소이다.
“어렸을 때 몸이 안 좋아 누워 있을 때가 많았어요. 독한약을 먹고 몽롱한 상태로 누워 있을 때면 요정을 본 것 같았죠. 이를 부모님께 얘기할 때마다 ‘꿈을 꾼 거야’라면서 제 말을 믿어주시지 않아 무척 억울했어요. (웃음) 고양이 역시 부모님 가게에 자주 오던 길고양이를 기억하며 그린 거예요. 어른이 된 후에 알레르기가 생겨 고양이를 키울 순 없지만,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그립습니다4〉, 2018, 장지에 채색, 46×35cm (제공. 신선미)


일본 독자들까지 사로잡은 『한밤중 개미요정』
그림만 그려 오던 작가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를 더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고 나면서부터이다. 성인이 돼서야 흥미를 갖게 되는 미술작품을 어렸을 때부터 접하게 해주고 싶었다. 스케치만 1년, 채색 1년을 거쳐 2016년 『한밤중 개미 요정』을 출간했다. 판타지가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임신과 육아, 모성애, 친정엄마를 보는 딸의 마음이 그림 속에 스며들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남자아이는 2009년 태어난 작가의 아들이고 한복 입은 여인은 가상의 인물이 지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들만의 사정〉, 2010, 장지에 채색, 79x181cm (제공. 신선미)


메모리폼 베개나 스마트폰 같은 현대적인 요소도 실제로 모자가 사용하는 것들이다. “육아를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면 어렸을 적 ‘꿈을 꾼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이 생각나요. 아이를 보면서 느낀 그런 생각들을 이야기로 풀어낸 거죠. 상상의 일부 같던 개미 요정은 아이가 등장한 뒤 친구가 돼요. 순수한 아이는 요정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거든요. 복잡한 해석이 담긴 상징이 아닌 그저 제가 느낀 것들, 아이를 통해 보았던 것들을 그려낸 것 이죠.

左)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번역 작품상을 수상한 신선미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한밤중 개미 요정』 (제공. 출판사 창비)
右) 어린 정조와 혜경궁 홍씨의 모습을 담은 〈나는 당신이 그립습니다2〉, 2018, 장지에 채색, 54×44cm (제공. 신선미)


신선미 작가는 4년 뒤인 2020년, ‘개미 요정’ 두 번째 이야기 『개미 요정의 선물』로 또 한 번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전작에서 보여준 모자간의 사랑을 넘어 할머니, 엄마, 아이로 이어지는 가족 삼대의 모습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개미 요정이 함께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지난 5월 13일에는 전작 『한밤중 개미 요정』이 일본의 제69회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번역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1954년에 제정된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은 직전 해 일본에서 초판 발행된 아동 도서 중 학습 참고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대상으로 작가, 번역가, 도서관장, 교수 등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7개 부문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을 선정한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발행된 4,405편 중 『한밤중 개미 요정』을 포함한 8편만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左) 신선미 작가는 “개미 요정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右) 스케치를 딴 뒤, 먹선을 그릴 때 사용하는 벼루와 먹


“일본에 번역되어 출판된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아동출판 문화상을 수상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전통 기법을 따라 그린 한복 그림이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이 더욱 뜻깊습니다. 또 그림 속 따스함과 한복의 아름다움은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워요.”
한류의 인기로 한복을 향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것 같아 기쁘다는 신선미 작가. 이를 반영하듯 지난 3월, 주스페인한국문화원의 주최로 열린 첫 스페인 현지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면 그릴수록 아름다움에 더 빠져들게 되는 소재이기에 신선미 작가는 당분간 한복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이어갈 것 같다고 전했다. 한복의 자태를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담아내는 그의 이야기 세계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개미 요정 시리즈는 아이들을 위한 책인 동시에 어른들도 감상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책이에요. 제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그리운 시간을 돌아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더 많이 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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