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과 내일
상생과 공존을 꿈꾸는 디자인 휴머니스트
'디자이너 조기상'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고 어우러진다. 가장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고민해 세계에 선보이는 조기상 디자이너에게 인간은 끝없는 탐구의 대상이자 그를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세상 많은 것이 변해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것 같은 조기상 디자이너를 만났다.


자연과 하나 되는 사색의 공간을 짓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외지인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저출산과 고령화, 고도화된 자본주의로 소멸 해 가는 농촌, 그 대안으로서의 농업과 주거환경의 미래를 제시하는 〈HOUSE VISION 2022_농(農)〉 전람회장. 도시에서나 만날 법한 번듯한 조형물들이 고즈넉한 풍경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전시된 공간들 아래로 저만치 떨어진 들녘에 6평 남짓한 농막(농사를 짓는 데 편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이 서 있다. 유유자적 빼어난 자태로 ‘어떻게 살 것인가’ 자문하는 이들에게 슬며시 답을 건넨다. 조기상 디자이너가 한국적 정서와 미감을 녹여 설계한 ‘여가’의 공간이다.
“내려놓고, 사색하고, 자신을 정화하는 ‘비움’의 공간입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일부로서 자연과 동화되는, 문을 열면 완벽하게 개방돼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고, 닫으면 휴식처가 되는 가변적 공간이죠. 집이 라기보다는 옛 문인들이 연회처나 휴식처로, 탐욕을 버리는 수양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정자 같은 공간이랄까요.”
근현대의 건축은 바깥 공기를 차단해 실내 온도와 습도를 안정되게 유지하도록 설계되지만, 우리 전통 가옥은 오히려 자연과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지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본래 한옥이 품은 문화와 감수성을 되찾고자 주춧돌과 홍송(紅松), 한지, 진천의 숯 등 자연 소재만을 사용해 교류의 공간이자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미니멀 베이스캠프를 완성했다. 농촌에서의 삶이 보다 풍요롭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左)국가무형문화재 김창호 옹기장 이수자와 제작한 푸레옹기 차 세트 右)국가무형문화재 권영진 칠장 이수자와 제작한 한간옻칠소반

디자이너의 길, 전환점을 만나다
조기상 디자이너는 어릴 적 한옥 대목(大木)으로 일했던 할아버지가 살던 충남 서천의 시골집이 좋아 방학이 오기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자연이 주는 느긋함, 그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람들이 마냥 편하고 아늑했다. 그렇게 스며든 감성이 새것보다 옛것을, 트렌드보다 헤리티지를 좇는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자동차·운송기기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요트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2007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디자인 명문 학교인 IED 대학원에서 요트 디자인을 배운 후 세계 최고 부호들의 요트를 디자인해주는 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적 요트 디자인 대회인 MYDA(Millennium Yacht Design Award)에서 연이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말 그대로 탄탄대로가 보장됐지만, 2011년 그는 홀연히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우상이자 18년 동안 BMW 수석 디자이너를 지냈던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이 던진 질문 때문이 었다. “당신의 나라, 한국에서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左) 국가무형문화재 권영진 칠장 이수자와 제작한 한간옻칠소반 右)조기상 디자이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은 사람과 자연, 사물의 균형과 공존이다.

전통공예, 가장 한국적인 통찰을 세계를 선보이다
우리나라만의 디자인 정체성,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가장 먼저 경북의 한 사과 농가로 달려 갔다. “정말이지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어요. 무조 건 닥치는 대로 어떤게 가장 한국적인 건지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 농산물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디자인과 마케팅을 통해 영세 농부와 대중 사이의 접점을 찾았고, 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렇게 지역의 특색과 스토리에 골몰했던 그는 경기 안성 에서 무형문화재 유기장인 김수영 선생을 만나면서 공예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이후 옹기장, 사기장, 옻칠장, 목조 각장, 각자장, 소목장 등 전통 장인들의 기술을 현대생활에 접목한 디자인으로 제품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에서도 각광 받았다. 지금까지 50명이 넘는 장인들과 협업 했고, 400여 건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파리에서 밀라노, 베를린, 뮌헨, 뉴욕, 런던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린 전시회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일부는 현지 박물관에 소장됐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이야기를 오롯이 품고 있는 장인분 들이니, 시대에 맞게 전통공예를 재해석한다면 세계시장 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적중했고요. 물론 아직 남은 숙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만의 생활문화와 정신문화를 어떤 스토리로, 어떻게 세계에 보여줄 것인가가 단 하나의 제 디자인 철학 입니다.”
조기상 디자이너는 현재 농산물, 음식, 전통공예, 구두, 건축, 공간 등 여러 영역에서 생산자, 제작자와 협업하며 디자인 솔루션을 찾는 ‘페노메노’ 대표이자 자체 브랜드인 아우로이(아름다운 우리 것을 아울러 이롭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과 자연, 사물의 균형과 공존이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일에 자신이 쏟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 정서가 제품이나 공간에 담기길 바란다.
“요트를 디자인하면서 좋은 디자인은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 역시 사람과 교감하고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 가장 즐겁습니다. 그냥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제가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산처럼 후대에도 좋은 영향력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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