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길 위에서 보물 찾기
고즈넉한 산사에 물들다 한국의 산지 승원 산사의 길
'깊은 산자락에 터 잡은 산지 승원을 찾아'

조선 팔경 중 하나인 가야산, 고봉 7개가 모여 있는 영남알프스, 백두대간에 잇댄 봉황산. 이들 깊은 산중에 천년고찰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한국의 사찰은 인기가 밀집한 곳보다 산지에 자리한 산사(山寺)가 유난히 많다. 깊은 산자락에 터 잡은 산지 승원을 찾아 나선다.
소백산의 연봉(連峯)이 보이는 영주 부석사 전각

국보를 보관하는 국보, 합천 해인사
해인사가 자리한 가야산국립공원(1,430m)은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으로 예부터 해동의 십승지라 했다. 또한 사계절 풍광이 빼어나 조선 팔경 중 하나로 이름이 높았다.
해인사를 찾아가는 길. 우거진 나무 사이로 일주문이 보인다. 이 문을 지나면 거목 가로수를 따라 곧은길이 열린다. 하늘을 향해 경배하듯 높게 자란 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길섶에 해인사 창건을 기념해 식수한 나무로 전해지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을 보내고 1945년에 고사목이 됐다. 사천왕 탱화가 그려진 봉황문을 지나면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이 잇댄다. 계단의 끝은 해탈문이다. 불교에서 해탈은 속세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左)해인사의 일주문 右)해인사 삼층석탑의 옆모습

즉,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곳이 일주문이고, 종착지가 해탈문인 셈이다. 그 가운데 놓인 가파른 계단은 모두 33개. 쉬지 않고 오르면 숨이 차고 다리도 묵직하다. 그 모습 이 마치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인간의 간절함을 보는 것 같다.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1236년 몽골 침략군을 격퇴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제작에 착수한 이후 16년 뒤인 1251년에 완성되었다. 이를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이유는 경판의 수가 총 81,258장에 이르기 때문이다. 경판을 모두 쌓으면 총 높이가 3,250m로 백두산(2,744m)보다 약 506m 더 높다. 무게는 2.5톤 트럭 112대 분량이다.
국보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1488년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 중이던 것을 좀더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올 당시 지었다.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건물 처럼 보인다. 심지어 해인사의 다른 전각에 비해 단청까지 없으니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단순함 속에 감춰진 선조들의 과학적 지식과 경험은 해인사 대장경판을 오랜 기간 효과적으로 보존하는데 그 가치가 입증 되었다.
장경판전의 우수성은 건물 배치와 창호 계획을 통해 나타난다. 모두 네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가운데 마당 앞쪽 에는 수다라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 법보전이 있다. 그리고 좌우에 각각 동서 사간고가 있다. 각각의 건물은 서남향으로 지어졌다. 목조건축물은 습기에 취약하기 마련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조량을 최우선에 둔 것이다. 장경 판전에는 여름에 12시간 정도 햇빛이 비치고, 일조량이 가장 적은 겨울에도 7시간 정도 햇빛을 받는다. 바람을 이용한 통풍과 공기 순환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장경판전에는 나무 창살이 설치된 크고 작은 창이 많다.
법보전과 수다 라전의 뒷벽 아래 창은 위 창보다 크기가 작은데 건물 뒤편 산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서이다. 반대로 앞 벽에 있는 아래 창은 작고 위 창은 크다. 전면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을 실내로 많이 끌어들이려는 계산이다. 습기를 막기 위한 바닥 시공도 남다르다. 바닥에는 숯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렸으며 다시 그 위에 마사, 횟가루, 황토를 섞어 ‘강회다짐’을 했다. 숯은 습기를 제거하는데 탁월하고, 소금은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날씨가 건조할 때 수분을 배출한다.
게다가 마사, 횟가루, 황토는 해충을 막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자동 습도 조절 기능 덕분에 나무로 만든 해인사 대장경판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경판꽂이의 공간 배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선 직사각형 건물의 길이와 방향이 일치하도록 설치해 공기의 흐름을 막지 않았으며, 목판이 서로 맞붙지 않게 손잡이 역할을 하는 테두리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또 한 번 습기를 막았다. 이로써 해인사 장경판전에는 이끼나 곰팡이, 곤충 등이 번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도사 대웅전은 상로전의 주건물이다.

고찰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양산 통도사
통도사를 찾아가는 길에서 산사의 길 특유의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여유가 있다면 통도사 외곽 주차 장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가는 편이 좋다. 1km 남짓한 조붓 한 길을 따라 소나무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 길의 운치를 더한다. 이 길은 ‘무풍한솔길’이라 부른다. 숲속 소나무는 얽매임 없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자랐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걷는 것만으로도 깊은 수련을 한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길은 2018년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산책길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때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그마치 1,300 년이 훨씬 지났다. 그래서일까. 전각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는 무겁고 엄숙하다. 통도사라는 이름의 유래 중 하나는 이 절이 자리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과 닮았다 하여 그리 부른다는 설로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통도사는 규모가 상당히 큰 절이다. 따라서 관람 동선을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경내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나뉜다. 관람 순서는 대웅전과 금강계단 등이 있는 상로전부터 하는 게 좋으며 상로전 이후 계단 바로 아래 전각이 있는 곳이 중로전, 그 아래가 하로전이다.
통도사는 본당인 국보 대웅전에 불상이 없다. 이유는 대웅전 옆 국보 금강계단 위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사리탑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유로 통도사가 불보(佛寶) 사찰이 되었다. 참고할 것은 금강계단은 사리탑 보존을 위해 지정된 참배 일에만 출입할 수 있다. 중로전에는 보물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이 있다. 이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 앞으로 미륵불이 있는 용화전, 관음보살이 있는 관음전이 이어진다. 하로전은 중로전에서 불이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이르는 구역이다. 보물 영산전과 보물 삼층석탑, 약사전, 극락보전 등이 있다.
01. 통도사 영각 앞에 홍매화가 만개했다. 02. 부석사 무량수전 옆에서 바라본 안양루 03.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과 무량수전

자연의 법칙을 따른 영주 부석사
부석사가 자리한 곳은 백두대간의 너른 품 소백산국립공원 북동쪽 봉황산 자락이다. 기세 장대한 산세를 병풍 삼은 곳인 만큼 산의 형세에 맞춰 오름식으로 지어졌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부석사 가는 길엔 은행나무가 열병식을 하듯 자리를 지킨다. 가을날 추색에 물든 은행이 한껏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다. 나무 사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는 보물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는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이다. 1,300여 년 전 화엄 종찰을 알리는 깃발이 휘날렸겠지만 지금은 기둥만 남았다.
짧은 진입로를 벗어나 가파른 천왕문을 지나자 부석사의 내밀한 곳에 발을 들인다. 자연과 조화된 전각들의 모습에 먼저 눈이 간다. 그리고 안양루 아래 기둥은 굵기도 제각각이고 뒤틀리고 굽은 모양도 자연 그대로이다. 안양루에서 국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계단은 비대칭으로 살짝 틀어져 있다. 1층 안양문을 지나자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무량수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 년 이상을 버텨 온 강직함 부터 균형과 절제가 정점을 찍듯 자아내는 우아한 자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국보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 손꼽힌다. 무량수전 옆에는 부석으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아래위가 떠 있다 하여 부석(浮石)이라 부르는데 절의 이름도 이에 따라 지은 것이다. 무량수전 오른쪽 삼층 석탑을 지나 비탈길을 따라서 오르면 국보 영주 부석사 조사당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소백산이 아득하다. 산중에 자리한 산사의 고즈넉함이 소백산 연화봉까지 잇대는 듯하다.

EDITOR AE류정미
문화재청
전화 : 1600-0064 (고객지원센터)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 1동 8-11층, 2동 14층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다양하고 유익한 문화재 관련정보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