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과 내일
시간이 빚는 공예 옻칠의 변신
' 옻칠공예가 정은진'

옻칠공예는 시간의 예술이다. 수도 없이 덧칠하며 겹겹이 쌓여 가는 형태와 색의 조합은 자연의 생생함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고, 쏟은 정성과 들인 시간만큼 아름다운 색을 표현해 내는 가장 정직한 소재이기도 하다. 정은진 작가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옻을 소재로 우리의 일상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든다. 어떤 색이든 표현해 내는 옻칠은 작가의 감강과 만나 오묘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정성만큼 견고해지는 정직한 공예
옻칠은 옻나무 줄기에 상처를 낸 후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아 나전 등 다른 기물에 바른 후 건조해 사용하는 천연 도료 방법이다.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도료 중 가장 안정된 특성을 띤 옻칠은 기물의 습기를 조절해 주고 견고함과 내구성을 향상시킨다. 특유의 광택과 투명한 질감이 아름다움까지 더해 주면서 예부터 가구, 그릇 등 생활 공예에 폭넓게 사용돼 왔다.
정은진 작가가 이 같은 옻칠의 매력에 빠진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작가의 아버지, 정해조 선생은 옻칠의 전통성을 현대미술과 접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어렸을 때 부터 옻칠공예에 익숙했지만, 작가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대학원에 입학한 후부터 이뤄졌다.
“15년 넘게 다른 일을 하다가 2007년 대학원에 입학한 후 부터 다시 옻칠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옻칠이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 을 알 수 있었죠. 옻칠은 칠하는 환경부터 농도, 재질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시간과 노하우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죠. 평생을 공부해도 늘 새로움을 주는 것이 옻칠공예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左)유리 위에 옻칠한 , 유리의 특징이 옻칠에 잘 스며든 반투명 함과 유리에 투영된 청량감이 특징이다.
右)작업 중인 정은진 작가

초창기에는 물푸레나무를 작품 소재로 사용했다. 디자인 대로 나무를 깎고 건조한 후 옻칠을 올리는데 이때 열을 가해 나무를 쪄서 일부 모양을 깎고, 다시 건조한 후 깎는 공정을 반복한다. 나무에 밴 수분의 양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이다. 완전히 말리지 않은 나무에 옻칠을 올리면 칠이 잘 발리지 않고 사용할 때 갈라지거나 형태가 비틀어 질 수 있다. 칠을 처음 하면 어두운 빛을 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화사한 나뭇결이 나타난다. 옻칠 공예는 시간이 흐를수록 미묘하게 달라지며 본래의 색을 찾아가는 특성 때문에 ‘시간의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옻칠은 이물질이 잘 묻기 때문에 작업할 때는 주변을 깨끗하게 해야 해요. 또 최대한 얇게 많이 칠할수록 좋은데 칠하고 말린 뒤 그 표면을 갈아줘야 다시 새 옻칠을 입힐 수 있죠. 칠하고 말리고 갈아주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칠하는 과정을 80~100번 반복해야 5mm정도의 두께를 겨우 유지할 수 있어요.”
은은한 빛을 자아내는 유리 위 옻칠
정은진 작가는 3년 전부터 나무가 아닌 유리를 소재로 선택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색깔 역시 선명한 오방색이 아닌 은은한 파스텔톤을 주로 사용한다. 작가의 대표작 옻칠 유리 ‘ATTO 시리즈’는 컵과 옻칠이 완벽하게 접착되어 하나를 이룬다. 횟수와 농도에 따라 은은하게 또는 선명하게 올려지는 다양한 옻색은 경쾌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옻칠 유리의 매력을 전한 ‘ATTO 시리즈’는 2020 년 ‘KCDF 공예디자인 스타상품’으로 선정되었다.
<보색의 향연 시리즈>, 삼베를 호칠로 여러 번 겹쳐 발라 태를 만드는 협저태칠기로 작업했다.

“유리는 빛과 맞닿았을 때 가장 신비롭고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또 같은 투명한 유리라도 환경에 따라 다른 빛을 내는데 그런 유연함이 옻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옻칠 유리의 경우 유리가 중심이 되고 옻칠은 보조적인 마감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옻칠이 주제가 되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ATTO 시리즈’의 경우 유리의 장점을 더 극대화 하면서 많은 분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시행착오도 있었다. 옻칠을 흡수하면서 칠을 고정해 주는나무와 달리 미끄러운 유리는 칠 도막이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작업이 어려웠던 것. 작업 환경을 바꿔가며 반복한 후에야 유리에 옻칠이 완벽히 붙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 정해진 모든 공정을 다 지키며 작업해도 갑자기 칠이 안 마르거나 잘 안 발리는 문제가 생기곤 해요. 그럴 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작업 과정을 복기해봐야 하죠. 원인을 찾는 데만 일주일, 한 달가량 걸릴 때도 있어요. 붓이나 희석제를 바꾸고, 건조장 환경을 다르게 해 보며 원인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때 만큼 기쁠 때가 없어요. 옻칠은 끊임없이 저를 단련시키는 작업인 것 같아요.”
左) 右)옻칠공예는 시간이 흐를수록 본래의 색을 찾아가는 특성 때문에 '시간의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일상에서 어울리는 옻칠을 꿈꾸며
정은진 작가는 옻칠이 주는 따뜻함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어떤 장소에 놓이더라도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특성은 작가에게 무한한 영감을 선물한다. 그는 조상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아 있는 옻칠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옻칠이 지닌 다채로움을 보면 모두 놀라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에요. 전통이 현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옻칠이 전통 공예라는 구분 없이 일상에서 함께 어우러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이 꿈이기도 합니다. 옻칠의 우수성을 알리고 계승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무와 유리에 이어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소재는 도자기이다. 흙을 다듬어 불에 굽기까지 걸리는 기다림이 옻칠 작업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기능성에 현대 적인 감각을 더한 작가의 작품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기대 해 본다.
“또다시 겪을 시행착오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아낼 옻칠의 새로운 매력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 가는 옻칠처럼 저도 저의 색을 선명하게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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