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 사람이 추천하다
한국을 꿈꾸게 한 문화재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2008년 교환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다니엘 린데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사로잡은 것은 조선 왕실의 옛 건물인 경복궁과 현대식 고층 건물로 메워진 광화문 네거리 모습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국에 빠져든 그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방송과 강연, 최근에는 재즈 피아노 연주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에게 가장 매력적인 문화재는 무엇인가 물었다.
나라를 향한 간절함을 담은 대장경판
동네 체육관에서 태권도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에 열세 살 꼬마 다니엘은 다음 날 도장으로 달려갔다. 태권도를 배우면 배울수록 자연스레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그때즈음 특별한 책 한 권을 선물 받는다. “삼촌께서 대한민국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이 담긴 책을 선물해 주셨어요. 책 속에 한국의 여러 역사 이야기와 문화재가 소개돼 있었죠. 다양한 문화재 중 저를 단숨에 사로 잡은 것은 ‘팔만대장경판’으로 불리는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었어요.”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자신의 ‘인생 문화재’라며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하 해인사 대장경판)을 소개하는 다니엘 린데만. 그 이유를 묻자 ‘꼭 보고 싶기 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온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한국의 문화재를 소개해 온 그였지만, 아직까지 해인사 대장경판만은 실물을 볼 기회가 없었다고. 책과 영상으로만 접했음에도 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그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재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유산으로,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각각 등재되었죠. 방식은 다르지만,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서 인쇄술을 개발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어요. 방대한 분량도 그렇지만, 그 옛날 아름다운 서체로 목판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글자를 새겼다는게 놀랍죠.”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사진. 문화재청)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몽골군의 침입으로부터 오직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어졌다. 부처님의 힘을 빌려 외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자, 한자 새겨진 해인사 대장경판은 8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거의 완벽한 목판본으로 남아 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현존하는 목판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장(三藏)을 집대성하고 내용이 정확해 세계 각국에 전파되면서 불교의 연구와 확산을 도왔다.
“오랜 시간 몇 번의 전쟁에도 현재까지 소실되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전쟁이 끝나길 바라며 기도드린 선조들의 그 절실함 덕분에 지금까지 보존되지 않았나 싶어요. 조만간 꼭 해인사를 방문해 그 실물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재입니다. 그 옛날 아름다운 서체로 목판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글자를 새겼다는게 놀라워요.
경판글씨(사진.해인사)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문화재처럼
천주교 신자인 다니엘 린데만은 평소 한국의 사찰을 즐겨 찾는다. 세상과 동떨어진 사찰 속 적막함은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자신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해준다. 어렸을 적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 익숙했던 그에게 한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불교 문화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성당이나 교회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도시 한가운데 자리해요. 사찰은 정반대로 출입이 어려운 산속에 지어지죠. 들어서면 압도당할 만큼 웅장하고 커다란 규모의 성당이나 교회와 달리 사찰은 그 어떤 장소보다 소박하고 검소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불교 문화를 오래 이어온 나라임에도 한국은 어딜 가나 에너지가 넘쳐요.”
사적 합천 해인사의 모습(사진.해인사)

활기찬 도시의 에너지와 사람들의 열정은 그가 한국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환학생을 마친 후 2011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온 그는 우연한 기회에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인이 되었다. 계획했던 공부는 잠시 미뤄두고 있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보낸 10여 년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순간들로 채워졌다.
“한국에 다시 왔을 때, 왠지 모르게 이 나라에 오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예상대로 고향에서는 경험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마주했습니다. 또 방송 활동과 강연을 통해 대학에서 하는 공부보다 값진 것들을 배웠어요. 한국에서 경험한 모든 일이 지금의 저를 만든 셈이에요.”
左)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반야바라밀다심경(사진. 문화재청)
右) 다니엘 린데만은 긴 시간 한자리를 지키며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하는 '문화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즐겨 연주했던 그는 5년 전부터 음악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무대가 귀해진 요즈음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앞으로도 오래 우리 곁에 머물 것 같다는 다니엘 린데만은 긴 시간 한자리를 지키며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하는 ‘문화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치를 지니게 된 문화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여러분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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