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무형문화재
‘떡 만들기’의 역사와 가치 그리고 그 의미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무형 자산 떡'

떡은 우리가 일생 동안 거치는 각종 의례와 행사마다 만들어서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다. 또한 그 역사도 매우 오래되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떡 만들기"가 지난 11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우리 일상의 가장 친숙한 간식
“…정월 대보름 ‘달떡’이요……팔월 가위 ‘오려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이다. 시월 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다.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절기마다 먹는 떡을 노래한 ‘떡타령’이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어 올 때, 따끈하고 두툼한 ‘무시루떡’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떡은 이처럼 절기에 따라 먹는 특별한 음식이고 ‘밥 먹는 배 따로, 떡 먹는 배 따로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는 속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친숙한 간식이고 제물로도 쓰이는 음식이다. 이러한 ‘떡[餠]’은 ‘떡 만들기’로 2021년 11월 1일 국가무형 문화재로 신규 지정되었다.
가래떡, 시루떡, 송편

이번 지정에는 떡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전통적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했는데,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떡을 ‘나눔과 배려의 상징’, ‘정(情)을 주고받는 매개물’로 여기고 함께 전승·향유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와 같이 특정한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 종목만 지정하였다. 떡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을 매개하는 특별한 음식인 셈이다. 떡은 곡식가루를 시루에 안쳐서 찌거나(찐떡), 쪄서 치거나 (친떡), 물에 삶아서(삶은 떡), 혹은 기름에 지져서(지진 떡) 익힌 음식이다. 즉, 떡의 종류는 크게 떡의 켜와 켜 사이에 고물을 얹은 시루떡, 켜를 만들지 않고 찌는 설기떡과 증편, 송편, 두텁떡 등의 찐떡, 인절미, 가래떡(흰떡), 절편, 개 피떡, 단자 등의 친떡, 경단 등의 삶은 떡, 전병, 화전, 부꾸미 등의 지진떡으로 구분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우리 떡은 ‘시루떡’ 등 찐떡이다.
당신이 아는 그 떡은 언제 떡?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떡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점, 황해도 안악 3호 고분벽화를 통해 부엌에 시루가 그려진점 등으로 미루어 고대에도 떡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주식으로 밥을 주로 먹게 되면서 떡은 밥에 주식 자리를 내주고 특별한 음식이 되어 현재까지 우리 식생활에서 특별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左)옹기시루 右)청태콩을 소로 넣어 송편을 빚는 모습

문헌상 떡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서 떡을 뜻하는 글자인 ‘병(餠)’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삼국유사』 권 2 「가락국기」에 ‘법민왕 19년에 수로왕 17대손에게 선조의 제사를 지내도록 좋은 논을 하사했는데 해마다 술, 감주, 떡, 쌀밥, 차, 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하여 떡을 제물로 올렸음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권농정책에 따른 양곡의 증산과 숭불 사상에 따라 육식을 가급적 금하고 차를 즐기는 음다 풍속이 유행하면서 떡이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사』를 비롯하여 『동국이상국집』, 『지봉유설』, 『목은집』 등 각종 문헌에서 떡을 만들어 먹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고려가요 「쌍화점」에서는 떡이 상품으로 음식점에서 팔리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쌍화’는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밀가루를 술로 반죽하여 부풀려 찐 증편의 한 종류이다. 후대에는 밀가루 대신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발효시키는 법으로 변했으며, 현재는 제주도에서 ‘쌍화’ 를 ‘상애’, ‘제사빵’이라고 부르며 판매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다양해지고 화려해져
조선시대에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조리가공법이 발전 하면서 떡의 재료 및 만드는 방법이 다양화되어 각종 의례에 떡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특히 궁중과 반가를 중심으로 종류와 맛이 한층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 『산가요록(山家要錄)』, 『음식디미방』, 『증보산림경제(增補 山林經濟)』, 『규합총서(閨閤叢書)』 등에서 다양한 떡의 이름과 만드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떡’과 관련된 기록은 총 161회이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남아존중, 장자상속, 출가외인등 가족 제도와 유교예절에 따른 관혼상제의 규범이 엄격해지면서 조상 봉제사, 가족의 생일, 혼례, 수연 등 여러 잔치와 명절 등의 행사음식이 의례화되었다. 이때 중심 품목은 ‘떡’이었다.
어린아이 백일 떡인 ‘백설기’는 흰 쌀가루로 만드는데 이는 아이의 순진무구함과 신성함을 상징한다. 팥고물을 묻힌 ‘찰수수경단’은 잡귀를 몰아내고 액을 물리친다고 여겨 만들었다. 첫돌에는 ‘백설기’, ‘찰수수경단’과 함께 ‘오색 송편’을 만들었다. 오행을 갖춘 성인이 되기를 염원하기 때문이었다. 혼례 때에는 신부집에서 ‘봉치떡’을 만들어 놓고 함을 받았다. ‘봉치떡’은 찹쌀과 붉은 팥 두 켜로 만든 ‘팥찰시루떡’ 이다. 위에는 대추를 놓는다. 부부의 화합을 축복하고 붉은 팥고물로 액을 없애고자 하였다.
제례 때의 떡은 ‘편’이라고 하며 ‘백편’, ‘승검초편’, ‘꿀편’, ‘녹두찰편’ 등을 놓는데 켜가 얇다. 웃기로는 ‘증편’, ‘흰주 악’, ‘쑥주악’, ‘대추주악’ 등을 얹는다. 19세기 말 서양식 식문화의 도입으로 우리 고유의 식생활에 변화가 생겼고 떡 만들기 문화가 일부 축소되었지만 방 앗간의 증가로 떡 만들기가 분업화되고 떡의 생산과 소비 주체가 형성되었다.
左)떡메로 떡을 치는 모습(사진.국립민속박물관) 中)불천위 제사에 올린 완성된 편(사진.충재 권벌 종가) 右)개업떡편과 편청(사진.심온 종가)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무형 자산
지역마다 다양한 떡이 전승되는 것도 ‘떡 만들기’ 문화의 특징이다. 감자와 옥수수 생산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감자 시루떡’, ‘찰옥수수시루떡’이 전승되고 잡곡이 많이 생산되는 제주도에서는 ‘오메기떡’, ‘빙떡’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떡은 한 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을신앙 의례, 상달 고사 등 가정신앙 의례, 별신굿 및 진오귀굿등 각종 굿 의례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제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에도 개업떡, 이사떡 등의 형태로 이웃 간에 떡을 나누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 및 전승되고 있다. 의례별로 사용 되는 떡은 상징적 의미가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다.
현재는 손쉽게 떡을 만들 수 있는 믹스 떡가루 제품이 개발되고, 아침식사용 떡, 떡 카페 등장, 세계인의 입맛에 맞춘 퓨전 떡볶이, 굳지 않는 떡 만들기 기술 특허, 얼마 전에는 ‘떡 제조기능사’ 국가자격증까지 도입되어 떡 만들기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떡산업은 최근 웰빙과 전통, 슬로푸드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또한 떡 만들기와 떡을 향유하는 떡 문화의 시대를 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떡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만큼 어려서 부터 우리 떡을 즐겨 먹는 습관을 유지하는 길이 떡 문화를 더욱 견고하게 지킬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진다. 떡 만들기의 장인에게 어느 떡이 가장 맛있느냐고 질문했 을 때 돌아온 답은 “지금 막 만든 떡을 먹을 때”였다. 떡을 만들어 먹을 때의 감사함을 표현한 것으로, 이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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