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대를 잇는 삶
금속으로 그려낸 가구 위의 화룡점정
'김진환 두석장 이수자'

「정조실록」 정조 17년 12월 8일 1번째 기사에서 정약용은 정조에게 이렇게 묻는다. "성이란 튼튼하고 적을 물리칠 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 이렇게 아름다움에 심려를 두십니까." 정조는 답했다. "어리석다. 아름다운 것이 바로 힘이니라." 가구의 마지막 화룡점정인 금속 장석은 정약용의 실용과 정조의 아름다움을 모두 담았다. 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장식. 그 안에는 몸과 문을 잇는 실용적인 기능과 가구를 더욱 빛나게하는 아름다운 염원이 새겨져 있었다.
두석장(豆錫匠): 목가구의 결합 부분을 보강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제 장식을 장석이라고 하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놋쇠) 장석을 만드는 장인을 두석장이라 부른다.
5대를 이어 두석장의 뿌리를 지키다
목가구의 결합 부분을 이으며 문을 열고 닫는 부분을 보강하는 금속 자물쇠와 경첩 등을 만드는 두석장. 돌쩌귀와 경첩으로 가구의 몸은 문과 부드럽게 이어지고, 가구의 모서리에 덧댄 거멀쇠는 목가구의 끝을 튼튼하게 마감한다. 마지막으로 장 안에 넣어둔 물건을 자물쇠로 안전하게 걸어 잠그면, 단순했던 나무판자는 우리의 생활에 꼭 필요한 하나의 가구로 완성된다.
'우수이수자'는 2019년 무형문화재 전승체계의 바탕을 이루는 이수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3년 이상 활동한 이수자 중에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참여와 전승 실적이 탁월한 사람을 추천받아 1년간 우수 이수자로 지원하고 있다. 김진환 이수자는 2020년에 우수 이수자로 선정되었다.

이 단계를 화룡점정으로 마무리해 주는 것이 바로 두석장이다. 두석장은 가구의 튼튼한 마감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가구는 모름지기 튼튼하고 실용적이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김진환 이수자는 나비무늬와 같은 화려한 장식을 더하는 아름다움 역시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라는 답을 내어놓는다. 생활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나비무늬는 자유연애와 아름다움, 부부 금실을 상징하며 주로 안방에 쓰이는 가구 장식에 많이 쓰였다.
그 외에도 풍요와 다산을 뜻하는 물고기무늬, 행복을 상징하는 박쥐무늬, 영적인 동물로 여겨져 재생과 영예의 기원을 담는 새무늬 등 각자의 뜻을 지닌 자연물은 가구 위에 앉아 제 아름다움을 빛낸다. 김진환 이수자는 국가무형문화재 두석장 보유자인 아버지 김극천 장인에 이어 5대째 가업을 물려받았다. 김극천 두석장의 막내아들로 자란 김진환 이수자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두드리는 망치 소리와 함께 자라났다.
“땅땅땅.” 금속판을 내리치는 소리는 때로는 아침을 깨우는 경쾌한 알람소리가 되고, 때로는 규칙적인 리듬이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작업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기신 건가 싶었어요. 그 정도로 작업을 열심히 하셨던거겠죠. 저에게 마치 공기와 같았던 이 소리 때문에 저도 두석장 이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이게 끊기면 안 되겠다, 이 소리가 끊기지 않게 내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야겠다는 다짐이었죠.”
김진환 이수자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어릴 적부터 “공부 안 해도 된다. 아버지 따라 일하면 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처음엔 두석장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공부를 더욱 열심히 했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착실하게 학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수능을 보고 진로를 정해야 하는 당시, 생업이 어려워 점점 아버지의 공방을 떠나는 작업자들을 보고 자신이라도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제가 중학생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죠. 사회가 점차 변하면서 두석장이 설 자리도 줄었고요. 그래서 제가 가업을 물려받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많이 말리셨어요. 생업으로는 힘들 수 있어서요. 그래도 저는 이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하지 말고 조금 더 놀 걸 하는 생각도 들죠.” 그렇게 문화재 관리과로 진학한 뒤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은 김진환 이수자는 현재까지 20년 동안 그 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걱정대로 생계가 어려울 때면 낮에는 낚시터에서 일을 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일을 하며 기술을 전수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진환 이수자는 이러한 고난에도 자신이 선택한 가업을 놓지 않으며 꿋꿋하게 운명을 개척하고 있었다.
左) '장인'의 솜씨는 도구에서 시작한다. 도구를 잘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右) 스승이자 아버지인 김극천 두석장 보유자와 김진환 두석장 이수자

최소한의 재료로 가구를 완성하다
두석장은 목가구에 부착하는 경첩, 자물쇠 등의 각종 금속 장식을 뜻하는 ‘장석’을 만든다. 자개농이 최고급 혼숫감으로 여겨지던 1900년대 말까지만 해도 두석장의 작업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됐다. 두석장의 작업은 도안을 따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원하는 장석의 도안을 금속판에 대고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을 그린 금속판을 실톱이나 정을 이용해 문양을 따낸다. 그리고 못정이나 활비비를 사용해 못구멍을 내고 닥달망치로 면을 고르게 펴주면 된다. 이후 줄질을 해 바깥면을 다듬어주고 각종 정을 이용해 문양을 새긴 뒤 사기나 기와장을 가루로 내어 천에 묻혀 닦아 광을 내어 마무리 한다.
김진환 두석장은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것이 이 일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나무 모양의 무늬를 만든다면 모든 줄기가 하나의 나무에서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작업을 해야 하는 등 세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는 작업을 하다 보면 아직도 아버지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정도로 신중을 가해야 하는 작업이 많다고 전했다.
“아버지에 비하면 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유명하신 분이다 보니 저는 더 부담과 책임을 느끼면서 작업을 하죠. 아버지 눈에는 절대 성에 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외에도 다른 문화재 관련 선생님들과 작업을 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을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계속 배우려고 노력하죠.” 두석장으로 일하며 장석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진환 두석장은 “최소한의 재료로 가구의 기능을 완성시킨다는 점”이라고 답했다. 겉보기에는 목가구 중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지만 경첩으로 가구의 본체와 문을 잇지 못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금속의 화려한 무늬들로 가구에 아름다움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장석은 가구를 완성하는 마지막 마침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左) 두석장은 목가구에 부착하는 경첩, 자물쇠 등 각종 장식인 '장석'을 만든다. 右) 도안이 그려진 금속판을 정을 이용해 무늬대로 따낸다.

전통 가구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본분
통영에서 계속 작업을 했던 김진환 이수자는 요즘 들어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현재 삶의 터전인 통영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가끔 서울에서 전시회도 하고 다른 도시의 문화재 장인들과 교류를 하며 배움의 기회를 더욱 늘리고 싶다는 것.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요. 하지만 저4는 전통을 잘 이어가면서 배움을 지속하고 싶어요.
유물 복원 등의 작업을 통해 전통을 이어가는 데 저의 기술을 사용하고 싶죠. 그 와중에 더욱더 정교하고 튼튼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배움을 놓지 않는 건 물론이고요.” 두석장 이수자가 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김진환 이수자. 가문을 잇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해도 자신의 생활을 이어주지 않는 일을 지속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까마득한 과거 조상의 업을 이어 미래에 자신의 기술을 전하는 일. 단순한 책임감을 넘어서 그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진환 두석장은 이 일을 하며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어머니의 밥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는 장석을 만드는 기술을 중심으로 가족과 터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달라는 질문에 “여전히 이 곳에서 망치질을 하고 있겠죠”라고 말하는 그. 덤덤한 표정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진 그의 답변에는 자신의 뿌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의 단단함이 새겨져 있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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