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대를 잇는 삶
거친 흙 속에서 찾은 전통의 지혜와 힘
'한식미장공·온돌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유종'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리라. 본래의 집터에서 나오는 흙을 이용해 산뜻한 숨골을 마련하는 한국의 전통 건축은 자연의 품격과 기술의 쓸모를 모두 어우른다. 유종 기능자는 이러한 전통의 힘을 놓지 않는다. 현대의 문명을 누리는 이들도 언젠가 다시 거친 흙으로 거듭난다는 자연의 순리아래, 그는 오늘도 한식미장과 온돌 기술을 통해 한국의 건축을 현대인에게 계승하는 데 전심을 다하고 있다.
전통과 함께하며 여유로운 몸과 마음을 되찾다
돈으로는 조금 손해를 볼지언정 일에서만큼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맡은 일은 절대 대충 하는 법이 없다는 유종 기능자는 가족들의 업을 이어 현대 건축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고향인 수원에서 분주하게 현장을 다니던 어느 날,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갑자기 사업이 부도나고 몸이 급격하게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그는 선택해야 했다. 삼켜질 것인가, 일어날 것인가. 아슬한 삶의 문턱에서 그가 결심한 일은 전통이었다. 한국의 전통 방식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만드는 한식미장과 온돌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를 계기로 인생에 새로운 기점을 맞이했다.



“내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거예요. 이 일을 시작하고 인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 정말 건강해진 거예요, 흙을 만지면서.” 건강을 위해 시작한 한식미장은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전북 남원에서 이학수 스승을 만나 흙을 다루기 시작하며 ‘기다림’이라는 덕목을 배웠다. 흙을 만지는 일은 현대 건축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달리 긴 묵념의 시간이 필요하다. 급하게 하려고 하면 오히려 집에 문제가 생긴다는 한옥의 생태와 함께하며 그의 인상도 점차 처마 끝의 곡선처럼 부드럽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통을 접하며 그의 건강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멀리 소문이라도 났는지, 요즘은 도시 환경에 지친 사람들이 그를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 제 손으로 자신의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방 한 칸’만이라도 건강한 재료로 채우고 싶은 마음에 경북 상주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직접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흙으로 지은 집은 숨을 쉬는 집이에요. 사람과 함께 숨을 쉬며 서로 조화를 이루지. 그렇게 건강해지는 겁니다. 사람도 땅도 집도.” 전통의 지혜를 현대 건축에 접목해 한국의 건축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는 그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무료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강연은 인기가 높아 강의를 개설하면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두 마감된다고 한다. 이렇게 유종 기능자에게 직접 전수한 기술을 토대로 수강생들은 자신의 집을 직접 짓거나 그의 후계자가 되기도 한다.
(左)한식미장공의 도구는 '흙손'으로 불린다. 나무흙손부터 마감흙손, 작은 흙손, 모서리 바라는 흙손 등, 말 그대로 '손'이 필요하다.
(右)전통 구들의 구조를 재현한 모형

건강을 위해 흙을 찾는 사람들
한식미장은 크게 홈파기, 벽선홈, 중깃세우기, 외엮기, 초벽치기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건축물의 벽은 집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단단하게 고정해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벽체의 하중을 담당하는 중깃을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인방에 홈을 세우는 과정이 ‘홈파기’이다. 그리고 전통 건축에서 제일 하자가 많이 생기는 부위는 나무와 흙이 만나 갈라지는 공간인데, 이에 벽이 맞닿는 공간에 미장재가 들어가 끼이게 하는 구조인 벽쌕홈을 만들어야 한다.
기둥을 세울 준비를 마쳤다면, 상중하 인방 사이에 설외와 눌외를 엮기 위한 중깃을 세워야 한다. 중깃은 위에서 전해지는 하중을 고르게 분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깃이 세워졌다면 설외와 눌외를 엮는다. 외를 엮는 재료는 대나무, 싸릿대, 갈대 등 건조가 된 외대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벽체를 고정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면, 본격적으로 흙을 바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장용 흙은 가능하면 그 지역의 흙을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지표면으로부터 1m 정도 아래에 있는 흙을 채취하도록 한다. 이후 흙과 모래, 짚여물 등을 반죽해 벽에 바르면 대략적인 작업이 완성된다.
세우고, 고정하며, 덧발라 완성되는 전통 건축의 벽
유종 기능자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살려 고택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특히 그는 ‘해체’ 작업이 아주 중요한 경험이라 말한다. 선조들의 시간을 짚어 나가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건물을 만들고, 살아왔는지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복원할 때보다 해체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한다. “해체 작업이 정말 중요해요. 선조들이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 알려면 해체 작업을 할 때부터 투입되어야 원래 모습을 다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이걸 해체가 아니라 발굴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터에서 유물을 발굴하듯이, 우리 선조들의 삶과 세월을 그대로 찾아가는 거죠.”
전통 건축 기술을 후대에 전수할 때는 옛 사람들이 사용한 건축 방식을 그대로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유종 기능자는 해체 작업에 참여해 그 시절 쓰인 자재나 시공 방법을 직접 들여다볼 때 전통 건축 기술이 가장 생생하게 기록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경남 함양의 일두 고택과 청암사의 백련암 해체 작업 당시 거대한 저택에 어떻게 온돌을 놓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웠다.
온돌의 고래가 방의 길이만큼 길면, 아궁이에서 전해진 열이 식을 때 맺히는 이슬을 굴뚝까지 밀고 갈 힘이 부족해진다. 이에 선조들은 중간에 개자리를 넣어 습기가 빨리 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두어 불의 열기가 굴뚝까지 치고 나갈 힘을 마련했다.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는 해체 작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접하기 어렵다. 유종 기능자는 앞으로 문화재의 해체 과정부터 기능자들이 참여해 선조의 지혜를 배우고 우리 문화를 잘 보존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左)설외와 눌외를 엮은 전통건축의 벽 모습 (右)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흙에 삼여물을 넣어 준비한다.

복원보다 중요한 것은 해체이다
“이 직업은 한번 배우면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죠. 근데 문제는 기술을 배울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 일을 배우는 데는 조금 여유가 필요하다는 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 대신 그는 이 분야가 늦게 시작하더라도 굉장히 보람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유튜브 등 다양한 경로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을 거라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래서 그는 청년들에게 한식미장공, 온돌공 과정을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유종 기능자에게 전통은 과거에만 머물러 시대의 뒤안길로 저물어 가는 유물이 아니다. 현대의 기술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전통으로 변화하며, 전통의 기술은 그와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다시 현대로 복원된다. 그렇게 기술은 돌고 돌며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옆에서 숨 쉬는 문화가 된다. 그렇게 문화를 만들어 나갈 유종 기능자의 작업이 기대된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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