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사랑
아주 오래된 미래
냉장에 대한 오랜 열망
'석빙고에서 냉장고까지'

냉장 기술은 문명을 바탕으로 한 현대의 전유물일까? 기와 냉매를 떠올리면 뭔가 기술적인 발전이 있어야만 냉장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아주 오래된 기록에서부터 ‘냉장’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얼린다는 개념은 우리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셈이다.
보물 제323호 청도 석빙고.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연대가 오래되었다. 석빙고 입구 왼쪽의 석비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도대체 언제부터 얼렸을까
기원전 6세기에 공자가 중국의 고대 시가를 엮어 펴냈다는 『시경(詩經)』에는 “12월이 되면 얼음을 탕탕 깨어 정월에는 빙고에 넣는다네”라는 시구절이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기원전 538년 기록에도 “옛날에 태양이 북륙에 있을 때 얼음을 떠서 저장하고, 서륙에 있고 새벽 동방에 규성이 나타날 때 얼음을 꺼내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와, 이전부터 얼음을 저장하고 쓰는 풍습이 있었고 이를 위한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서에도 얼음을 저장하는 일이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서 왕이 얼음 저장을 명하였고, 이를 담당하는 관리를 두었다는 것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왕이 신하에게 얼음을 하사하였다”라는 내용이나 “최이가 사빙고(私氷庫)를 운영하려 백성들을 힘들게 하였다”라는 내용 등 얼음에 관한 내용이 심심찮게 나온다. 조선 역시 고려의 장빙제도를 이어받아 국가 주도로 동빙고, 서빙고, 내빙고를 경영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등에는 빙고의 엄격한 제도뿐만 아니라 연관된 사건이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당시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일이 보편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널리 그리고 다양하게 쓰여
전통시대에 얼음은 무더운 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먹기도 하고, 열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사용했다. 생선과 고기가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쓸 얼음을 얻기 위해, 깨끗한 강가에서 얼음을 떠서 저장해두기도 했고 여름에 장례를 치를 때 시신을 목욕시키거나 차갑게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 편에는 “基死 夏月皆用氷(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얼음을 채워 넣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얼음을 사용한 장례풍습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경주 재매정지 빙고터, 공주 정지산 빙고터, 부여 구드래 빙고터 등 삼국시대의 흔적을 보면 빙고는 땅에 구덩이를 파서 얼음을 채워 넣고 그 위를 짚이나 나무로 두껍게 덮는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발전된 것이 목빙고로서, 땅을 파서 공간을 만들고 배수구를 낸 것은 똑같지만 창고의 뼈대를 나무로 만들었다.
충남 홍성 오관리 유적에 목빙고 터가 잘 남아 있다. 조선시대까지 대부분의 빙고는 초개빙고(草蓋氷庫)와 목빙고(木氷庫)였다. 국가에서 관리하였던 서울의 서빙고, 동빙고, 내빙고도 모두 목빙고로서 석빙고보다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목빙고를 수리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빙고를 수리하기 위해 군사 500여 명을 동원한 것이나 목재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재사용하였다는 것 등이다. 국영 빙고를 매해 수리하는 데 목재와 인력의 소모가 크자 영조, 정조 때에는 빙고를 돌로 고쳐 짓자는 논의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국 석빙고를 짓는 데 필요한 석재와 재력이 확보되지 않아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이에 비해 오히려 지방에서는 기존의 목빙고를 석빙고로 고쳐 지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左) 경주 석빙고 횡단면도. 석빙고는 효과적인 장빙을 위해 입지선택은 물론 반지하에 홍예 구조로 축조하는 등 과학적인 설계와 시공이 적용되었다.
(右) 경주 석빙고 환기구. 석빙고의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구를 마련했다. 석빙고의 천장은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각각의 아치형 천장 사이에 공간이 있어, 내부의 더운 공기를 가두었다가 환기구를 통해 바깥으로 빼내게 된다(ⓒ문화재청).

냉장의 비밀은 ‘구조’에 있어
어떻게 무더운 여름까지 빙고에 얼음을 저장할 수 있었을까? 남아 있는 석빙고를 살펴보면 해답이 보인다. 경주, 안동, 창녕, 청도, 현풍, 영산 그리고 북한 해주의 석빙고는 반지하 구조, 작은 입구, 환기구 그리고 배수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반지하는 여름에 시원하고 온도 변화가 적은 특성이 있다.
작은 입구는 공기가 드나드는 개구부를 최소화하고 입구 옆에는 벽을 세워 바람이 들지 않도록 하였다. 빙고 내 데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 천장의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고, 얼음이 녹은 물은 경사진 바닥을 따라 배수구로 흘러나가 빙실이 차갑고 건조하게 유지되도록 하였다.
또 중요한 것은 단열재의 효과적인 사용이었다. 승정원일기 인조 때의 기록을 보면 압도(鴨島), 지금의 난지도에서 갈대 1만 5,000묶음을 채취해 빙고의 상하 사방을 덮었다고 나온다. 얼음 사이에 부서진 얼음 조각이나 겨, 짚 등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갈대, 겨, 짚에는 공기층이 있어 가볍고 단열성이 우수하다. 이처럼 자연자원을 활용해 꼼꼼하게 설계함으로써 얼음을 최대한 오랫동안 보관하려 하였다.
늘어나는 수요, 어려운 관리
조선시대에는 얼음 수요가 많았다. 얼음 한 덩어리를 1정(丁)이라 하였는데 서빙고에 13만 정, 동빙고에 1만 정, 내빙고에 4만 정의 얼음을 저장해 제사, 음식 보관, 반빙(얼음을 나누는 일) 등에 두루두루 사용하였다. 단단한 얼음을 얻기 위해 가장 추운 음력 12월 중에 날을 택하여 얼음 두께가 4치 이상 되어야 비로소 채취하였다.
혹독한 추위에 얼음을 캐다 보면 빙부들이 동상에 걸리거나 다치고 심지어 얼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역을 피해 몰래 도망가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저장되는 얼음의 양이 많았어도 자연적으로 녹아 없어지는 것이 상당해 매우 엄격히 관리하였다. 나누어 주는 얼음은 대상과 수량, 시기를 법으로 정하였고, 만약 얼음 관리를 소홀히 하여 녹아 버리면 빙고 관원에게 무거운 벌을 내렸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빙고를 둘러싼 재정 문제, 백성의 고초, 관원의 부패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조는 1782년 백성들에게 부과된 의무적인 빙고역을 줄이는 대신 얼음을 돈으로 사고팔도록 허락하였다. 정확히 언제 국영 빙고가 폐지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기록상 19세기 말까지 빙고를 관할하는 아문이 존속하였고 20세기 초까지도 빙고 얼음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후의 일로 생각된다.
(左) 국가등록문화재 제24호 철원 얼음창고. 1930년대에 세운 콘크리트 단층건물이며 박스형태로, 얼음을 보관하였던 당시의 벽체(두께 15cm)구조를 볼 수 있다. 겨울에 산명호의 자연수를 채취하여 이 창고에 보관해 판매했다고 전해진다(ⓒ문화재청).
(右) 국가등록문화재 제560호 금성 냉장고 GR-120. 1965년 금성사에서 제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화된 가정용 식품보관 냉장고. 이때 축적된 기술이 후에 실내용 에어컨, 대형 건물의 냉온방 컨트롤, 대형 냉장 시설 등에 응용되는 등 냉장산업의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문화재청).

냉장의 발전, 미래에 남긴 숙제
1909년(순종 3)에 제빙공장과 빙고 설비 조사가 이루어져 1910년 부산에 최초의 제빙공장이 설립되었다. 이어 인천과 군산 등 주요 항에도 얼음 공장이 만들어져 얼음 공급이 확대되자 옛 빙고는 점차 잊어져 갔다. 석빙고는 콘크리트 얼음창고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강원도 철원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콘크리트 얼음창고(1946년)가 남아 있어 시대 변화에 따른 빙고의 변화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1965년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어 오늘날에는 집집마다 현대식 사빙고(私氷庫)를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전통시대의 채빙기술이 근대의 제빙기술로 대체되고, 얼음을 저장했던 초개빙고와 목빙고가 석빙고, 콘크리트 빙고를 거쳐 냉장고로 변모하였다. 이젠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가 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될 정도로 제법 나이를 먹었다.
올해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울 것이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에게 시원한 여름을 선사했던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가 오히려 지구를 더 뜨겁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냉장의 열망을 채워줄 미래 세대의 냉장고는, 다시금 자연친화적인 석빙고와 같은 형태로 재탄생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EDITOR AE안은하
문화재청
전화 : 1600-0064 (고객지원센터)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 1동 8-11층, 2동 14층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다양하고 유익한 문화재 관련정보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