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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뿌리내린 외길 5代를 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 보유자 김동학'

사시사철 곧고 푸르러 지조와 절개를 상징했던 대나무를 옛 사람들은 사군자 중 으뜸으로 여겼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箭筒匠)* 보유자인 김동학 선생은 그 대(竹)에 돋보적인 그의 세계를 덧입힌다. 우리나라 유일의 전통(箭筒)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얼굴 마디마디에 평생 한길을 고수해 온 대쪽 같은 세월이 새겨졌다.
* 전통장(箭筒匠): 전쟁을 하거나 사냥을 하기 위해 화살을 담아 몸에 지니고 다녔던 화살통을 전통(箭筒)이라 일컫는다. 전통장(箭筒匠)은 그 전통을 만드는 기술 또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 말한다.
밑그림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칼로 문양을 조각한다. 몸통에 조각이 끝나면 몸통 속에 막혀 있는 마디를 창칼과 채칼로 제거한다.

전통(傳統)을 이어 온 전통(箭筒)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공예촌. 곧고 멋스럽게 기와를 내린 한 공방에 들어서자 과거에서 걸어 나온 듯 한복에 백발이 단정한 구순의 장인(匠人)이 인사를 건넨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공구며 연장이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이어 온 가업(家業)이니 지켜 나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책임감도 막중하고 자부심도 없지 않지만, 평생을 이 하나에 바쳤는데도 내가 만든 것 중에 마음에 들었던 적이 단 한 번 없었어요. 그러니 정신 바짝 붙들어 매고 계속해서 노력할 수밖에요.”
1989년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 전통장(箭筒匠) 보유자로 인정된 김동학 선생은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4대째 잇고 있다. 순조와 헌종 때 당삼관 정3품인 통정대부를 지냈던 증조부와 일제강점기 때 사재를 팔아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조부 그리고 그 가업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부친 곁에서 어릴 적부터 눈대중으로 기술을 익혔다.
“아버지는 사실 제가 이 일을 하지 않길 바라셨습니다. 단호하셨어요. 평생 밥벌이하기 힘들 거라고요. 밤늦은 시간에 몰래 대나무 다루는 방법, 화살통의 고리를 조각하는 기법 등을 틈틈이 익혔지요. 그러다 들키는 날에는 다 불태워지기 일쑤였어요.”
(左)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된 정질은 기본이다. 칼을 다듬어야 각도(刻刀)가 수월해진다.
(右) 화살통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쓰이는 제작공구가 다양하다. 먼저 대나무를 자를 때 그리고 각종 장식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톱, 창칼과 가죽골무, 삼각도, 평도, 원형칼, 장칼, 채칼, 줄, 솔, 글개, 반월칼, 자귀, 대패 및 끌, 정, 가위, 망치와 집게, 인두, 지필묵 등이 필요하다.

생계를 위해 가구를 만들다
부친의 말은 기우가 아니었다. 부유층이 활쏘기를 취미로 즐겼던 조선시대나 전국적으로 활쏘기 운동이 활발했던 197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수요가 있었지만, 대나무를 손질하는 밑작업을 비롯해 오랜 제작 기간이 필요한데다 조각과 장식에 공을 들이는 것에 비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수요마저 점점 줄었다.
1985년 공예촌으로 오기 전까지 생계를 유지하기가 녹록지 않았던 선생은 포항에서 소목(小木)으로 소반이나 애기장 등 가구를 만들어 벌이에 나섰다. 다행히 손재주가 특별했던 그의 손에서 탄생한 가구는 국내에서 인기가 많았다.
“한 15년 정도 소목 일을 병행했지요. 그 덕에 전통(箭筒)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걸 안 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그 당시만 해도 전통(傳統) 가구가 대접을 받았어요. 이제는 그것도 안 팔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左) 경주시 하동 민속공예촌 공방에는 전시실도 마련되어 있다. (右) 죽각문자 전통, 통의 윗부분에는 그만의 개성 있는 용목이 조각된다.

혼이 담긴 명작, 시대를 넘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을 수천 년 동안 이어 내려온 전통(箭筒)은 맑고 진한 녹색으로 둥글게 잘 영근 2년 이상 된 왕죽을 재료로 사용한다. 며칠을 삶아서 기름기를 빼고 1년여를 건조한 후 조각과 장식을 거쳐 칠을 하고 용머리가 디자인된 덮개를 씌운다. 크기가 다 다른 대나무에 일정한 비율로 문양과 조각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해 내는 일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모양과 자태가 빼어난 것은 하나에 7,00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공정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전통(箭筒)은 공예품을 넘어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옛날에는 방송이나 신문에 내 이야기가 나가면 주문도 늘고 찾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이게 생필품이나 소모품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요즘은 찾는 이가 드물지요. 계속해서 관심을 두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문화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한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쓸 전통(箭筒)을 제작하기도 했던 김동학 선생은 1974년 중앙민속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인 전통공예대전과 브라질, 독일, 미국 등 해외 전통공예대전에 여러 차례 초대되어 각광을 받았고, 2010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지금도 공예촌을 찾는 외국인은 그의 작품 앞에서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올해 아흔이 된 김동학 선생의 명맥은 막내아들이자 이수자인 김선권 씨가 3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70여 년 전 김동학 선생이 그러했듯 아들 김선권 씨 역시 망설임 없이 그 길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유일의 전통(箭筒) 장인이니 대물림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대나무처럼 곧은 그의 단호한 예술혼은 시대를 넘어 역사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EDITOR AE안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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