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에 닿기
비움을 통한 아름다운 공생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본 민의의 혁명'

봄이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로 꽃비가 내린다. 비록 세계를 뒤흔든 ‘역병’으로 꽃 아래에서 ‘상춘곡’을 읊을 수는 없어도, 세월은 무심히 흘러 또다시 봄이 찾아오고 계절의 따스함은 우리를 휘감는다. ‘공존과 공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문득 눈을 밖으로 향했을 때 펼쳐진 광경은 도심 속 아파트촌에서나마 형형색색의 꽃과 ‘형광’ 연두의 새순으로 뒤덮인 전통 마을의 봄을 떠올리게 했다.
휴버트 보스(Hubert Vos) <서울풍경> 캔버스에 유채 31x69cm 1899 (ⓒ국립현대미술관)

가옥과 돌담이 그린 전통 마을 풍경, 그림으로 만나
자연을 벗삼아 전통 가옥과 돌담이 만들어 낸 전통 마을의 풍경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공존과 공생의 좋은 예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풍경은 예술가에게 영원한 소재이자 화두였다. 우리 주변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예술 작품은 긴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미술 기법이 속속 서구에서 전해졌다. 수묵의 전통 회화 외에 유화나 드로잉 등 새로운 매체의 그림이 국내로 들어왔다. 푸른 눈의 서양인 화가들도 우리나라를 찾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유화로 그린 서울의 풍경이 남아 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아시아를 여행했던 화가, 휴버트 보스가 1899년 그린 <서울풍경>은 원근법과 명암법 등 서양화 기법을 잘 드러낸 유화 작품이다. 산을 배경으로 화면 앞의 기와집 뒤로 집들과 담을 따라 서울 정경이 펼쳐진다. 화면 뒤 높은 건축물은 경복궁으로, 지금의 서울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의 정취가 살아 있다.
이후 새로운 화법과 화풍을 받아들인 우리 화가들의 손으로 다양한 우리의 주변 풍경이 그려졌고, 우리가 사는 집, 주변의 나무, 밭, 마을 등이 정감 있게 묘사되었다. 1939년 그려진 오지호의 <남향집>은 우리 전통 마을과 집의 풍취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빨간색의 예쁜 옷을 입은 어린 소녀가 문 옆에 서 있고, 백구가 봄 햇살에 몸을 맡기며 담벼락에 붙어 나른하게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아직 나뭇가지에 잎은 없지만 남향으로 난 집에는 봄의 햇살이 완연하다.
오지호 <남향집>. 캔버스에 유채 80x65cm 1939 (ⓒ국립현대미술관)

전통 마을과 가옥, 비움으로써 또 다른 어떤 것들로 채우다
기본적으로 우리 전통 가옥은 비움의 문화다. 담을 따라 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마당이 있고, 주변으로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돌담과 집 사이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방과 방 사이에 공간을 비움으로써 자연과 공생한다. 집 가운데 뚫어진 마당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살랑거린다. 마당 주변으로 꽃이 피어난다. 건축가 승효상은 비워져 있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빈자의 미학’이라고 했다.
건축가는 자신의 저서 『빈자의 미학』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단순히 나만을 위해 소유하고 채우고 있으면,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기 힘들다. 우리의 전통 마을과 가옥은 이러한 비움의 아름다움을 가운데 마당이나 낮은 돌담을 통해 구현했다. 이렇게 비움으로써 또 다른 어떤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1993년 제작된 임충섭의 <처마>는 설치 작품으로, 한국 전통건축 구조의 처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작가는 처마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소통한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처마를 통해 ‘함께 있음’을 이야기한다. 바로 공존의 아름다움이 처마의 선을 따라 흐른다.
전통 채색화의 전통을 현대에 맞게 접목해 새로운 채색 한국화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동양화가 김선태는 자신의 작업실 앞 마을을 주목했다. 경기도 용인의 작은 마을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는 작가는 마을 앞에 위치해 있는 전통 가옥과 가운데 마당을 뒤덮은 거대한 은행나무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곳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작가는 은박으로 얇게 펼친 화폭에 석채와 안료를 이용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마을을 그렸다. 이렇게 작품으로 기록한 이후 동네는 개발로 모습이 바뀌었지만, 작가의 작업 속에서 마을과 은행나무 집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빛낸다.
경기도 여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덕기는 가족의 소중함을 화폭에 화려한 색으로 수놓는다. 원색의 물감을 붓으로 하나하나 점을 찍어서 완성해 가는 캔버스 속에는 동화 속에서 존재할 것 같은 집과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주의 자연과 마을의 풍경이 그의 캔버스 속에서 형형색색으로 조화를 이룬다.
(左) 정재호 <창신타워>. 한지에 채색 227x182cm 2007 (ⓒ정재호) (右) 김지원 <비슷한 벽, 똑같은 벽>. 리넨에 유채 45.5x53cm 2007 (ⓒ김지원)

도시의 다양하고 복잡한 풍경, 공존과 공생의 정신을 담다
그리고 이제 과거의 마을 속 전통 가옥과 담벼락은 도시의 다양하고 복잡한 풍경으로 변화했다. 복잡한 도시의 삶은 공생과 공존의 게임 룰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공생과 공존의 본질이 사라질까? 우리가 이른바 도시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풍경 속에서도 공생과 공존, 과거 마을이 보여 주었던 그 풍경의 고갱이를 포착하고 그 지점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시대 미술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동양화가 정재호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사라지는 과거의 흔적을 집과 동네라는 모티프로 재발견한다. <창신타워>는 작가가 발견한 창신동의 여러 집을 콜라주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옥과 담을 흡사 쌓아 놓듯이 모아 놓은 화면은 도시 속에 모여 있는 삶의 집합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서양화가 김지원과 최윤희가 드러내는 담은 독특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담은 현대사회의 기술적인 면을 드러낸다. 김지원의 <비슷한 벽 똑같은 벽>은 산사태를 막거나 경사진 장소의 건축물을 위해 지은 축대다. 돌이나 콘크리트 재료로 만들어진 축대나 담들은 비슷한, 혹은 똑같은 외형이나 문양을 가지고 도시의 풍경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윤희는 늦은 밤 지나다닌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포착하면서 축대의 문양에 주목한다. 길 옆의 축대는 밤의 어두움과 인공적인 불빛들로 인해 다양하게 바뀌는데, 최윤희가 드러내는 담은 반복적인 리듬을 가진 추상적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축대는 과거 마을의 돌담과 형태는 다르지만 공간에 또 다른 삶을 주고, 안전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공존과 공생의 키워드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과거 우리가 함께 살아왔던 전통마을의 풍경은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속에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공허함이나 삭막함이 아닌 비움 속에 오롯이 살아 있다. 여기에 비움을 통한 공존과 공생이라는, 전통마을 속에 살아 숨 쉬었던 삶의 태도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같이 살고 함께 있기 위해서 행하는 자발적인 격리, 비움의 태도는 우리가 ‘역병’의 시대를 묵묵히 극복하는 데 있어서 역설적인 공존과 공생의 정신을 보여주기 때문일 게다.

EDITOR AE안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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