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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칠십년을 내려온 귀한 새김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


금박장(金箔匠)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여성의 혼례복 등에서 금박을 볼 수 있다. 금박(金箔)은 금 조각[金片]을 계속 두드려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진 것을 뜻하나 오늘날에는 이 금박을 이용해 직물 등에 문양을 장식하는 기술로 이해되고 있어 지정명칭을 ‘금박장(金箔匠)’으로 명명하다.
공방이 집해 있는 미로 같은 북촌의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금박연. 문턱을 넘자마자 기와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고 이내 작업실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우리나라 유일의 금박장, 김기호. 그가 이야기를 가득 품은 얼굴로 사람을 맞이했다.



5대째 왕실장인으로 이어온 금박장
금박은 금을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의복 등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금박 작업을 하는 이가 금박장이다. 과거에는 금박을 하는 장인이 여러 명이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김기호 금박장뿐이다.
조선 철종 때 왕실에서 일하던 고조부 김완형 금박장으로부터 시작해 4대인 김덕환 금박장에 이어 5대 김기호 금박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금박장으로 불리지만 과거 문헌에는 부금장으로 쓰여 있다.
“우리나라의 금박이 다른 나라의 금박과 다른 점은 주로 의복에 부착한다는 점입니다. 의복에 금박을 도장을 이용해 붙이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방식입니다.”
부처님 불상에 붙이거나 청심환 등에 붙이는 것도 금박 중 하나이다. 선대에서는 궁 현판이나 청심환 등에 금박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김기호 금박장도 기물이나 금속물 금박을 하지만 주로 하는 것은 의복에 금박을 입히는 작업이다. 금박은 주로 왕실 의복 가운데에서도 혼례 등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에 입는 의복에 들어갔다. 왕실의 품위와 국가 번영의 염원이 금박에 담겨 있었다.
“지금은 귀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금박 옷을 입습니다. 결혼, 회갑, 돌 등 인생에 한 번뿐인 귀한 날에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금박이 들어간 옷을 해 입지요.”
(左) 5대째 내려오는 금박 작업 도구 (右) 금박이 입혀진 대댕기를 바라보는 김기호 금박장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만든 오늘의 자리
김기호 금박장은 대학을 나와 로봇 엔지니어로 삼성전자에서 4년여 동안 일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직업을 내려놓고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은 금박장의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편찮으시면서 저 역시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형적으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금박 작업도구가, 무형적으로는 전통적인 금박 기술이 저희 집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맥이 끊어지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컸습니다.”
3대째 금박을 하면서 쓰던 도구와 기술이 아버지인 4대인 김덕환 금박장에게 이어졌다. 그 도구를 지키기 위해 집안의 할머니 중에 한 분은 6·25전쟁 때 피난도 가지 않고 종로 공평동에 있는 집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토록 어렵게 지켜온 도구와 기술을 지킬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기에 로봇 엔지니어라는 미래 지향적인 직업을 내려놓고 전통을 잇는 일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결정에 지금도 후회가 없다.
“5대에 이어 한 가지 가업에 종사하고 있고 그것을 물려받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요. 그런 면에서는 저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지만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左) 홍원삼에 금박 작업을 하고 있는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 장인. 작업은 금박 작업의 뒷손질 과정이다.
(右) 왕실 여성 예복에 함께 사용되던 화관이다.

금박 문양 속에 담긴 간절한 기원
전통금박공예 공방인 금박연에는 원삼, 면사포, 대댕기, 함보 등의 금박 전시물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고 김기호 금박장의 작업실도 있다. 이곳에 금박을 찍어내는 수백 종의 문양이 있다. 문양은 김기호 금박장이 직접 도안하고 제작한다. 그리고 손가락을 이용해 비단 위에 금박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금박을 입히는 것이 기술의 영역이라면 문양을 생각해내는 것은 창조의 영역이다. 김기호 금박장이 작업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문양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문양을 만들어 어떻게 넣을 것인지, 여백 처리는 어떻게 할 것 인지 설계를 하듯이 미리 짜야 한다.
“구성이 끝난 뒤, 문양을 도안하고 조각합니다. 그리고 의복을 만들어서 금박을 하는 시간까지는 대략 일 년여 정도 걸립니다.”
이미 만들어진 문양으로 금박을 찍는 작업은 두세 달여 정도이지만, 새로 문양을 구성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김기호 금박장은 하루 열 시간씩 작업해도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느낀다.
"문양은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문양도 진화하는 셈이지요.”
문양은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현재와 소통하며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양이라도 어떻게 표현하고 담아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그러니 문양에 쏟는 시간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금박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명예, 부, 사랑 같은 소망들이 금박 문양에 들어갑니다. 바래지 않는 금에 자신의 꿈을 표현하는 거죠.”
더 가깝게 다가가는 전통을 위해
많은 사람과 협업하며 일하던 직업을 떠나 오롯이 혼자 작업하는 금박장을 선택한 이후 작업실에서 고독한 작업을 할 때가 많다. 어떤 공예도 마찬가지겠지만 금박은 그 시간을 겪어야만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옆에서 일을 도우면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금박은 혼자 많은 연습을 통해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딸과 군대를 제대한 아들도 시간 날 때마다 그가 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김기호 금박장은 언젠가 자식들이 자신의 대를 이어줬으면 하면서도 강요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스스로 선택해야만 후회 없이 이 길을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인 목판본과 작품들을 모아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김기호 금박장의 다음 목표이다.
“박물관은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말씀을 주변에서 많이 합니다. 여러 가지 고민이 되지만 전통 금박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해왔습니다. 많은 분이 전통 금박이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느꼈으면 합니다.”

EDITOR AE안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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