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사랑
문화에 닿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현대예술, 전통과 마주하다
'전통 교육과 현대 예술의 만남'

과거 우리의 교육은 저 멀리 단군신화에서 비롯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이념부터 ‘충의예지신(忠義禮知信)’을 중시하는 유학, 성리학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당, 향교, 서원 등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이념을 배워왔고,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왔다. 특히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김홍도의 그림이나 ‘한석봉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부터 대단했다. 2020년을 맞이한 지금도 교육에 대한 관심은 과거에 못지 않으리라.
강애란 The Luminous Poem의 Digital Book 설치. 강애란 작가는 ‘책가도’를 입체로 형상화했다. 책을 조형적인 오브제로 만들고 책장 위 빛나는 책 형태의 조각 오브제들을 통해 책의 중요성, 책의 미래에 대해 사유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오래된 전통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을 예술 분야에서 찾아본다면, 우리는 ‘책가도(冊架圖)’를 꼽을 수 있을 듯 싶다. 18세기부터 유행한 ‘책가도’는 ‘문방도(文房圖)라고도 하는데,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기물 등을 그린 정물화풍의 그림이다. 중국 청나라 시대에 유행한 ‘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 혹은 ‘다보격경도(多寶格景圖)’에서 유래한 이 그림은 청나라 사신으로 간 부연사 일행을 통해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다보각, 다보격은 원래 중국에서 골동품을 진열하던 장식장인데, 이러한 그림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상황에 맞게 번안되어 책가도로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책이 중심이 된 그림이 그려진 이유는 당시 국왕이었던 정조가 문치(文治)를 추구하면서 책을 강조하고 책그림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그의 시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어찌 경들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책이 아니라 그림일 뿐이다. 예전에 정자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을 통해 알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책가도를 예찬했다. ‘책가도’는 이후 책장 없이 쌓여있는 책들을 그리는 등 민간으로 퍼지면서 좀더 다양화되었고, 폭넓은 의미의 ‘책거리화’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책과 교육에 대한 관심과 예찬을 보여준 ‘책가도’, 혹은 ‘책거리화’는 현재에도 면면히 내려와 동시대 미술작가들 또한 이를 모티프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左) 오병재 <문양화된 지적 이미지>. 오병재 작가의 <문양화된 지적 이미지>는 ‘책가도’의 현대적 변용이다.
(右) 전광영 63cmx131cm 2013. 전광영 작가는 아예 고서적을 이용해 새로운 미술 작품을 제작했다.

오병재 작가는 라는 제목의 현대적으로 변용된 책가도를 선보인다. 책장에 꽂혀있는 형형색색의 책들과 이들 앞에 세련된 복장으로 책을 고르고 있는 여성들은 변화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지식들은 영원하며 이를 통해 지식이 영속성을 지니고 이어짐을 드러낸다. 특히 작가는 과거 우리 그림이 드러낸 근경, 중경, 원경의 다각화된 시점을 새로이 해석해, 나와 남의 시점이 가운데서 만나는 역원근법을 만들어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 또한 면면히 내려온 우리의 그림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책을 작업한 현대 작가들은 꽤 많은데, 강애란 작가는 책을 모티프로 조형적인 오브제로 구현한다. 책장에 빛나는 책 형상의 조각 오브제들을 통해 책의 중요성, 책의 미래에 대해 사유한다. 책이라는 매체를 직접적으로 연결한 작가도 있다. 전광영 작가는 고서적을 삼각형 형태로 만들고 이를 화면에 붙여 하나의 색다른 회화를 제작한다. 글이 꽉 차 있는 오브제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나 태블릿을 이용한 영상과 데이터를 통한 교육이 활발한 지금도 책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책이 가지는 역할의 묵직함을 여전히 예술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붓과 먹으로 그려내는 내면의 정신성
과거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 여기(餘技)로 그리는 시서화(詩書畵)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문인화다. 시서화는 시와 글씨, 그림을 뜻하는데, 사대부는 단순히 취미생활이 아닌, 자신을 수양하고 스스로를 교육하는 의미에서 이들을 그렸다.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는 이러한 문인화의 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렇듯 과거의 모든 교육은 붓과 먹을 통해 이루어졌고, 붓과 먹은 또다른 교육의 매개체였다. 사대부는 먹을 갈고 붓의 획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정신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붓과 먹을 이용해 자신을 연마하는 작가들은 여전히 현대에도 존재한다.
(左) 김은형 <나는 누구인가> 162x130cm 2017. 조선시대 사대부가 그린 문인화는 먹과 붓으로 펼친 자신에 대한 교육이자 수행이었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右) 추사 김정희 <세한도>

김은형 작가는 이른바 일필휘지의 붓놀림을 통해 다양한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신과 행위를 구분 짓지 않았던 전통 문인화의 세계를 호방한 필치를 통해 드러낸다. 먹의 농담을 자유로이 구사하면서 화면을 빼곡히 채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작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면서,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동양화의 전통에는 ‘방(倣)’이란 개념이 있다. 서양화의 ‘모방’과는 다른 이 개념은 과거 대가의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작업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과거의 그림으로부터 새로운 그림을 배우는, 교육이자 창조의 개념이 바로 ‘방’이다. 김은형 작가의 또다른 작업인 <타임머신(방 김홍도 초원시명)>은 김홍도의 <초원시명(蕉園試茗)>을 방(倣)한 도상과 미래에서 온듯한 인물화, 그 외의 다양한 요소가 대담한 필치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교육이 예술에 닿는 또다른 예가 있다. 과거 『대학』에 이러한 문구가 나온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下)’. 나를 바르게 수양하고 가정을 돌보고 나라를 다스려야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나를 바르게 수양하는 방식으로 과거 사대부는 초상화, 혹은 자화상을 그렸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자신의 결기가 느껴지는 대담함과 세밀함이 공존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드러내는데 자화상이 많이 그려진다. 유근택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자신을 많이 등장시킨다. 외로이 창조의 길을 가는 작가의 길을 외줄타기에 비유하는 <나>라는 작품이나 작업을 하는 자신을 비추는 <자화상> 등은 과거 자기 자신을 통해 고민하고 사유하고 수행했던 자신의 정신과 연결된다. 김승영 작가는 등신대로 출력한 자화상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떨어지면 붙이는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영상작업 <자화상>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자화상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어려운 전광영수행의 길을 끊임없이 무한 반복해서 나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을 작업을 통해 드러낸다.
교육은 100년의 큰 계획(百年大計)이라고 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 교육의 끝에는 나에 대한 수양이 있다. 현대 예술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사회를 반영하는 데 있다. 책그림, 먹과 붓의 전통 회화, 자화상 등은 바로 이러한 교육과 예술이 교차하는 하나의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예술이 날실과 씨실로 더욱 촘촘히 교차될 100년 뒤를 기대해 본다.

EDITOR AE안은하
문화재청
전화 : 1600-0064 (고객지원센터)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 1동 8-11층, 2동 14층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다양하고 유익한 문화재 관련정보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