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항일의 현장 , 투쟁의 기록
미주 독립운동 지도자의 숙소
'중가주 리들리의 버지스 호텔'

2017년 8월 11일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Guadalajara)프란세스 호텔(HotelFrances)에서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의 기념 동판 현판식이 거행되었다. 1910년대 해외한인의 대표기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 선생이 멕시코 한인사회의 단합과 독립운동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0개월 동안 순행하고미국으로 돌아가려고 이 호텔에서 잠시 머물렀다. 우리 정부에서는 멕시코지역에서 안창호선생의 독립운동 위업을 기리기 위해 그가 숙박하였고 현재에도 문을 열고 있는 프란세스 호텔 내부에 기념동판을 제작하여 부착하였다. 그런데 훨씬 앞서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숙박하였던 호텔에 얼굴 동판이 붙여진곳이 있다.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의 소도시인 리들리(Reedley)에 있는 버지스 호텔(Hotel Bergess)에는 우남 이승만과 도산 안창호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이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두 독립운동가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독립운동 지도자 이승만과 안창호가 머물렀던 버지스 호텔 전경

1920 ~ 30년 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지 '중가주'
한자 문화권에서는 캘리포니아주를 ‘가주(加州)’라고 부르고, 로스앤젤레스를 ‘나성(羅城)’, 샌프란시스코를 ‘상항(桑港)’이라고 한자로 표기한다.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남쪽지방을 남부 캘리포니아주라는 의미에서 ‘남가주(南加州)’라고 하였고, 샌프란시스코와 그 북부지방을 ‘북가주(北加州)’라고 불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 사이의 중부 캘리포니아지역은 영어로 ‘Central California’라고 하였기 때문에 ‘중가주(中加州)’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중가주’라고 하면 로스앤젤레스 북쪽부터 샌프란시스코 남쪽 지역을 말하고, 주요 도시로는 프레즈노(Fresno)·다뉴바(Dinuba)·리들리(Reedley)·생거(Sanger)·팔리어(Parlier)·핸포드(Hanford)·바이샐리아(Bisalia) 등 6개 시를 일반적으로 말한다.
이들지역은 자동차로 10~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한인이주가 시작된 20세기 초반에도 1일 생활권에 속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전환기 미국경제 부흥의 원동력은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의 반도체산업이었다. 그렇지만 19세기와 20세기 미국 경제의 발전소는 캘리포니아 샌화퀸 밸리(San Joaquin Valley)를 중심으로 한 금광개발과 이에 따른 각종 산업의 발달 때문이었다. 중가주의 중심지는 다뉴바와 리들리이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4시간 걸리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3시간 30분 거리이다. 북미지역 한인들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서도 생활을 영위하였지만, 두 도시 사이의 중간지역에는 1919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1920년대와 30년대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左) 버지스 호텔 출입구 (右)다뉴바 공동묘지와 한인묘지 구역

중가주 한인타운, 다뉴바와 리들리
중가주의 중심지 다뉴바에는 처음 한인들이 포도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왔다. 그러다가 1908년부터 1천 에이커 규모로 포도밭을 계약하여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수확기만 되면 150~200명(많을 때는 200~300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에 다뉴바는 미주 본토에서 한인들의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의 하나로 부상되어, 1914년 5월 20일 대한인국민회 다뉴바 지방회가 설립되었고, 이때부터 다뉴바를 중심으로한 중가주시대를 열었다. 다뉴바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3·1절 기념식을 미 본토에서 가장 먼저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다뉴바에서는 최초로 대한 여자애국단이 결성되어 왜간장 안 먹기 캠페인을 펼쳤으며, 1920년부터는 매년 다뉴바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3·1만세운동기념 퍼레이드를 갖기도 하였다.
중가주의 샌화퀸 밸리 지역에 금광 개발과 철도가 부설되면서 리들리에도 과일·견과류, 포도 등의 작물들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리들리는 골드러시(gold rush)로 몰려든 광부들에게 조달할 농산물을 재배하기 적합한 관개시설이 설치되면서 중가주의 중심 도시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백만장자인 김형순(Harry S. Kim, 1886~1977)이 활동하던 곳이 리들리이다. 김형순은 노동자들을 모아 묘목장(Nursery) 과 과일포장회사(Packing House)를 운영하여 최초의 한인 백만장자가 되었다. 또한 자두와 복숭아로 개발한 넥타린(Nectarine)으로, 미연방 농무성에서 ‘넥타린 왕(King of Nectarine)’이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수여받았다.
김형순은 김호(Charles Ho Kim, 1884~1968)와 더불어 1921년 김형제상회(Kim Brothers Co.)를 세웠다. 김형제상회의 주된 사업은 주택 정원조경과 과수원을 위한 묘목회사, 5백 에이커의 과수원, 과일 패킹, 운송회사 등이다. 해방 전까지 재산평가는 리들리, 다뉴바, 프레즈노 등에 산재한 5백여 에이커의 농장과 40만불의 패킹시설, 10만 불의 묘목장 등 150만 불 가량의 부동산과 7백만 불가량의 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매년 순수입은 1백만 달러를 초과하였으며, 수익금의 대부분은 독립운동 자금과 동포기관 운영의 자금조달처 역할을 했다.
01.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김형제상회’ 건물(현재 모습) 02. 버지스 호텔 입구의 이승만과 안창호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
03. 리들리(Reedley) 한인장로교회 04. 다뉴바 3·1운동 제1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했던 메인 스트리트에 세워진 애국선열기념비

독립운동지도자, 이승만과 안창호의 방문
중가주지역에 한인들이 몰려들고 부유한 한인사회가 형성되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도 본격화되었다. 다뉴바와 리들리 등 중가주지역 한인사회는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1920~30년대 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이승만과 안창호도 중가주지역의 한인사회를 자주 순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과 안창호가 중가주를 대표하는 다뉴바와 리들리에 들렀을 때, 이들은 주로 버지스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다. 리들리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김형순과 김호가 경영하는 김형제 상회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독립운동 자금이 공급되었다. 이승만과 안창호가 리들리 지방에 들렀을 때, 버지스 호텔에 머물며 이곳의 한인들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도모하였다.
버지스 호텔은 리들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소는 캘리포니아주 리들리 11번가 1726번지(1726 11th Street, Reedley, California)이다. 버지스 호텔 입구 왼쪽에는 ‘In Memory of the Two Korean Patriots Stay at this Hotel’이라는 글과 함께 이승만, 안창호의 사진이 들어간 동판이 있다. 호텔 2층 프레지던트실에 이승만이 숙박하였으며 내부에도 이승만과 안창호의 사진이 걸려 있다. 호텔 내부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있으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미주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이승만과 안창호는 중가주의 한인사회를 순방하고 그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받기도 하였다. 리들리의 부호이며 지도자인 김형순과 김호는 이승만과 독립운동 노선은 달랐지만, 그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대우를 했다.
중가주에는 이승만, 안창호와 같은 지도자들이 머물렀던 버지스 호텔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기념물들이 세워져 이를 기념하고 있다. 다뉴바에는 3·1운동 제1주년을 기념하여 메인 스트리트에서 퍼레이드를 벌였는데, 퍼레이드 행사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인장로교회 자리에 ‘애국선열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리들리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김형순과 김호 두 독립운동가들이 거주하였던 집이 있으며, 두 사람이 공동으로 경영하였던 김형제상회의 건물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중가주지역에는 이민의 선조이며,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리들리 공동묘지(Reedley Cemetery)와 다뉴바 공동묘지(Smith Mountain Cemetery)가 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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