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근대역사기행
영광과 오욕을 간직한 근현대 역사의 현장
'인천 개항장거리'

인천항은 우리나라의 세 번째 근대 항구로 1883년 문을 열었다. 조선시대 내내 제물포라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인천항에는 개항 직후부터 중국인과 일본인이 몰려들었다. 주로 산둥반도에서 건너온 중국인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했고, 급격히 밀려든 일본인은 거류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갯벌까지 매립했다. 인천 개항장에서는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영사관 자리에 들어선 구 인천부 청사. 지금은 인천시 중구청 청사로 활용되고 있다.


운요호사건과 조선의 개항
1875년 9월 20일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조선 해안을 측량한다는 구실을 앞세웠지만, 조선 정부에 미리 통보하거나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침입이었다. 영국에서 도입된 운요호는 대형 함포인 160mm포와 140mm포를 장착하고 1km 밖에서도 정확한 포격이 가능한 최신 군함이었다.
강화해협에 들어온 운요호의 일본군은 담수 보급을 핑계 삼아 작은 배로 갈아타고 초지진에 접근했다. 그 당시 초지진의 조선 수병은 즉시 돌아가라며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일본군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초지진 포대에서는 일본군의 배에 포격을 가했다. 모함인 운요호로 되돌아간 일본군은 최신식 함포로 초지진을 맹렬히 공격했다. 그런 다음 인근 영종진에 상륙한 일본군은 조선군에 큰 피해를 보이고, 무고한 주민을 약탈하고 살육을 자행한 뒤에 일본 나가사키항으로 돌아갔다.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군대까지 파견한 일본은 조선 정부에 개항을 강요했다. 결국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 간의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이 체결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국제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었던 강화도조약은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조약에는 ‘조선은 부산 이외에 두 곳의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인의 통상을 허가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그 결과 1876년 부산항, 1880년 원산항, 1883년 인천항이 잇달아 문을 열어 외국인의 왕래와 무역을 위해 개방한 ‘개항장’이 생겨났다. 이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 외국인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감리서 등이 설치됐다. 인천 개항장 일대에는 외국인 거류지인 조계도 설정됐다.

左. 카페 ‘팟알’로 탈바꿈한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의 2층 다다미방
右. 개항기에 청국 조계(왼쪽)와 일본 조계(오른쪽)의 경계였던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



구청과 카페로 변신한 근대건축물
인천항이 문을 연 1883년 일본은 가장 먼저 영사관을 설치했다. 일본 조계지 내의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 일본영사관은 모든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2층 목조 건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1910년 국권피탈 이후에는 인천부청사로 사용됐었다. 부속 경찰서와 감옥까지 둔 인천부 청사는 1933년에 모더니즘 양식의 지상 2층 건물로 새로 지어졌다. 그 당시로서는 최신 설비인 증기난방,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췄다. 광복 후에는 인천시청으로 사용됐고, 1964년에는 지금과 같은 3층 건물로 증축됐다. 인천시청이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1985년부터는 인천시 중구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 개항장거리에는 구 인천부 청사(국가등록문화재)를 포함해 근대의 다양한 유적과 건축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구 인천부 청사를 중심으로 반경 500~600m 안에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인천 선린동 공화춘,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인천 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 등 국가등록문화재 외에도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구 인천일본제1은행지점(인천개항박물관), 구 인천일본제18은행지점(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구 인천일본제58은행지점(인천중구요식업협회 사무실), 제물포구락부, 대불호텔(대불호텔 전시관), 인천우체국, 홍예문 등 근대건축물이 산재했다.
인천 개항장거리의 중심에 위치한 구 인천부 청사 주변에 특히 일본식 건물이 많다. 이곳 거리의 대표적인 건물은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이다. 이 건물은 인천항에 노동인력을 공급하던 하역회사의 사무소이자 주택으로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 사이에 지어졌다. 개항 당시부터 광복 때까지 1층은 하역회사의 사무소, 2~3층은 노동자 숙소로 사용됐다.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는 현재 인천의 옛 일본 조계지에 유일하게 남은 ‘마치야’(町家, 1층에는 점포, 2층 이상에는 주택을 갖춘 일본의 도시 주택) 양식의 3층 건물이다. 2011년 이 건물을 매입한 백영임 씨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되살려서 2012년부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1층은 카페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2~3층은 여전히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남았다. 대화조 사무소 시절의 나무 간판과 노동자가 남긴 낙서도 여태껏 보존돼 있다.
‘공화국의 봄’과 미군 스낵바 이야기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에서 서쪽으로 50m쯤 가면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인천광역시기념물) 입구에 다다른다. 만국공원(현재 자유공원) 입구로 연결되는 이 계단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일본 조계지, 서쪽에는 청국 조계지가 자리 잡았다. 이 계단 앞의 내리막길을 조금만 걸어가면 대불호텔 전시관을 지나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로 1888년 처음 건립됐다. 인천 개항 초기부터 해운과 물류수송을 맡은 상선회사의 사옥으로 쓰였다는 이 건물은 처음에 붉은벽돌 건물의 사옥과 사택, 창고 등이 함께 지어졌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는 일본군 병참사령부로도 사용됐고, 광복 후에는 항만 관련 회사의 업무용 건물로도 쓰였다. 지금은 인천아트플랫폼 공간의 일부로 활용되고 있다.

左. 특등요리(特等料理), 공화춘(共和春), 포판회석(包辦會席) 등의 현판이 걸린 선린동 공화춘
右. 인천아트플랫폼 옆의 개항장거리에 설치된 개항기 당시의 지게꾼 조형물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에서 200여 m 거리의 차이나타운 골목 안에는 ‘인천 선린동 공화춘’이 자리 잡았다.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벽돌조 건물 입구에 공화춘(共和春), 등 한자 현판이 걸려 있다. 중국 산둥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은 1911년 지금의 자리로 산동회관을 이전하고, 이듬해에는 상호를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의 공화춘으로 변경했다.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공화춘은 한때 경인 지역의 최고급 중화요리점이었으나 인천역 일대의 상가가 쇠락하면서 1983년 영업을 중단했다. 2012년부터는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유공원 북쪽에 위치한 제물포고등학교 내에는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학교 강당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 인천부립 인천중학교가 문을 연 1935년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벽돌조 건물인 이 강당도 세워졌다. 1972년 인천중학교가 폐교된 뒤로는 제물포고등학교(1954년 개교) 강당이 되었다. 너비가 15m나 되는 강당인데도 내부에는 중간 기둥을 세우지 않아 훤히 트였다. 강당 건물의 높이를 넉넉히 확보하기 위해 완만한 경사의 상부와 급경사의 하부를 동시에 갖춘 만사드 지붕을 올렸다.
제물포고등학교와 인접한 자유공원의 정남 쪽에는 인천항 제1부두가 위치한다. 부두 입구에는 인천 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 건물이 자리한 인천세관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 조선 정부는 1883년 6월 16일 조선 최초의 근대식 세관인 인천해관을 창설하고, 그해 11월 3일부터 관세를 부과했다. 인천세관은 2층 규모의 서양식 목조건물을 새로 지어 1911년 이전했다. 하지만 6·25전쟁 중에 본관 건물은 불타고 1911년 건축된 창고와 1918년경 지어진 선거계 사무소, 화물계 사무소 등 부속동만 남았다. 창고 건물은 6·25전쟁 이후 한동안 미군의 스낵바로 쓰였다가 반납되기도 했다. 2013년에 수인선 복선전철공사로 원래 자리에서 4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축소, 복원됐다.
올해 인천 개항장거리를 3번이나 찾았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영광과 오욕을 간직한 개항장거리에서 느끼는 감흥이 늘 새로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해가 바뀌기 전에 한번쯤 더 가볼 듯하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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