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형유산의 맛·멋·흥
고된 농사일을 일단락 지은 농민들이 펼친 축제
'밀양백중놀이'

밀양백중(密陽百中)놀이는 경상남도 밀양에서 농민들이 논에서 김매기를 마칠 무렵인 백중(百中)을 전후하여 놀았던 놀이이다. 백중놀이는 주로 논농사가 발달한 중부 이남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놀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미씻이라고 부르는데 ‘논매기가 끝나고 호미를 씻어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잡귀막이굿: 온갖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농민들의 축제, 밀양백중놀이
밀양은 「동국여지승람」 「밀양도호부조」의 영남루기에 “긴 강을 굽어 끼고 넓은 들은 평평히 얼싸안고 있으며, 농사는 부지런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밀양은 예로부터 농업이 성한 곳으로써, 이와 관련된 백중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의 전통 역시 강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밀양지역의 농민들이 전승해 온 백중놀이는 마지막 김매기를 마친 농사꾼들이 푸짐한 먹거리를 즐기면서 온갖 놀이를 펼치는 것이었다. 농악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놀이의 핵심은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상일꾼’을 뽑아서 소의 걸채 또는 작두말에 태우고 삿갓을 거꾸로 씌우는 등의 가장을 시켜, 마을을 돌면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었다. 이를 밀양지역에서는 ‘꼼배기참놀이’라 하였다.
“부우우우웅~.” 긴 나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오늘은 일찌감치 마지막 김매기를 마칠 모양이다.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매일 이어졌던 일들, 모심고, 풀 매고 온갖 들일로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었다. 그동안 고생한 일꾼들 먹일 생각에 손발이 바빠진다. 동네 아낙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여 음식준비에 정신이 없다. 대청마루에서 서성이는 진사댁 큰 어르신도 마당과 부엌에서 분주히 설치는 아낙네들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은 모양이다. 진두지휘 중인 진사댁 안방마님의 한층 높은 소리가 그다지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고 정겹기만 하다. 깽매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니 이제 곧 들이닥칠 것 같다.
“부웅~ 부웅~ 부웅~.” 동네 어귀에 다다르니 나발 소리가 연이어 터진다. 의기양양한 일꾼들의 추임새 소리도 따라서 높아진다. 잠시 깽쇠가 가락을 멈춘다. 이런저런 잔소리와 의논 끝에 대오가 갖추어진다. 먼저 나발을 부는 퇴로아제를 태운 작두말을 맨 앞에 세우고, 마부랑 일산을 든 이는 작두말 옆에 자리 잡는다. 다음으로 놀이꾼들을 여기저기 줄지어 세웠다. 악기를 잡지 않은 일꾼들은 모두 뒤에서 춤추며 따라오게 했다. 어느 정도 대오가 갖춰지자 퇴로아제가 작두말을 타고 나발을 길게 불어제친다. 출발이다. 동네 아이들은 벌써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제법 행차가 거창하다. 동네 입구에서 진사댁까지는 금방이지만 일부러 동네에서 제일 넓은 길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미리 의논해 두었다.
농악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이제 저 골목을 돌아서 들이닥치겠다. 술과 음식은 준비가 다 되었고, 의기양양하게 들이닥칠 일꾼들이 자리만 잡으면 될 것 같다. 아차! 퇴로아제가 아침에 당부해 둔, 힘자랑할 때 쓰고자 한 들돌(둥그런 돌, 들어서 어깨너머로 넘김)이 이제 생각난다. 오늘은 오랜만에 어린 일꾼 중에 몇 명을 뽑아서 가을 추수 때부터 상일꾼으로 승급시키기 위한 평가시험을 보기로 했는데 깜빡 까먹었다. 사랑채 뒤뜰에 있다는데 아이 몇 명을 보내 들돌을 굴려 와야겠다.
진사댁에 도착했다. 대문을 활짝 열어두어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가운데는 오늘 하루 밤새도록 놀 수 있도록 비워두었고 마당 한편에 앉은뱅이 상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제법 음식이 푸짐하다. 이 댁 농주는 우리 동네에서 그 맛이 제일이다. 벌써 술 내음에 코끝이 간지럽다. 작두말이랑 농악기들을 내려놓고 농주를 한 사발씩 들이켜는 게 가장 급하다. 어차피 한바탕 노는 건 진사댁 큰 어르신과 약속했듯이 밤새도록 이어질 것이다.

김 매기: 이 일 끝나면 한바탕 축제로구나



한편 밀양백중놀이는 농민들의 백중놀이와는 조금 구별되는 것으로서, 이 지역 한량들의 친목 조직이라고 전하는 보본계의 들놀이에 그 뿌리를 둔 것이라고 한다. 이 들놀이의 중심적 연행은 ‘병신놀이(병신굿)’로서, 농민들이 일하다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쉴 때 병신춤을 추며 양반을 풍자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밀양백중놀이는 일반적인 호미씻이의 한 형태인 ‘꼼배기참놀이’와 보본계의 ‘병신굿놀이’가 합쳐져서 전승되어 온 놀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백중놀이 이전의 병신굿놀이)는 1960년대 후반에 복원되었으며, 1970년대 초에 들어 지역축제인 밀양아랑제(밀양아리랑대축제)에서 첫선을 보였고, 1972년의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경남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함으로써 공식적인 기록에 등장하였다. 이 대회에 처음 참가할 때의 명칭은 ‘병신굿놀이’로서 인사굿, 신풀이굿, 병신굿, 모듬굿 등을 연행하였는데, 그 뒤 명칭과 내용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들놀이, 보본계놀이 등) 1980년 제12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밀양병신굿놀이’로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제주도에서 개최될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전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연습 과정에서 놀이의 명칭을 ‘밀양백중놀이’로 바꾸고, 전승 주체도 ‘국악협회밀양지부’에서 ‘밀양민속보존협회’로 변경하였으며, 내용과 형태도 오늘날 전승하는 것과 유사하게 수정, 보완하였다.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뒤 그해 11월 17일에 ‘밀양백중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작두말타기: 올해 농사 장원은 날세!


여보게, 꼼배기참 먹고 신나게 놀아보세나
밀양백중놀이는 크게 앞놀이마당, 본놀이마당, 뒷놀이마당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앞놀이는 입장굿, 잡귀막이굿, 모정자놀이, 농신제 순으로 진행되는데, 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성변환 바코드의적 요소가 강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신대를 앞세워 나발, 쇠, 징, 북, 장구, 놀이꾼 등의 순으로 입장한 후, 놀이마당을 깨끗이 하는 의미의 잡귀막이굿을 한다. 잡귀막이굿은 놀이꾼들이 놀이판 가운데에 세운 농신대를 중심에 두고 춤추며 감아 들어간 후 들당산가락[영신(??)악]을 울리면서 삼배를 올리는데, 이는 오방신장을 일으켜 잡귀를 막고 신이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모정자놀이는 모심기와 논매기소리를 부르면서 모심고 논매는 동작을 흉내 낸다. 이 놀이가 끝나면 씨름이나 들돌 들기로 좌상, 무상, 숫총각을 뽑고 덧배기춤을 추고 논다. 이렇게 배역을 정하고 나발을 길게 불어 신호하면 농신제를 지낸다. 먼저 농신대 앞에 제관과 축문을 읽을 사람이 서고 다음으로 앞서 뽑은 좌상, 무상, 숫총각이 선다. 북을 “둥 둥 둥” 세 번 울리면 강신했다고 하여 모두 엎드리면 제관이 제를 올린다. 제를 마치고 음복하는 동안 구경꾼과 놀이꾼은 복주머니에 쌀, 돈 등과 함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어 농신대의 용줄에 매달고 복을 빈다. 본놀이인 놀이마당은 앞놀이에 비해 극적 요소가 강한 작두말타기와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두말타기는 백중놀이를 호미씻이의 재구성이라고 이해하였을 때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작두말은 지게와 비슷한 모양인데, 이 작두말을 네 명의 놀이꾼이 어깨에 메고, 좌상과 무상을 태우고 삿갓을 머리에 뒤집어씌워 정자관처럼 하고 도롱이를 거꾸로 걸쳐서 도포를 입은 것처럼 하여 놀이판을 돌면서 양반행차를 흉내 낸다. 작두말타기의 행렬은 맨 앞에 말이나 소를 끄는 시늉을 하는 놀이꾼이 서고, 그 뒤로 작두말 옆에서 지겟작대기에 큰 삿갓을 세워서 햇빛을 가리는 놀이꾼이 따른다. 작두말놀이는 일종의 길놀이이며 가장행렬이다.
점차 신명이 오르면 양반이 머슴들의 놀이판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양반춤을 춘다. 이러한 양반의 모습이 못마땅한 머슴들은 우스꽝스러운 병신춤을 추면서 양반을 놀이판에서 쫓아낸다. 병신춤 대목에서는 꼽추춤, 난쟁이춤, 꼬부랑할미춤, 떨떨이춤, 문둥이춤, 배불뚝이춤, 봉사춤, 절름발이춤, 중풍쟁이춤, 히줄래기춤 등 병신 모양새를 희화화하여 다양하게 보여준다. 양반은 이를 보고 흥겨움을 참지 못하여 의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놀이판에 뛰어들어 경상도 춤의 활달하고 박력 있는 패기를 보여주는 범부춤을 선보인다. 장구재비와 마주하여 어르기도 하고 마당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역동적인 춤을 춘다.
뒷놀이는 오북춤과 화동마당으로 구성되는데, 놀이꾼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노는 대동의 장이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재비가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의 안과 밖으로 들락거리면서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북춤이라 할 수 있다. 능청능청 곱덧배기장단에 맞추어 허튼춤을 추다가, 다시 흥겨운 덧배기장단에 맞추어 원을 만들면서 조이고 푸는 것을 거듭하며 북배김을 하는데, 북배김은 북재비들이 원의 가운데를 향해 모여들어 서로 마주 보며 북을 힘차게 치는 것으로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다. 화동마당은 놀이꾼들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서 한바탕 춤을 추며 신명을 맘껏 풀어내는 장으로서 이 놀이의 대단원을 이룬다.

左) 양반춤: 유유자적 양반춤 中) 범부춤: 경상도 사내의 박력이 풀풀 右) 오북춤: 구경만 해도 오복이 가득, 오체는 건강



아름다운 상생과 농민문화의 예술성을 담다
백중놀이는 고된 농사일을 일단락 지은 농민들이 펼친 축제로서, 축제의 주체는 머슴과 소농이었고 지주와 부농들은 이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있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머슴과 소농들은 맘껏 먹고 마시면서 신명을 풀어냈으며 지주와 부농들은 이를 용인하고 후원함으로써, 고용인과 피고용인,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밀양백중놀이는 전통적 농경세시풍속 중 백중날을 즈음으로 펼쳐졌던 마을공동체 놀이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과거의 농경 모습과 놀이를 엿볼 수 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연희자들의 복장과 소품, 놀이 구성 등에서는 전통적인 농경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놀이에 등장하는 춤과 놀이를 통해서는 농민문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계묘년 올해의 밀양백중놀이 공개발표회는 밀양영남루를 마주한 강변 둔치 잔디밭에서 펼쳐진다. 매년 음력 7월 15일(백중날)을 앞둔 주의 토요일로 정해져 있는데, 올해는 8월 26일로 예정되어 있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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