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명사와 국가유산
전통문화와 현대예술의 융합, 세계로 나아가다
'공연연출감독, 상명대학교 김희정 교수'

2021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제작한 공연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은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사기장'과 '매듭장'의 실제 작업을 공연화한 최초의 작품으로, 공예가 공연으로 전환되는 파격적인 시도가 주목을 끌었다. 올해 국립무형유산원 개원10주년과 한독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된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의 연출감독 김희정 교수를 만나 보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의 융합
김희정 교수는 클래식 음악은 물론 전통음악, 공연기획과 연출, 영상,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만국립극장 국가음악청에서 중국민족교향악단과 국악이 협연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등 국제적인 무대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이다.
“국립극장에서 외국 작가에게 전체 프로그램을 주고 또 한국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워 주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대만 공연은 2016년 싱가포르에서도 공연되어 호평받은 프로그램으로 동서양, 그리고 한국·중국이 혼융된 믹스미디어 작품이었다. 그가 이 같은 믹스미디어 작업에 몰입하기 시작한 건 클래식 음악 작곡을 전공했던 대학교 시절부터였다.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작곡을 했던 그는 클래식 음악과 전통음악, 영상을 융합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입체영상과 사운드를 연동하는 방식의 작품을 꾸준히 창작해 왔다. “다양한 분야를 융합하는 작업이 재미있었다”라는 그의 말에서 미술가 집안에서 자라온 배경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김희정 교수는 클래식 음악은 물론 전통음악, 공연기획과 연출, 영상,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이야 융합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지만, 김희정 교수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어머니에게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않겠니”라는 타박을 들었다고 하니 돌이켜보면 그는 세상에 없던 길을 내고 단단히 다져가면서 달려왔던 셈이다.
“제가 다양한 영역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영상 기술까지 섭렵하게 된 데는 해외에서 작업을 많이 하게 된 이유도 있었어요. 경계가 없는 작품들은 해외에서 호응이 더 좋아서 해외 공연의 기회가 많았어요. 하지만 여건상 해외로 나가는 인원을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해 낼 수 있어야 했죠. 저 역시 영상 편집, 영상 오퍼 등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10년 이상 함께 일한 스태프들은 뭐든지 다 할 줄 알아요.”

사진. 허익 /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새로운 예술로 승화된 무형유산의 손짓과 몸짓
이러한 숱한 이력과 경험을 가진 김희정 교수였지만 국립무형유산원 최초의 창제작 공연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의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는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사기장 보유자인 김정옥 장인과 매듭장 보유자인 김혜순 장인을 만나면서 사라졌다. 그릇을 빚고 매듭을 짓는 장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바로 퍼포먼스다!”라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무형유산 장인들과의 작업은 정신이 풍요로워지는 깊이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무형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고,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김희정 교수는 그렇게 흙과 실이 도자기와 매듭으로 완성되는 인고의 과정을 ‘인간문화재 작업무용극’이라는 믹스미디어 형태의 공연으로 연출했다. 김용걸 안무, 박동우 무대디자인, 정순도 음악감독의 손길을 보태어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진 무대로 되살아났다. 김정옥 장인이 흙을 밟고 물레를 돌려 찻사발을 빚어내는 모습, 김혜순 장인이 실을 감아 끈을 맺고 풀며 매듭으로 엮어내는 모습, 그 우아한 손짓이 무용수들의 리듬감 있는 몸짓과 어우러지며 무형이 유형으로 바뀌는 마법이 펼쳐졌다. 그 순간을 목도한 관객들의 몰입도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깊었다. 일반 관객들은 물론, 각계각층 문화계 인사들이 가득 자리를 메운 공연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만석을 기록했고 초연에 이어 올해 또다시 오른 무대에서도 감동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01.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공연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02.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매듭장 김혜순 장인의 매듭 엮는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03.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사기장 김정옥 보유자와 현대무용이 어우러진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04.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공연이 끝난 뒤 김혜순 장인과 포옹하는 김희정 교수 (사진. 김희정 교수 제공)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 더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내야
김희정 교수는 자신을 두고 전통문화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우리 전통문화가 깊고 짙게 연결되어 있다. “저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 정적인 템포에 굉장한 매력을 느껴요. 역동적인 연주를 하는 국악기라도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정적이에요. 그 기다림의 과정이 마음의 편안함을 안겨 주죠. 우리 전통문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적인 템포를 공연을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반응도 좋지만, 박수를 치는 것도 잊을 정도로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그런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희정 교수는 작품마다 늘 상상 이상의 창조적인 생각과 특별함을 불어넣어 언어와 국경, 경계를 초월하는 감동과 혁신을 선사한다. 일본에서 열린 장애인 음악제에서 작품 위촉을 받았을 때는 으레 연상하는 ‘장애인이 연주하는 음악’이 아닌 수화를 위한 협주곡을 선보여 객석을 가득 메운 청각장애인들에게 열렬한 손동작 박수를 받았다. 싱가포르 국립 차이니즈 오케스트라(SCO)와의 단독 공연에서는 한국 음악과 중국 음악, 영상, 첨단기술까지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흥행과 호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러한 작업은 모두 전형적이고 답습화된 그 무엇을 뒤집는 일이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업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문화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물 안에서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국가유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방법을 함께 구상하는 노력도 해야 하죠. 그리고 우리 문화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문화가 힘인 시대에는 자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한국 문화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더욱요.”
내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교수로 초청되어 아시아문화에 기반한 믹스미디어 공연 강의를 한다고 한다. 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중동과의 공연교류에 대한 연구를 할 예정이다. 물론 우리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 활동 역시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김희정 교수에게 도전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현재진행형이 될 것이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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