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형유산의 맛·멋·흥
기개가 느껴지는 장엄하고 고귀한 궁중음악
'피리정악 및 대취타'

대취타는 왕이나 귀인이 행차할 때 군대의 취고수들이 연주하는 행진곡으로 취타와 세악을 대규모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취타는 방탄소년단 슈가가 솔로앨범 타이틀곡 <대취타>에 샘플링하면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씩씩하고 장엄한 연주로 선조들의 기개가 한층 더 느껴지는 피리정악 및 대취타를 알아본다.

대취타 어가행렬 ⓒ국립무형유산원


궁중음악의 드높은 기상이 전해지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취타는 1998년 피리정악 및 대취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피리정악 및 대취타는 집사의 호령에 따라 징이 울리고 북을 치면 모든 악기가 일제히 연주를 시작한다. 황색 옷에 남색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초립을 쓴 군악수들이 징, 장구, 북, 나발, 나각, 태평소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 매우 우렁차고 장쾌하여 궁중음악의 드높은 기상이 나타난다.
피리정악 및 대취타의 의미를 살펴보면, 피리정악의 정악(正樂)이란 ‘아정한 음악’ 즉, ‘바른 음악’이란 의미로 전통사회의 궁중음악이나 풍류방 음악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피리정악’은 피리로 연주하는 궁중음악과 풍류방 음악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취타’는 ‘크게(大) 불고(吹) 두드린다(打)’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취타는 취악기(吹樂器: 부는 악기)와 타악기(打樂器: 치는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말하는데, 취타수(吹打手), 취타대(吹打隊) 등의 용례에서 보듯이 취악기와 타악기로 편성된 연주 형태를 가리킨다.

피리정악 연주ⓒ피리정악 및 대취타 보존회



현재 피리정악 및 대취타는 피리정악 및 대취타 보존회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정재국 보유자와 사재성, 김관희, 곽태규 등의 전승교육사 지도 아래 180여 명의 이수자와 165명의 전수생으로 전승 보존되고 있다. 해마다 1회의 공개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획행사 및 해외공연을 통하여 피리정악 및 대취타를 알리고 있다. 올해는 3월의 공개행사를 마치고 6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기획행사를 개최하는 등 피리정악의 아름다운 선율과 대취타의 웅장한 모습을 변함없이 선보이고 있다.
피리정악 및 대취타의 유래
그렇다면 피리정악 및 대취타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 먼저 피리정악의 피리부터 살펴보면, 피리의 한자 표기는 필률이다. 중국에서 티베트의 피피(pi-pi)나 위그르의 디리(diri)를 한자로 표시하면서 필률, 비율, 필률 등으로 쓰고 ‘비리’라 발음하던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필률이라고 적고 피리라고 발음하게 된 것이다. 한국 문헌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이 땅에 피리가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중국 사서인 『수서(隋書)』나 『통전(通典)』의 <고구려전>에 의하면 당시 고구려 음악에 필률이란 악기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피리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음악에 중요한 악기로 전승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두 가지의 피리가 존재하여, 하나는 향악 연주에 사용되었고, 다른 하나는 당악 연주에 사용되었다. 피리는 고려시대 이후 조선 전기를 거쳐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향피리로 시나위를 연주하거나, 산조 같은 독주 형식이 생기기도 하였으며, 궁중음악이나 가곡 선율을 피리로 독주하는 피리정악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다음으로 대취타는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취타악대의 형태를 고려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지휘·통신이 제도화되어 있었고, 취각군·취라군이라는 용어로 미루어 각(角)이나 나(螺)와 같이 단일 악기의 연주자로 구성된 악대가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취라적·대평소라는 군영 소속 연주자와 취각(吹角)이라는 기능에 따른 단일 악기 연주집단이 있었다. 조선 후기 취고수 제도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악기와 중국으로부터 수용한 것이 혼합되어 독자적인 취타악대의 체계를 갖추고 발전하였다.

左) 당피리ⓒ국립국악원 中) 나각ⓒ국립국악원 右) 자바라ⓒ국립국악원


웅장한 울림을 만드는 악기 구성
피리정악 및 대취타에는 9개의 악기가 사용된다. 피리정악의 악기로는 향피리, 세피리, 당피리가 있다. 향피리는 대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팔음(八音) 중 죽부(竹部)에 해당하는 악기이다. 또한 세피리에 비하여 굵은 관대와 큰 서를 사용하므로 ‘대피리’라 부르기도 한다. 세피리는 향피리와 거의 같으나, 관대와 서의 굵기가 좀 더 가늘다. 악기의 음역도 대동소이하며, 관이 가늘기 때문에 소리가 작아서 성악곡의 반주와 줄풍류, 실내악 연주에 사용된다. 당피리는 향피리, 세피리와 구조는 같으나 관의 굵기에 차이가 있으며, 음역에도 차이가 있다. 향피리, 세피리가 얇은 대나무를 사용한다면 당피리는 일반적인 굵은 오죽으로 관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左) 대취타 연주ⓒ피리정악 및 대취타 보존회 中) 정재국 보유자의 향피리 연주ⓒ국립무형유산원 右) 창덕궁에서 진행된 대취타 연주 모습ⓒ국립무형유산원



대취타는 태평소, 나각, 징, 자바라, 용고, 나발 등의 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태평소(太平簫)는 겹서를 관에 꽂아 부는 관악기의 하나로 악기의 구조나 취법으로 보아 피리와 같은 계통에 드는 악기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호적, 쇄납, 날라리, 호가와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 초기에는 종묘제례악에도 사용되었으며, 농악 및 불교음악에도 사용되었다. 나각(螺角)은 자연생 소라껍데기의 뾰족한 부분에 구멍을 뚫어 취구를 만들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징(鉦)은 궁중에서는 대금(大金)으로 불렀다. 원래 징은 북과 함께 군중에서 사용되었는데 북은 전진의 신호로 징은 퇴각의 신호로 쓰였고 풍물놀이, 무악, 불교음악 등에 사용된다.
자바라는 바라 또는 제금이라고도 하는데 서양의 심벌즈와 같이 양손에 하나씩 들고 맞부딪쳐서 소리를 낸다. 불교음악에서 바라춤을 출 때 들고 추기도 한다. 용고(龍鼓)는 판소리 반주에 쓰이는 소리북 정도의 크기로 북통에 용을 그려 넣어서 용고라고 한다. 북통에 세 개의 고리가 박혀 있어, 여기에 끈을 매어 허리와 어깨에 돌려 묶고 양손에 북채를 들고 친다. 두 면의 가죽 중에서 한 면은 위를 보고, 다른 한 면은 아래를 향하고 있어 한쪽 가죽만 치는 것으로, 행진 연주 및 농악에 주로 쓰인다. 나발[喇叭]은 세 토막으로 구분된 관을 아래로 밀어 넣어 짧게 꽂아 넣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악학궤범에는 나발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문헌이 없기 때문에 언제 들어온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중국 계통의 나팔을 본뜬 것만은 확실하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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