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함께 즐기다-잇다,놀다
전통 부채의 우아한 곡선에 실린 살랑바람
'김주용 죽호바람 대표'

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면 시원한 바람을 실어주는 부채가 간절하다. 촘촘히 뻗은 대나무 살 따라 결 고운 한지를 덧입혀 완성해낸 전통 부채는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산들산들한 시원함이 매력이다. 이러한 자연의 바람을 위해 김주용 죽호바람 대표는 대나무밭에서 직접 키운 대나무에 정교한 솜씨를 더하여 여름마다 곁에 두고 함께할 부채를 탄생시키고 있다.

김주용 죽호바람 대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업을 이어가겠다는 사명감
전남 구례군 지리산, 이슬비 내려앉은 대숲에 상쾌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물오른 연녹빛 왕대나무를 가만히 어루만지자 매끈하고도 옹골진 감촉이 느껴진다. 지난 겨우내 대나무 줄기를 베어다가 잿물로 삶은 다음, 한 달간 햇볕에서 노랗게 색이 나도록 건조하여 부채를 만들 기초 재료를 다져놓았다. 차곡히 쌓아둔 통대 가운데 하나를 고른 김주용 대표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겹겹이 조각낸 부챗살을 내밀어 보였다.
“온화한 기후에서 자생하는 왕대나무는 지리산이 북방한계선입니다. 즉, 서식하기에 가장 척박한 환경을 견뎌낸 만큼 탄성 좋고 강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인근 구례 일대의 왕대가 우수하기로 이름난 배경이죠.” 과연 대나무 살을 얇게 떠냈지만, 부서지지 않는다. 바람 내기에 적합할 뿐 아니라 고상한 미감마저 자아내는 비결이다. 얇게 떠낸 대나무 살을 그대로 잘 펼쳐서 모양을 내고 한지나 비단, 모시 등에 풀을 발라 압착한 다음 말리면 시원한 기운을 불어넣는 선면(扇面)이 만들어지고, 정성스레 자루를 깎아서 달면 부채가 완성된다.





이와 같은 전통 부채 제작의 뿌리는 김주용 대표의 할아버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부채 장인들이 겨울에 지리산에 와서 대나무를 직접 사서 깎는 작업을 두세 달 정도 했다. 김 대표의 할아버지는 부채를 만들 대나무를 구하러 찾아오는 선자장(扇子匠)에게 작업할 공간을 내어주며 틈틈이 부챗살 만드는 법을 익혔다. 그 후 부채 제작 작업이 분업화되면서 아버지 대에서는 대나무를 베어 부챗살을 만들고 공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수요가 대단해 해마다 50만 개가량 생산할 정도였다. 그런데 김 대표가 공대를 졸업할 무렵인 2002년, 중국산 수입 부채가 시중에 대거 진입하면서 전통 부채의 설 곳이 점차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아니면 명맥이 끊길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명감과 젊은 패기로 전통 부채의 세계에 뛰어들었죠. 그렇게 죽호바람이란 이름을 지켜온 지 어느새 15년이 되었네요.”

01. 한복을 입은 아씨를 연상하여 만든 치마부채 02. 부챗살로 모양을 낸 곡두원선과 세미선
03. 겨우내 대나무 줄기를 배고 잿물로 삼는 등의 작업을 하여 부채 기초 재료를 만들어 놓았다.

시대적 변화를 뛰어넘은 소중한 가치
물론 고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시대적 변화로 크게 줄어든 수익성에 대나무를 엎어낸 농가가 한둘이 아닐진대, 김주용 대표라고 그런 고민 한번 없었을까. 그러나 약 1만㎡(3,000여 평) 대나무밭을 공들여 가꾸고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통 부채를 선보이며 차츰 난관을 타개해 나갔다. 다행히 최근 들어선 부쩍 늘어난 관심과 더불어 흥미로운 제안 또한 제법 많아지면서 연 3만 개가량의 부채를 공급하고 있다.
“2021년에 한 업체에서 선물용 부채를 의뢰하면서 제작 시연까지 요청하더군요. 공교롭게 가장 바쁜 시기라 정중히 사양했죠. 그런데 재차 연락해 와서 설득하기에 사정을 듣고 보니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신상 론칭 행사였습니다.” 표현을 빌리자면 ‘가을 한 달 하고도 바꾸지 않는 여름 하루’였으나 전통 부채를 널리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참여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나무를 뜻하는 뱀부(Bamboo) 핸드백과의 컬래버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左) 대나무숲에서 김주용대표 右) 캘리그래피, 전통 문양을 넣어 변주한 부채



지난 15년 동안 죽호바람을 찾아온 다양한 고객이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고객은 경상도에서 먼 길을 찾아오신 어르신이다. 선면을 달기 위해 젊은 시절 직접 조각한 부채자루 열두 개를 들고 오셨는데, 워낙 잘 깎은 작품이라 값 대신 손잡이를 하나 받았다. 그 부채자루는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며 살짝 귀띔한다.
우리나라 전통 부채는 크게 두 종류다. 우선 자루 달린 원형 부채인 단선(團扇)은 동그랗다고 해서 ‘방구부채’로도 불린다. 다음으로 접었다 펴는 접선(摺扇)이 있는데, 쥐고 부치기에 ‘쥘 부채’라고 일컫는다. 선자장 대다수가 그중 한 가지를 연구하지만, 김주용 대표는 두 종류의 부채 모두를 두루 살펴보며 실력을 갈고닦으려 한다. 전통 부채가 실생활에서 자주 쓰일 수 있도록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옻칠을 비롯해 조각, 서화 등 전통 부채에 접목해 활용하고 싶은 분야가 많아요. 아울러 작품용 부채를 만들어 전시회를 하거나, 옛 기록 속 부채를 복원해 보고픈 바람도 있습니다.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목표는 바로 전통 부채의 생활화입니다. 그 꿈이 이뤄지는 날까지 지속해서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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