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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4 2개 부문 혁신상 솔리브벤처스 서주호 대표

2024-04-17

비즈니스 피플조명


정책주간지 K-공감
CES 2024 2개 부문 혁신상 솔리브벤처스 서주호 대표
'귤껍질서 탄생한 발달장애아용 놀잇감 혁신은 새로운 것? “완성도 높이는 것도 혁신”'

    “어릴 때는 귤껍질 까는 것 자체가 놀이가 될 수 있다. 껍질로 토끼 모양을 만들면서 놀지 않나. 그걸 생각하며 만들었다.”
    서주호(25) 솔리브벤처스 대표의 손에는 발달장애아를 위한 교육용 놀잇감 ‘필앤플레이(Peal & Play)’가 들려 있었다. 솔리브벤처스(SOLIVE VENTURES)는 서울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이다. 서 대표를 비롯해 총 6명이 함께하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도구 필앤플레이와 애플리케이션(앱) ‘키우미’ 등을 개발했다.
    솔리브벤처스는 필앤플레이로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4’에서 두 부문에 걸쳐 혁신상을 수상했다. 디지털헬스케어와 접근성 부문이다. 필앤플레이는 공처럼 생겼다. 표면을 주황색의 얇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둘러싸고 있다. 플라스틱 조각들을 떼어내는 과정이 마치 귤껍질을 까는 것 같다. 껍질을 떼어낸 공 표면에선 불빛이 반짝거리고 소리가 나온다. 불빛이 나오는 곳에 껍질 조각을 붙이면 불빛이 꺼지는 식이다.
    솔리브벤처스에 자문을 해준 박혜준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필앤플레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발달장애아를 위한 놀잇감은 기존에도 있지만 필앤플레이처럼 진동이나 불빛 등 다양한 차원의 감각을 여러 수준으로 느끼게 하면서 게임도 할 수 있는 놀잇감은 거의 없다.”
    서울대 해동학술문화관에서 서 대표를 만났다. 무엇보다 ‘CES 2024’에서 아동용 장난감에 혁신상을 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발달장애아를 위한 놀잇감을 개발한 계기가 있나?
    축구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한 친구 두 명과 함께 2022년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여는 경진대회 ‘창의설계축전’에 참여했다. 공학을 이용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취지의 대회다. 원형 교구를 생각해내고 이걸 어떤 이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당시 방영 중이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발달장애,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겪고 있는 아동에게 주목하게 됐다.

 
서주호 솔리브벤처스 대표가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놀잇감 ‘필앤플레이’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어떤 면에 주목했나?
     ‘상동 행동’에 주목했다. 자폐아는 흔히 반복적으로 박수를 친다거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식의 행동을 한다. 이걸 ‘상동 행동’이라 한다. 어른도 긴장하면 다리를 떨지 않나. 자폐아는 상동 행동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아닌 자신을 자극하는 쪽으로 집중을 한다.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서 이 아이들에게 자극을 채워주자고 생각했다. 
개발 과정에서 장애아를 많이 만났을 것 같다.
    직접 아이들을 만나 오랫동안 관찰하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들을 양육하는 어머니들을 만나 대화도 나눴다. 처음엔 제품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 만났는데 육아의 고충을 많이 쏟아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분들이 마지막엔 똑같은 말을 했다. “자폐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창의설계축전에서 필앤플레이로 상을 탄 건가?
    2등을 했다. 부상(副賞)으로 2023년 1월에 처음으로 CES를 견학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간 김에 발달장애 전문가인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조너선 타벅스(Jonathan Tarbox) 교수를 만나러 갔다. 타벅스 교수가 필앤플레이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면서 조언을 해줬다. 상동 행동에 초점을 두고 필앤플레이를 개발했는데 타벅스 교수는 시선을 바꾸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줬다. 
시선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상동 행동은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정상 행동과 비정상 행동이라는 식으로 구분해 상동 행동을 감소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상동 행동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교육적 놀이를 할 수 있는 놀잇감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는 조언이었다. 상동 행동을 통해 자폐성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상동 행동을 부정적으로 규정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걸 듣고 미국인들이 발달장애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알 수 있게 됐다. 
자폐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장애를 따로 구분 짓지 않고 장애가 있든 없든 다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디자인’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솔리브벤처스의 미션도 ‘재미, 성장, 그리고 기술을 통해 아이들의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창조’하는 것으로 정했다. 
비장애 아동들도 갖고 놀 수 있나?
    나도 가지고 논다. 게임 기능이 세 가지 내장돼 있다. 불빛이 여기저기서 뜨면 빨리 조합해 껍질 조각을 붙이는 식이다. 초등학생들이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다. 창의설계축전에서 상을 탄 후에도 이게 정말 괜찮은 제품인지 검증받으려 시도했다. 다행히 대회에 나갈 때마다 좋은 반응이었다. 대략 14개 교내외 대회에서 상을 탔다. 서울대기술지주와 임팩트스퀘어에서 투자도 받았다. 
제품을 개발하고 실제 시제품을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제품 기획과 설계, 디자인은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틀을 만드는 ‘금형’ 작업은 처음이었다. 금형에 대해 기계공학과에서 배우긴 하는데 이게 개념을 배우는 정도지 실제와는 거리가 있더라. 금형을 위해 인천, 경기 부천시를 훑고 다녔다. “이 모양으로 대량 사출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서 금형 업체 사장님들에게 배우면서 만들었다. CES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기 직전까지 밤을 새우며 일했다. 사실 제품 개발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키우미’ 앱 개발부터 먼저 하려고 했다. 필앤플레이는 운영 자금이 좀 더 생기면 하려고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동시에 진행하게 된 것이다. 
키우미는 어떤 앱인가?
    발달지연 가능성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집에서도 손쉽게 아이의 발달 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앱이다. 예를 들면 앱을 통해 “셔츠를 말아 올려서 아이에게 줬을 때 스스로 머리를 끼워넣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세요”라고 알려주면 부모가 따라서 확인하는 식이다. 소근육, 대근육, 자조, 인지, 사회성, 언어 등 6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부모가 월령별 자녀 발달 상황을 기록하면 맞춤형 분석을 해준다. 발달 기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담·치료사로부터 비대면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모든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나?
    현재는 12개월부터 만 네 살까지 아동이 대상이다. 앞으로 커리큘럼을 계속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앱을 내려받으면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전문 상담사와의 상담은 유료다. 영유아 공식발달지표(언어·의사소통, 사회·정서 등)에 맞는 롤플레이 영상 400여 개가 준비돼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춰 쉽게 교육하고 따라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안에 1000여 곳의 어린이집과 계약하는 것이 단기 목표다.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브랜드가 형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올해 CES 2024에 참가해 혁신상을 수상했다. 어떤 경험을 했나?
    언론에 제품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필앤플레이를) 사고 싶은데 가격이 어떻게 되냐’, ‘언제 출시되냐’는 것이었다. 또 ‘모든 아동에게 좋을 것 같은데 확장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현지 언론에도 기사가 많이 나갔다. CES 측은 필앤플레이가 장난감이면서도 발달장애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귤껍질을 까는 듯한 형태에 예술적 요소가 있다고 높이 평가한 듯하다.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였나?
    CES에는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많이 참가하는데 우리 제품은 사실 아동용 놀잇감 아닌가. 그런데 예상 외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보다 외국 투자사의 반응이 더 좋았다. 현재 미국에서 장난감 유통을 하는 업체들과 협의 중이다. 
CES에 참가해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다.
    단순히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게 아니라 디테일의 완성도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새로운 기술만이 혁신이 아니다. 같은 기술을 쓰더라도 더 완성도 있게 만드는 것도 혁신이다. 예를 들어 의자 하나를 만들더라도 안전성, 디자인 등을 세세하게 개선하는 것이 혁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