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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배경

2024-04-17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배경
'글.박종희'

    단발머리를 한 중년 여자가 모니터 안에서 웃고 있다. 작년 휴가 때 제주도 어느 카페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바닷바람에 살랑이는 핑크뮬리와 리폼한 낡은 탁자 위에 놓인 투박한 찻잔이 조화를 이루는 고풍스러운 카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저 초라한 인물 사진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물고기 모양의 풍경과 핑크뮬리가 사진 속의 나를 돋보이게 한다.





    사진을 볼 때마다 역시 배경이 좋아야 인물이 살아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사진 속 배경처럼 우리네 삶도 그렇다. 사람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뒤에서 받쳐주는 기둥이 없으면 출세하기 어렵다는 것을 철이 들면서 알았다. 
    어릴 때 어머니는 큰오빠가 크게 출세하지 못하는 것이 집안에 배경이 없어서 그렇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 말씀 끝에는 꼭 돌아가신 할머니 때문이라고 해서 고부간의 갈등을 짐작하게 했다. 
    아버지는 2남 3녀인 집안에 장남이었다. 그러나 열두 살 되던 해에 손이 귀한 큰댁에 양자로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할머니는 아버지가 양자로 가는 것을 꽤 못마땅해하셨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큰할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시어 아버지는 말만 큰댁아들이지 실제로는 양쪽 집 맏이 노릇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양자로 가면서 집안 재산을 모두 물려받은 작은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가 안 계시면 할머니를 잘 모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재산을 탕진하고 할머니한테 얹혀살았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늘 할머니한테 기대고 살더니 끝내 아버지 인생마저 흔들어 놓았다. 
    할머니는 전방에서 근무하던 아버지한테 퇴직하고 내려오라고 사흘 도래로 전갈해 아버지를 불안하게 했다. 작은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긴 할머니가 아버지의 퇴직금이라도 받아 작은아들을 살려보려고 했던 것이다. 할머니의 하소연에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결국 군에서 제대를 했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사십 대 초반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퇴직금을 작은아버지의 장사 밑천으로 내주었다. 그 돈으로 몇 년간은 잘 사는 것 같던 작은아버지는 퇴직금을 거덜 내고 또 할머니한테 손을 내밀었다. 군에서 전역한 아버지는 다행히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근무했는데 할머니는 또 아버지께 퇴직할 것을 강요했다.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말렸지만, 할머니의 생게망게한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는 할머니가 무서워 얼굴도 못 들고 사실 때였다.
    그 후 할머니와 어머니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남겨진 조카들까지 떠맡게 된 어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부대에서 군인가족으로 아쉬운 것 없이 살던 어머니는 할머니가 야속하고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편을 들곤 했는데 내가 결혼해서 살아보니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됐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데 직장마저 못 다니게 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힘드셨을까. 사실 할머니만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군에서 정년을 마치셨을 테고, 그랬으면 큰오빠도 고생 안 하고 오빠가 하고 싶은 일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것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효자 아버지 때문에 자식들이 고생했다고 가슴에 옹이가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아까운 직장을 두 번이나 내놓은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누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면 죽는 줄로 아셨다. 
    큰오빠는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35년을 근무했다. 큰오빠가 한 직장에 그렇게 오래 근무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어머니의 힘이다. 오빠라고 왜 위기가 없었겠는가. 그때마다 어머니는 할머니 때문에 고생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오빠의 직장을 지켜냈다. 
    큰오빠는 직장에서 성실함을 인정받아 승진도 빨랐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박사학위까지 마쳐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가정에서도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였다.
    육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어깨가 무거웠던 큰오빠 주변에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경치가 좋은 곳에 사람이 몰리듯이 성공한 사람 옆에도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큰오빠한테 취직을 부탁하는 후배들도 있어 가끔은 나도 어깨가 으쓱해질 때가 있었다. 바로 친정오빠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하나, 배경이라고 늘 화려하고 평화롭기만 하겠는가. 서 있는 자체만으로 빛이 나는 배경도 외로움을 타고 누군가의 배경이 되려면 걸맞은 희생도 따른다. 오빠의 자리도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35년이라는 세월을 누구보다도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았다. 
    육 남매의 배경이었던 친정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동생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큰오빠를 보면서 생각한다. 살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배경이 되어준 적이 있었던가. 나로 하여금 빛이 나는 사람이 있었던가. 





    회억 하니, 나는 평생을 화초처럼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온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의 품 안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고. 결혼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는 남편의 그늘 아래서 수동적으로 살았지 싶다. 맞벌이를 하면서 경제적인 부담은 나누었지만, 은연중에 가장은 당연히 남편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내게 가족이라는 배경이 되어주느라 외로움을 타던 남편도 어느새 육십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가장이라고 언제나 앞서 걷던 남편한테 이제는 내가 남편의 앞에서 길을 내주어야겠다. 가장의 무게 때문에 늘 처져있던 남편의 어깨가 올라갈 수 있도록 내가 남편의 풍경이 되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