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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장보고과학기지 10주년, 진동민 1차 월동대장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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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장보고과학기지 10주년, 진동민 1차 월동대장
'기후위기 최전선에서 인류의 미래 준비 K-루트 개척 남극 내륙연구 문 열었다'

    2024년 3월 1일 남극의 기온은 영하 35℃였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15℃를 밑도는 까닭에 이 광활한 땅에는 오직 흰색 눈과 푸른색 바다밖에 없다. 낮과 밤의 경계도 다르다.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극야와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1년에 6개월 정도 지속된다.
    이 동토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곳이 지구기후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극지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곳의 눈과 얼음이 태양에너지의 70%를 반사하는데 빙하가 녹으면 지표로 흡수되는 태양에너지의 양이 늘어나고 해수의 순환에 영향을 미쳐 이상기후가 생긴다. 세계 여러 나라가 앞다퉈 극지에 연구소를 여는 이유기도 하다. 한국은 1978년 남극해 크릴새우를 조사하면서 남극 진출을 시작했다. 1988년 남극 서남쪽에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를 세웠고 2014년 2월 두 번째 기지인 남극장보고과학기지(이하 장보고기지)를 설립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10번째로 남극에 두 개 이상의 상주 기지를 운영하는 나라다.
    장보고기지는 세종기지와 달리 남극 중심부에 가까워 세종기지에서 하지 못했던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동안 장보고기지가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남극의 빙붕(남극 대륙 빙하와 이어진 얼음덩어리)이 붕괴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고 남극 운석 탐사로 지구역사 복원에 힘을 보탰다. 2024년은 장보고기지가 설립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장보고기지 태동부터 함께한 1차 월동대 진동민 대장은 “장보고기지는 전지구적인 문제에 기여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고 말했다. 올해 초 한국으로 돌아온 진 대장을 인천 연수구에 있는 극지연구소에서 만났다. 

 
2024년 3월 1일 남극의 기온은 영하 35℃였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15℃를 밑도는 까닭에 이 광활한 땅에는 오직 흰색 눈과 푸른색 바다밖에 없다. 
낮과 밤의 경계도 다르다.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극야와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1년에 6개월 정도 지속된다.(사진. C영상미디어)


 
장보고기지 10주년을 맞은 소회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19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한 후 본격적인 남극 연구를 위해 1988년 2월 남극에 세종기지를 세웠다. 먼저 세워진 세종기지는 생태계 연구에는 적합했지만 운석이나 빙붕 등을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연구자들 사이에서 제2 기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남극은 남극조약으로 관리되므로 당사국의 지지를 받아야 했고 환경단체도 설득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장보고기지가 문을 열었을 때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세종기지는 서남극 군도에, 장보고기지는 동남극 테라노바만 연안에 있다. 두 기지는 어떻게 다른가?
    남극의 크기는 미국과 멕시코를 합친 정도다.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사이의 거리는 4000㎞ 정도 된다. 시차도 있다. 세종기지는 우리나라보다 12시간 늦고 장보고기지는 4시간 빠르다. 또 장보고기지의 기온은 세종기지보다 10~20℃ 정도 낮다. 세종기지에서는 기후와 해양, 대기, 생물 등을 주로 연구하고 남극특별보호구역인 펭귄마을을 관리하고 있다. 장보고기지에서는 세종기지에서 하기 어렵던 빙하와 우주, 운석 등을 연구하고 있다. 남극 내륙연구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육상 진출로 K-루트도 2215㎞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극지활동을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건조되고 장보고기지가 건설되면서 극지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남극기지에서 생활은 어떤가?
    하루 일과는 국내에서와 비슷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고 9시부터 근무를 시작한다. 월동대는 18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대장과 총무, 그리고 연구반, 유지반, 총무반으로 구성된다. 유지반은 기지의 설비와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총무반은 요리, 통신, 의료를 담당한다. 컨테이너 안에서 채소도 키운다. 잎채소뿐 아니라 고추, 토마토, 오이, 애호박 등 열매채소도 자란다. 전에는 냉동가공된 식품을 먹었는데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기술이 보급되면서 남극에서도 채소를 기를 수 있게 됐다. 대원들은 돌아가면서 당직 근무를 한다. 12월부터 2월까지가 남극의 여름이기 때문에 시료 채취를 하고 각종 관측장비를 점검한다. 4월부터 8월까지는 태양이 뜨지 않는 극야다. 이때는 대부분 실내에서만 생활한다. 해가 뜨는 9월이 되면 다음 연구를 준비한다. 
남극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이라 불린다. 현장에서 실감하는 기후위기는 어느 정도인가?
    처음 남극에 간 게 1999년이었다. 세종기지 앞이 마리안 소만인데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빙하 경계선이 1.9㎞나 후퇴했다. 육안으로도 ‘왜 땅이 이렇게 멀어졌지?’ 하고 느낄 정도다. 2023년에는 장보고기지 앞바다가 얼지 않아서 활주로를 만들 수 없었다. 장보고기지가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마다 남극을 둘러싼 바다얼음이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 탄소배출량도 늘어난다. 남극해는 지구탄소의 20%를 흡수해 지구탄소순환의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빙하가 녹으면서 염분이 낮아지면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에 문제가 생겨 탄소흡수량이 적어진다. 탄소는 다시 공기 중에 배출되고 이렇게 늘어난 대기 중 탄소는 다시 지구온난화를 가속해 빙하를 녹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극지의 동식물을 연구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극지 해양생태계가 포함한 생물자원의 양은 전 세계 수산물의 연간생산량을 넘는다. 특히 극한 환경에 적응한 극지 생물에서 추출한 유전자원은 의학, 산업, 식품,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펭귄연구는 세종기지에서만 하나?
    장보고기지에서 약 30㎞ 떨어진 곳에 인익스프레시블섬이 있다. 장보고기지는 이곳의 펭귄 27마리를 추적 관찰하고 있다. 그중 5마리가 난센 빙붕이 붕괴되면서 노출된 바다로 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장보고기지는 인익스프레시블섬의 남극특별보호구역 지정에 앞장섰고 이 섬에 사는 아델리펭귄의 취식지 변화도 최초로 확인했다. 메로라고 불리는 남극이빨고기의 연구도 수행해 유전자 분석을 했다.
일반인은 남극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
    남극에 가는 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항공기를 타고 가거나 아라온호를 타고 가는 거다. 장보고기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12시간 정도 걸리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주 관문으로 한다. 거기에서 다시 항공기를 타고 6~7시간을 비행하면 기지 앞 해빙활주로에 내릴 수 있다. 총 20시간 정도 걸린다. 아라온호를 타면 남극까지 8~10일 정도 걸린다. 매년 전 세계에서 3만 4000명이 넘는 사람이 남극에 관광을 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100명 정도 온다. 나는 이들이 ‘남극의 대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극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남극의 중요성을 더 체감할 수 있어서다. 남극기지에서는 국적이 큰 의미가 없다. 세계인으로 서로 동료애를 느낀다.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바로 남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쇄빙연구선, 과학기지 등 연구를 위한 인프라가 중요하다. 
장보고기지는 세계 최초로 소각기가 없는 기지다. 환경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립 당시부터 건물의 배치와 설계에 주변 지형을 고려했다. 열병합발전시스템으로 폐열을 최대한 활용했다. 기지에 태양열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오수도 재처리해 재활용한다. 현장에 나가는 대원들은 당연히 대소변을 포함한 모든 폐기물을 기지로 가져와 처리한다. 기지의 보급품을 주고받을 때도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극이 청정지역이었다는 걸 한국에 오면 실감한다. 남극에서는 아무리 영하라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 것 같다. 한국에 온 뒤로 감기가 낫질 않아 고생하고 있다.
    남극조약(Antarctic Treaty, 1959)에 따르면 남극은 남위 60도 이남의 모든 섬과 대륙, 바다를 일컫는다. 남극은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지구인의 땅이다. 최근 지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 ‘스웨이츠 빙하’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스웨이츠 빙하는 남극대륙 서부에 있는 거대한 빙상이 바다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코르크 마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스웨이츠 빙하가 돌발 붕괴해 안쪽의 서남극 빙상이 흘러나오면 해수면 상승이 급진전돼 전 세계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스웨이츠 빙하를 ‘운명의 날 빙하(Doomsday Glacier)’라고도 부른다. 오늘도 1만 2730㎞ 너머(서울 기준) 남극에서는 18명의 한국 대원이 이 ‘운명의 날’을 늦추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