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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의 답을 찾아 숲으로 가자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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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의 답을 찾아 숲으로 가자
'충북의 숲과 나무-음성Ⅱ'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에 숲처럼 좋은 곳이 있을까?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동화처럼 반기는 감곡면 사곡리 원통산 숲길을 걸으며 사랑과 화합이 가득한 새해를 생각했다. 그 시작은 서로 뿌리를 부둥켜안은 채 500년 세월 동안 곁을 나누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였다. 음성군 곳곳에 있는 오래된 나무와 동화 같은 숲에서 보낸 하루가 추억처럼 따듯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연리근공원의 사랑나무


사랑나무? 부자나무?
    서로 뿌리를 부둥켜안은 채 곁을 나누며 500년 세월을 살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를 사람들은 부부나무, 백년해로나무, 사랑나무라고 부른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1125, 연리근공원에 가면 그 나무를 볼 수 있다. 
    공원 한쪽 둔덕에 뿌리 내린 두 그루 나무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뿌리가 하나로 엮였다. 땅위로 드러난 하나 된 뿌리, 연리근. 사람들은 사랑의 상징으로 연리근이란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 나무 앞에서 연리근이라는 말은 가볍다. 거대한 뿌리가 하나 된 오랜 세월, 그리고 앞으로 또 그렇게 살아갈 세월까지, 저렇게 굳은 사랑의 맹세가 어디 있겠는가. 옛 사람들은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이 나무 앞에 모여 제를 올리며 마음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한다. 사랑도 화합도 다 사람의 일이니, 두 그루 나무 하나 된 뿌리, 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숲이다. 
    연리근공원이 있는 두성리의 옛 이름이 맹골이다. 옛날에 유교를 숭상하는 마을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맹골은 지금의 두성리와 본성리까지 아우른 마을이었다. 두성리를 윗맹골, 본성리를 본맹골과 중맹골이라고 했다. 본성리 맹골에 느티나무를 심은 옛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에 나무가 별로 없어 마을 밖에서 마을이 훤하게 보였는데, 한 풍수가가 그 형국을 보고 사람들에게 나무를 심으라고 했고, 그때 느티나무 여러 그루를 심어 마을에 복이 고이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본성리에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두성리도 당시에 맹골이었음으로 연리근공원의 500년 느티나무 두 그루 또한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던 나무는 아니었을까?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연리근공원의 사랑나무.


새해 무병장수를 기원하던 500년 개비자나무
    새해 무병장수를 기원하던 500년 개비자나무를 보러 충북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로 가는 길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한 그루는 대소면 성본리 최성미마을에 있는 360년 된 느티나무였다. 이 나무는 제국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던 조선 말, 미국이 개항을 요구하며 조선을 침략했을 때 강화도에서 미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 어재순 장군의 묘 부근에 있었다. 나무와 묘는 직선으로 800m 정도 떨어졌다. 또 한 그루는 고려 말 대학자였던 권근이 살았던 마을에 남아 있는 200년 된 느티나무였다.
    역사와 어우러진 고목이 있는 풍경은 오래된 미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했다. 그렇게 도착한 생극면 팔성리는 조선시대 학자이자 관료였던 김세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500년 개비자 나무


    김세필은 대사헌과 이조참판 등을 지낸 인물이다. 김세필이 생극면 팔성리에 터를 잡으면서 후학을 양성할 건물을 지었는데, 당시 충주목사 박상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박상이 말을 묶어 놓았던 마을을 말마리라고 불렀다. 그 당시 박상이 말을 묶어놓았던 자리를 알리는 비석이 팔성리에 있다.
    마을에 있는 지천서원은 김세필의 뜻을 기려 조선시대 영조임금 때 창건한 서원이다. 조선중기 개혁정치를 주도했던 조광조를 사사한 임금의 뜻에 반대했다가 유배를 당한 그의 기개를 닮은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서있다. 
    김세필은 팔성리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의 동서남북 네 곳과 중앙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중 남쪽에 심은 나무라고 알려진 회화나무 한 그루가 지금도 남아있다. 
    팔성리에는 김세필이 심었다고 알려진, 500년 넘은 개비자나무도 한 그루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집 문창살에 꽂아두면 1년 내내 병에 걸리지 않고 집안이 평온해진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진다.    
낙엽송과 자작나무 숲을 걸으며 새해를 생각하다
     감곡면 상평리 안동김씨문온공파제실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다 차를 멈춘 곳은 마을숲 앞이었다. 길 옆은 계곡이었고 계곡 위를 마을숲이 감싸고 있었다. 마을숲에는 보호수로 지정 된 300년과 25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보호수를 알리는 푯돌이 없어 어느 나무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마을숲. 사진 왼쪽 아래 '모정'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계곡 한쪽에 정자가 보였다. 정자 이름이 그리워하다, 뒤를 따르다, 바라다 등의 뜻이 있는 ‘모정(慕亭)’이다. 감곡면 자료에 따르면 정자의 원래 이름은 풀이름 모 자를 쓰는 ‘모정’이었다. 당시에 풀을 엮어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자를 고쳐지으며 이름을 띳집 모(茅)자로 바꿨다고 하는데, 그 이후 이름이 또 바뀐 모양이다. 무엇을 그리워하고, 누구의 뒤를 따르려는 뜻이었을까? 
    마을숲 한쪽에 수도꼭지가 보였다. 마을숲 밖 산기슭에 옹달샘이 있었고, 그 샘부터 관을 연결한 것이라는 이야기 속 그 수도꼭지 같았다. 숲을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시멘트로 턱을 높이 올린 우물이 있다. 예로부터 우물 옆에 향나무를 심었던 관습처럼 이 우물 옆에도 향나무가 있었다. 옛날에는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서 사용했었는데, 직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 마을숲 정자 ‘모정’에 앉아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물을 씻고 빨래를 하던 시절 생각을 했다. 1970년대까지도 마을에 그런 공동우물이 있었다. 오래 전 눈 내리던 섣달 어느 날 마을 공동우물에서 두레박에 물 길어 빨래하시던 어머니의 벌겋게 언 손이 떠올랐다. 저 아래 도심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릴 때였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마을숲. 사진 왼쪽 아래 '모정'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이제는 추억이 된, 그래서 따듯한 옛일을 생각하며 접어든 숲길은 감곡면 사곡리 원통산 자작나무숲길이었다. 숲에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가득했다. 산비탈에 촘촘하게 들어선 하얀 줄기와 가지, 자작나무.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숲은 동화 속 세상이었다. 그 숲을 노랗게 물들이는 건 낙엽송 단풍이었다.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만드는 숲의 분위기가 새해를 생각하게 했다. 숲길을 걸으며 새해에는 사랑과 화합, 그리고 만복이 가득하길 기원했다. 숲은 그 모든 것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