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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썩고 싶지 않다면 양말을 갈아 신어라

2022-01-07

라이프가이드 건강헬스


질병으로 보는 세상
발이 썩고 싶지 않다면 양말을 갈아 신어라
'인체의 기초이자 주춧돌 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가장 초보적인 계기라면 역시 ‘직립 보행’을 들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지구상에서 인류와 비슷한 형태로 직립 보행, 즉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두 발로 걷는 생물은 펭귄 정도입니다. 곰이 두 발로 일어서긴 하지만 일시적이고 캥거루는 보행이라기보다는 콩콩 뛰어다니는 식이죠.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들도 4족보행이 일반적입니다. 인류는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도구를 정밀히 다룰 수 있는 손을 얻게 됐고, 인류의 역사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경로를 밟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손’의 발견은 보행과 이동의 책임을 오롯이 짊어진 ‘발’ 덕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발은 인간의 손만큼이나 특별한 존재죠. 인류의 발바닥은 유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아치(arch)형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평발’이 아닌 거죠. 이 세로로 된 아치 외에도 인간의 발등을 가로지르는 가로 아치까지 있어서 인간의 발은 걷거나 달릴 때 발 앞꿈치로 땅을 밀 때 발생하는 자기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하중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문명을 개척한 건 손이지만 그를 가능하도록 지탱해 준 것은 발이었던 겁니다. 



    발은 그야말로 인체의 기초이자 주춧돌이라 할 만합니다. 26개의 뼈, 32개의 근육과 힘줄, 107개의 인대가 얽혀 있는 발에는 걸을 때마다 체중의 1.5배에 해당하는 하중이 가해지며, 심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나 심장에서 받은 혈액을 다시 뿜어 올리는 ‘제2의 심장’이기도 합니다. 인체를 깊이 연구했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발을 두고 “인간의 발은 생체공학상 최고의 작품이고, 예술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경탄해 마지않은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요.
    은나라 시대 갑골문에 등장하는 족(足)의 원형은 ‘다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윗부분은 둥근 꼴이 변한 것으로 무릎 한가운데 있는 접시 같은 뼈인 슬개골(膝蓋骨)을, 아랫부분은 발(止·지, 趾의 원래 글자)을 상징해, ‘설문해자’의 해석처럼 사람 몸의 아래에 있는 무릎 아래의 다리를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경성대학교 교수 하영삼, 동아일보 2005.9.26.) 이 다리는 몸을 지탱해 주는 기초였기에 ‘充足’(충족)이나 滿足(만족)처럼 ‘충실하다’는 뜻을 나왔고 거기서 다시 ‘족하다’는 의미가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발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속어로 뭔가 하잘것없는 것을 비유할 때 “발바닥의 때만도 못한”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발바닥이란 그만큼 더럽고, 볼품없고, 요긴하지 않은 곳이란 생각의 반영 아니겠습니까. 아득한 옛날 구약과 신약 성서의 시대 이스라엘에서 나그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은 큰 호의의 실천이었습니다. 거친 사막과 광야를 거쳐 온 손님에게 발을 씻을 수 있는 따뜻한 물이라면 생각만 해도 푸근해지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누군가 정성스레 발을 씻겨 준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죠. 그런데 그때 그 사람들에게도 발은 더러운 것이었고 나그네의 발을 씻어 주는 건 주로 종이나 어린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겠다고 나섰을 때 베드로가 완강히 거부한 이유입니다. “선생님이 어찌 제 발을 씻는단 말입니까.”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는 물론 인간 사이의 높낮이를 없애고 서로 섬기라는 뜻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발 얘기를 하다 보니 가장 더럽다 여겨지고 남에게 내보이기 싫은 곳으로 지칭되는 발을 서로 아껴 주는 것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라는 얘기로 들리기도 하는군요.
    그렇게 발이 천대받게 된 이유는 인간이 이동하기 위해서 상시적으로 지면과 닿아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발을 신게 되고, 발은 항상 신발 속에 싸여 있기에 땀과 곰팡이, 세균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불쾌한 냄새와 질병을 발생시키기 일쑤였으니까요. 그중 매우 곤혹스러운 병 중 하나가 무좀이겠죠. 특히 통풍이 안되는 가죽 구두와 신발을 신기 시작한 이후 무좀은 수많은 이들의 고질병이 됐습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50%가 무좀을 경험했다고 하니 ‘국민병’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군대에서 작전을 중단시킨 이유
    심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에 발이 감당해야 했던 질병 가운데에는 동상(凍傷)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추운 날씨나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혈관이 지속적으로 수축함으로써 신체 말단부에 공급되는 혈류가 감소하여 조직이 손상돼 발생하는 질병이 동상이니까요.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겨울이 있는 지역으로 이주한 이래, 동상 역시 인류를 끔찍하게도 따라다닌 질병이었습니다. 추위에 쉽게 노출이 되고 부피에 비해 피부면적이 넓은 손, 발, 귀, 코 등에 발병했지만 발은 특히 그 피해가 치명적이었습니다. 발은 걸을 때 땀이 날 수밖에 없고 그 땀으로 하여 신발 안의 습기가 얼어붙고 녹기를 반복하다 보면 동상에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상에 걸리면 피부가 괴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괴사 부위가 커져 패혈증 등 더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 있으므로 괴사 부위를 절단하는 고통을 무릅써야 하는 무서운 병이었지요. 겨울철에 이동해야 했던 사람들, 상인들, 유민(流民)들, 특히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동상은 천형(天刑)과도 같았습니다. 
    흉노를 공격하기 위해 몽골 고원에 들어갔던 한나라 병사들,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했으나 추위가 닥쳐오자 싸움은커녕 무릎을 감싸 쥐고 엉엉 울었다는 당나라 군인들, 당나라의 강요를 못이겨 발해의 남쪽을 공격했으나 큰 눈을 만나 돌아오고 말았다는 신라 원정군 모두는 끔찍한 동상을 경험하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을 겁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동참한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60만 대군은 러시아의 동장군(冬將軍)의 위력 속에 동상의 공포를 실감했을 것이며, 그 두려움은 러시아 원정 참전 군인의 아들인 안데르센에 의해 동화 <눈의 여왕>으로 영원히 전해지게 됐습니다. 소련과 핀란드 간에 벌어진 ‘겨울 전쟁’이나 6.25때 미국 해병대와 중국군 간에 벌어진 장진호 전투를 비롯, 수많은 겨울철 전쟁터에서 동상은 수많은 군인들을 쓰러뜨렸고,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발을 잃으면 움직일 수 없었고, 그건 곧 죽음이었으니까요. 


발이 썩고 싶지 않다면 ‘양말을 갈아 신어라’
    그런데 춥지 않은 겨울철에도 전쟁터의 병사들의 발을 괴롭힌 병이 있습니다. ‘참호족’(塹壕足, Trench Foot)이었습니다. 발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축축하고, 비위생적이며 차가운 상태 (섭씨 15도 이하)에 노출됐을 때 걸리는 병입니다. 신발을 자유롭게 벗을 수 있고 습기를 제거할 수 있는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병입니다. 하지만 주야로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하고, 항상 눅눅한 상태에서 발 관리가 될 수 없는 환경, 즉 제 1차 세계대전의 참호 같은 곳에서 참호족은 대규모로 발병했습니다.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해도, 차가운 물구덩이 참호 속에서 먹고 자며 군화를 벗지 못했던 병사들의 발은 동상에 걸린 것처럼 피부가 괴사하고 썩어들어갔습니다. 발을 잘 말리기만 해도 예방할 수 있었던 발병, 참호족 때문에 수만 명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1차대전 중 영국군의 참호족 환자만 7만 4천 명이 넘었으니 그 참상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 참호족의 고통은 꼭 한랭한 지역에서만 국한한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포레스트에게 소대장은 이런 충고를 합니다. “메콩강 강물에 발이 썩어 떨어지는 게 싫으면 양말을 자주 갈아 신어라.” 양말을 자주 갈아 신는 것은 참호족의 으뜸가는 예방법이었습니다. 미국 해병대 사이에는 “메콩강물은 발을 먹어치운다.”는 속설이 돌아다녔다고 하니 열대의 베트남 전쟁에서도 참호족은 여지없이 병사들을 괴롭혔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인체의 어느 구석인들 소중하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 또 병이 들었을 때 고통이 덜한 부분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유독 신경을 덜 쓰는 곳이 발이 아닌가 합니다. 당뇨병에 걸린 이들은 대부분 발에 작은 상처가 생겼을 때 이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방치했다가 엄청난 고통을 겪는 것,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하이힐 같은 신발을 신었다가 발 모양까지 변형되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그 일례일 뿐이죠. 발은 인류를 인류답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이지만, 자신의 주인이 그 은혜를 잊고 자신을 돌보지 않거나 혹독한 상황에 내몰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되갚음을 해 왔습니다. 그 고통은 컸습니다. 오죽하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우리 조상들이 노래해 왔겠습니까.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뒤에는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발 이곳저곳을 매만져 주면서 “오늘 하루 고생했다.” 하며 발을 깨끗이 씻고 말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발과 건강한 몸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