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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맑고 깊은 오지의 계곡

2017-09-07

라이프가이드 여행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맑고 깊은 오지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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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가리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1990년대 중반이다. 물맛 좋다는 인제 방태산 방동약수를 찾았다가 산으로 이어진 길이 궁금해 차를 몰았다. 산길은 SUV도 설설 길만큼 험했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싶은 호기심이 산을 넘어 계곡을 따라 가게 했다. 그렇게 20분쯤 갔을까. 홀연히 아담한 학교가 나왔다. 방동초등교 조경분교였다. 오래 전에 폐교된 곳에 화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때 판자로 지은 그 분교의 아담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적막강산의 깊은 오지에 오롯이 있는 폐교라니…. 게다가 계곡물은 어찌나 맑았던지, 그 물을 손으로 움키어 마시기도 했다. 그날 이 계곡은 나 혼자만 아는 비밀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15년 후,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오지의 대명사였던 이곳이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된 것이다.





숨어살기 좋은 삼둔오갈의 땅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 경계에 자리한 방태산에는 삼둔오갈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은 옛부터 난리를 피해 숨어들던 오지를 일컫는다. 삼둔은 월둔·달둔·살둔 등 숨어 살기 좋은 마을을 가리킨다. 오갈(오가리)은 아침가리·적가리·연가리·명지가리·곁가리 등 방태산 일대의 깊은 계곡을 가리킨다. 아침가리골은 오가리 가운데서도 가장 길고 깊다. 이 골짜기는 아침나절에만 밭을 갈 수 있다 해서 아침가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워낙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곳에 자리해 점심 숟가락 놓기 무섭게 해가 저문다. 아침가리골로 드는 계곡도 험하기 그지없다. 까마득한 협곡에 싸인 계곡이 열 세 번을 굽이진 후에야 아침가리골에 닿는다. 계곡이 너무 험해 방동약수에서 산을 넘어가는 길을 닦아야 했다. 그렇게 들고나는 길이 험하지만 일단 계곡 안으로 들면 의외로 넓다. 마치 입구만 꽁꽁 동여매 놓은 모양이다. 이곳에 한때 20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화전민의 후예들이 이곳에서 밭을 일구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한때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한 두 가구가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


진동산채가에서 물을 건너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시작점은 점봉산 가는 길에 있는 진동산채가다. 이곳에서 아침가리골을 빠져나온 물과 점봉산에서 발원하는 진동계곡이 합류한다.계곡은 처음부터 망설이게 한다. 징검다리가 없어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한다. 대부분 등산화를 벗어 손에 들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계곡을 건넌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건너는 게 정석이다. 그 이유는 계곡 트레킹을 하면서 차츰 알게 된다. 아침가리골의 첫인상은 온순하다. 길은 낙엽송 조림지 사이로 부드럽게 나 있다. 그 길의 끝에 계곡을 막아 만든 보가 있다. 이 보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진짜 아침가리골과 만나는 것이다. 길은 계곡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러나 계곡에서 정확히 10m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정해진 길 없어 계곡을 따라 걸으면 그뿐

    아침가리골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발길 가는 데로 가면 된다. 계곡을 따라 첨벙첨벙 걸어도 되고, 숲 그늘에 숨어서 걸어도 된다. 가끔 나타나는 험한 바위와 소(沼)는 돌아가면 그만이다. 길이 끊긴다 싶으면 계곡 건너에서 길을 찾으면 된다. 중간에 깊은 소가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맘 놓고 건너다닐 수 있는 곳들이다. 계곡은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트인 곳이 없다. 계곡이 휘어지면 하늘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만 착각으로 끝나고 만다. 계곡 끝에 또 장벽처럼 까마득한 협곡이 서 있다. 길은 쉼 없이 계곡을 건너다닌다. 계곡을 건너면서 길을 잃을 때가 많다. 표지기도 많지 않은데다, 그 표지기 또한 정확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트레커들은 현재의 위치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물이 흘러내려오는 곳만 따라 가면 된다. 계곡이 험한 편이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길이 없는 듯하면서 분명히 길이 있는 것, 그게 아침가리골의 매력이다. 계곡 초입에서 1시간쯤 가면 깊은 소(沼)와 마주한다. 뚝발소다. 아침가리골에서 가장 깊은 소다. 계곡 안에 지명이 존재하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이곳도 특별한 이정표가 없다. 다만 계곡에서 보았던 곳 중에서 소가 가장 깊다면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물속에서는 쉬리와 갈겨니가 한가하게 유영을 즐긴다. 꺽지란 놈은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ㄹ’자 행보로 재빠르게 몸을 숨긴다. 뚝발소를 지나서도 계곡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길이 끊겼다는 것은 계곡을 건너간다는 의미. 그러나 징검다리가 제대로 놓인 곳은 없다. 알아서 계곡을 건너야 한다. 이 때문에 등산화가 젖는 것이 싫어 몸을 사리던 트레커들도 결국은 물에 첨벙 뛰어들어 계곡을 건너게 된다. 등산화가 물에 흠뻑 젖는 것이 거슬리지만 물을 건널 때의 시원한 기분은 놓치기 아깝다.




화전민의 고단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귀틀집
    뚝발소에서 1시간쯤 오르면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 협곡이 끝나가는 증거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야생의 느낌이 강하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버들가지와 넝쿨을 헤치며 걷기도 한다. 그러다가 불쑥 시멘트 포장다리가 나타난다. 조경교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분기점이다. 계곡을 따라 걷는 게 좋으면 계속 계곡을 따라간다. 이제 부드러운 흙길을 걷고 싶다면 도로 위로 올라서면 된다. 조경교를 건너면 왼쪽에 첫 번째 농가가 있다. 깊은 산 아래 자리한 전형적인 강원도 산촌집이다. 한때 버려졌던 것을 최근에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조경교에서 조경분교까지는 걷기 좋은흙길이 이어진다. 1km쯤 가면 두 번째 농가가 있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나무를 격자모양으로 어긋 쌓고, 그 사이에 황토를 채운 귀틀집이다. 그러나 귀틀집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왼켠에 자리한 화장실이다. 삼각형 모양의 판자로 지은 이 건물은 자연미의 극치이자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 농가에서 500m쯤 더 가면 조경분교다. 35년 전에 폐교됐지만 건물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폐교는 아침가리골을 찾는 이들의 쉼터다. <1박2일>도 여기서 촬영했다. 부잣집 정원만한 운동장과 등걸이 굵은 전나무, 벌통 몇 개가 전부인 풍경이 쓸쓸하다. 한때 이곳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났을 것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조경분교에서 다리쉼을 하고 나면 이제 돌아갈 일이 남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똑같은 거리의 길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분명히 다르다. 이제부터는 거침없이 계곡물을 따라갈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웃통을 훌쩍 벗고 물놀이도 즐길 것이다. 계곡 트레킹의 진정한 묘미를 즐길 시간이 된 것이다.


   
    아침 가리골은 물이 많이 불면 트레킹을 나서지 않는 게 좋다. 특히, 비가 올 때는 트레킹 금물이다. 아침가리골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아 모자와 긴소매가 필수다. 또 계곡을 수없이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에 등산화와 옷이 젖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침가리골 일부만 보려면 방동리에서 고개를 넘어가는 게 좋다. 단, 길이 험하기 때문에 승용차는 어렵다.


    가는 길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 동홍천IC로 나온다.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를 따라 가다 철정 삼거리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홍천~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상남을 지나 현리에서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방동리 방태산자연휴양림 입구다. 아침가리골 초입은 진동리 방면으로 4km 더 가면 된다. 방동약수~조경분교로 가려면 방동리로 들어선다.

    기타정보
    아침가리골 초입에 있는 진동산채가(033-463-8484)는 산채비빔밥과 산채정식을 잘 한다. 산채 정식은 점봉산을 비롯해 인근에서 나는 산나물과 더덕구이, 황태구이, 계란찜 등 20여가지 반찬이 나온다. 산채가 나는 제철만 맛볼 수 있다. 반면 산채비빔밥은 언제나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