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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그곳’ 감독 ‘이성민’

2023-06-01

문화 문화놀이터


다음 세대 기록인
‘개포동 그곳’ 감독 ‘이성민’
'민간 기록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요소를 고민한다면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의 힘도 견고해 지지 않을까요'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개포동 그곳’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진과 영화 작업을 하는 이성민입니다.
사진과 영상으로 본 개포 주공은 다른 단지에 비해 조경의 규모가 엄청 나던데요.
    그렇죠, 지금은 보기 드문 대단지이니까요. 개포 주공 1단지만 5,040세대입니다. 다른 주공 아파트 3개 단지를 합친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당시 아파트를 조성할 때 식재 현황도를 보면 6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자연 발아된 것까지 합치면 더 많았겠죠. 주민분들이 마당처럼 심으신 과실나무들도 제법 있었고요.

 
‘개포동 그곳’ 감독 ‘이성민’


영상을 보면 주민분들의 동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기록하는 입장에서는 어떠셨나요?
    개포 주공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저 역시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곳을 떠나와서도 언젠가는 허물어질 나의 동네를 ‘한번은 보러 가야지’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강남이라는 지역은 사실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에요. 돌아오고 싶어도 이미 집값이라는 경제적인 걸림돌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어릴 때는 이곳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강남’이라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강남’이 된 곳이거든요. 처음엔 그래서 애틋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가고 싶지 않은 이 동네가 사라진다고 했을 때, 과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지가 궁금해서 기록을 시작했어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기록이었군요. 첫 기록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시적으로 활동한 것은 2017년이지만, 2015년부터 혼자 사진으로 이곳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로 구상하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었죠. 한두 차례 이곳을 오다 보니 제가 어렸을 적에도 계셨던 문구점 사장님, 소아과 선생님이 아직도 그곳에 계시더라고요. 그게 되게 고마웠어요. 그러다 이곳의 모든 것들이 저에게 주는 정서적인 느낌의 정체가 궁금해서 여러 번 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왜 오고 싶을까, 왜 이곳이 편안하다고 느낄까.’ 그러다가 문득 단지 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저층 건물은 이 아파트밖에 없고, 다 고층 빌딩인 걸 발견했어요. 이곳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포위당한듯한 낯선 감각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사실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던 감각이었거든요. 또 사진이라는 것이 그 대상을 계속 보고 또 보게 되는 반복적인 작업을 수반해요. 그러다 보면 익숙한 장소이지만 전혀 새롭게 보일 때가 있어요. 그때 어느 곳이나 늘 나무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죠. 여전히 남아 있는 풍경 속에서 새롭게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게 바로 ‘나무산책’의 시작이었군요.
    맞아요. 제가 나무를 인식하면서 그 사진들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카카오스토리에서 스토리텔러로서 글과 사진을 작업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개포 주공 아파트의 나무 사진을 올리면서 짧은 글을 함께 썼어요. 많은 분이 호응을 해주셔서 지금은 약 1만 8천 명 정도가 함께하고 있어요. 카카오스토리의 특징이 연령대가 높으신 어른들이 많아 당시 개포주공아파트에 사시던 분들이 제가 나무 사진만 올리는데도 이게 몇 동 앞의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시고 그 내용을 댓글에 달아주셨어요. 저보다 그곳을 잘 아는 분들의 이야기를 댓글로 만나볼 수 있었죠. 강남의 아파트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록하는 입장에서는 힘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재건축이 되고 나서 이 사진들을 전시하는 것보다는 그전에 다 같이 이 풍경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주 기간이 딱 1년 남은 시점인 2017년 7월, 아파트단지를 산책하는 ‘개포동 나무산책’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본격적인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죠.
왜 하필 나무였을까요? 
    사람들이 나무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해요. 딱히 기억나는 나무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떠올려보면 인생 대부분의 순간에 나무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유치원을 데려다주던 그 길가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속의 나무, 노을 지던 아파트의 테니스장에서 함께 한 나무 풍경. 그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 이야기가 정말 풍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그것은 당연하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의 발견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이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한 무리의 나무가 베어지면 그 옆 무리의 나무들도 아프다는 것을 재건축의 벌목 현장에서 느꼈어요. 이들이 살아있구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나무가 베어질 때 이들이 더더욱 살아있음을 느껴요. 큰 나무가 베어질 때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와 특유의 진한 냄새가 이들이 생명이었음을 말하는 것 같아요. 이런 생명을 과연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베고 함부로 옮겨오는 것이 당연한가를 생각해 보는 거죠. 우리보다 오래 이 땅에 뿌리박고 있던 그들을.



 
 ‘나무산책’을 마치면서 초반에 말씀하셨던 그 공간이 감독님에게 주는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셨나요?
    아마도 무언가를 돌아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누구나 어른이 되고 제가 지나온 삶을 한번 체크하고 싶은 시기가 있잖아요.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그 감정들을 다시 느끼고 싶은 그런 욕구도 있었을 것 같고요. 저의 예전이 있었던 그 공간에서 단순히 과거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저를 한번 확인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 느꼈던 것은 저의 무언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왜 그렇게 과거의 것에 연연해하며 기록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냐고 하시지만 저는 오히려 이 활동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과정 자체가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가에 대한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저는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민간 기록은 개인의 기록에서 시작해서 사람들이 모이고 이것이 마을의 기록이 되는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기록을 공유하고 축적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이 현재는 없다고 생각돼요. 이런 기록들이 왜 필요하며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 이 기록이 어떤 시스템으로든 잘 엮인다면 확장 가능성은 더욱 풍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민간 기록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여러 요소를 함께 고민한다면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의 힘도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