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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동구나무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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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동구나무
'충북의 숲과 나무-옥천Ⅰ'

    제 멋대로 가지를 뻗어도 둥그렇게 자라는 나무가 있다. 어떤 죄도 다 용서해줄 것 같은 고향, 고향 들녘에 서면 죄가 없어도 뉘우치고 싶은 마음이 인다. 오래된 나무는 고향 같다. 옥천 일대를 돌아보며 고향 같은 나무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동구나무 
    400년 된 느티나무를 충북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잔다리 마을에서 만났다. 마을 어귀 동구나무다. 지금처럼 도로가 생기기 전 좁은 흙길로 사람들이 다닐 때 도랑을 건너는 작은 다리들이 많아 잔다리 마을이라 불렀다. 도랑은 여름 내내 아이들 놀이터였다. 텀벙거리며 물에서 뒹굴고 놀기도 하고 가재 잡고 물고기 잡아 해먹는 날도 있었다. 여름은 금세 지나갔고 아이들은 등판까지 새까맣게 타서 허물을 벗기 일쑤였다. 도랑 옆 아름드리 고목은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말없이 바라만보고 있었던 것이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잔다리 마을 400년 정도 된 느티나무. 마을 동구나무로 성황당 돌무지와 정자를 품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 큰 꿈을 꾸며 대처로 나갔다. 자식이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는 동구나무를 떠나지 못했다. 대처에 나간 자식들이 고향을 찾아온다는 기약에 마음은 며칠 전부터 동구나무 앞에 나가 있었다. 흙먼지 날리고 덜컹대며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만 봐도 자식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식 생각만 하면 뙤약볕도 시원했고 아픈 곳도 멀쩡해졌다. 우리들 어머니 아버지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지금처럼 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지금 도로와 나무 사이 좁은 길로 버스가 다녔다. 그곳에 주막도 있었다. 마을에서 만난 아저씨 말씀에 따르면 100년도 더 된 주막이었다. 1994년 이전까지 주막에서 술을 팔았다. 주막은 슬레이트지붕을 얹은 낡은 집이었다. 그 전 주막 모습은 아저씨도 모른다신다. 다만 마을 어르신들이 예전에 주막에서 술을 먹던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에 주막 앞 느티나무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나무가 지금 모양이 아니라 둥치가 또 있었는데 고사해서 지금의 둥치만 남아 자랐다는 것이다. 
    주막이 없어지기 전까지 주막은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이는 사랑방이었다. 농사일손을 쉬며 더위를 피해 오는 곳이기도 했다. 막걸리 한 잔에 더위도 식히고 피곤한 몸도 추슬렀다. 옛 주막 앞에 성황당 돌무지가 있었는데 길이 좁아 버스가 다니기 불편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날 돌무지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빌며 마을제를 올린다. 그 성황당 돌무지도 400년 느티나무가 품고 있는 것이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잔다리 마을 400년 정도 된 느티나무. 나무 옆에(사진 오른쪽 빈터) 주막이 있었다.

뒷동산의 추억  
    옥천 구읍으로 가기 전에 안내면 도율리에 들러 두 마을에 있는 동구나무를 보기로 했다. 도율리는 도촌 마을과 율티 마을을 합친 이름이다. 
    도촌 마을의 원래 이름은 도가실이다. 옥천과 보은을 잇는 길목으로 옛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도가실에는 그들이 쉬는 숙소가 있었다. 도촌마을회관 옆에 34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을 빌며 매년 백중날 마을제를 지낸다고 한다. 나무껍질을 벗겨 불에 태워 몸에 바르면 부종이 낫는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진다.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정미소 건물에 추억을 떠올리며 율티 마을로 향했다. 율티는 밤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율티 마을 앞 도로 가운데 우뚝 선 나무가 보였다. 340년 정도 된 느티나무다. 원래는 마을 어귀에 있었는데 도로를 넓히면서 도로 중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쉴 수 없는 동구나무지만 잠자리 몇 마리 나무로 날아가고, 나무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명랑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도율리 도촌 마을회관 옆 340년 정도 된 느티나무


    옥천 구읍 탑산사는 마을과 어우러진 작은 절이다. 코로나19로 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마을 골목과 절이 있는 마을 뒷동산 주변을 돌아보며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탑산사에는 500년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그중 한 그루는 고사했다. 그 자리에 지금의 법당이 들어섰다고 한다. 나머지 두 그루 중 한 그루는 절 안쪽 깊은 숲에 있어 보지 못했고 다른 한 그루는 절 담장 부근에 있어 절 밖에서 볼 수 있었다. 탑산사에서 관리하는 100년 정도 됐다는 갈참나무와 대나무숲도 보았다.
    500년 느티나무 두 그루와 100년 갈참나무, 대나무숲이 있는 이곳은 탑산리골 뒷동산이었다. 옛날부터 참나무와 소나무, 대나무가 어울려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만난 아저씨가 그 뒷동산을 바라보며 추억을 풀어놓았다. 초가 사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마을 뒷동산으로 올라가다보면 꿩과 토끼를 만나기 일쑤였다. 뒷동산 숲길을 따라가면 마을을 품고 있는 높은 산줄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도로가 생겨서 지금은 그 길이 끊어졌다. 어릴 때 뛰어놀던 뒷동산의 추억이 묻어나는 얼굴에 깊은 주름이 남았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 96-3 탑산사에 있는 500년 느티나무와 대나무숲. 이곳은 옛날 마을 뒷동산이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탑산사가 있는 탑산리골 뒷동산을 뒤로하고 길로 나섰다. 향수길 어디쯤에서 차를 멈춘 이유는 길가의 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 담장 모퉁이 정자 옆, 꺾이고 잘린 가지 끝에 푸른 잎을 피워낸 나무 한 그루, 한눈에 보기에 예사롭지 않았다. 410년 정도 된 느티나무였다. 매년 봄 새잎이 나는 것을 보고 풍흉을 점쳤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다.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는 대보름제를 올리고 있단다. 
    동이면 남곡리 목사 마을 도로 가에 45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쉼터였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지금도 정자가 있지만 도로에서 나무로 올라가는 턱이 높아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느티나무 고목 건너편 길가 작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을 만들었다. 새로운 쉼터다. 그곳에서 만난 마을 아저씨는 나무가 한 오십년 정도 됐다고 한다. 새로 만든 쉼터 평상에 느티나무 그림자가 드리웠다. 길 건너 맞은편 산기슭, 더 이상 동구나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느티나무 고목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이원면 건진리 건진1길에서 550년 정도 된 느티나무를 보았다. 넓게 퍼진 가지는 그늘을 넓게 드리웠다. 느티나무 옆 정자에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여름일에 검게 그을린 아주머니가 하얀 머리 할머니께 우리 마을 나무 사진 찍으러 왔다며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호호할머니는 이가 드문드문 남은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신다. 
    아까부터 낯선 얼굴을 보던 강아지가 초롱한 눈빛을 이내 거두더니 다시 할머니 옆으로 가서 엎드리고 눈을 꿈벅거린다. 나뭇잎 하나 공중에서 천천히 떨어진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