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호스피스 완화 의학, 그 실체와 여러 가지 오해들

2022-09-22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의사가 알려주는 건강 이야기 (성인/노인)
호스피스 완화 의학, 그 실체와 여러 가지 오해들
'완화 의학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요즈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 안락사 등 웰다잉 관련 굵직한 안건들이 이슈가 되면서 이러한 안건들의 근간이 되는 호스피스 완화의학에 대한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완화 의학’ 하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과인지 명확하게 감이 잡히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은 이 완화 의학에 대해서 자세히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완화 의학이란 무엇일까요? 완화 의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의학계 내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분야에 속하는 의학의 한 분과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0년 완화 의학을 독자적인 분과로 인정하면서 이러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야기된 수많은 문제들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접근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라 함은 주로 만성 질환으로 암,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만성 간경화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에는 통증을 비롯하여 호흡곤란, 불면 등 여러 가지 의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 문제 역시 포함됩니다. 그래서 완화의학 팀은 의사, 간호사와 같은 의료진 외에도 사회 복지사, 채플린(chaplain, 기독교의 성직자뿐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의 영적 지도자를 일컫는 말), 자원봉사자 등이 포함된 다학제(multidisciplinary) 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완화의학과 환자분들은 심리 상담을 비롯하여 음악 치료/미술 치료/마사지 등의 여러 가지 돌봄을 받으실 수 있으며 종교가 있으신 분 혹은 종교가 없으신 분도 원하시면 영적인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뿐만 아니라 남겨진 가족들도 완화 의학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저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갑작스럽게 떠나신 환자분의 빈자리로 힘들어하시는 가족 분들을 종종 만나 뵈었던 터라, 그 가족 분들까지 함께 보살피는 완화 의학의 이러한 실용적인 정의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완치보다는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두는 접근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많은 분들이 완화 의학에 대해 오해하시는 부분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완화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매 년 4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그중 14% 만이 실제로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 완화 의학에 대한 인지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이 글을 통해 완화 의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신 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니 멋쩍어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반 대중 뿐 아니라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완화 의학의 올바른 정의와 효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사회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인 분야임에도 관련 법규 등이 미비하여 꼭 필요한 환자분들이 실제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둘째, 완화 의학에 대한 많은 오해 때문입니다.
    완화 의학은 암환자들만 받을 수 있다든지, 완화 의학 환자가 되면 더 이상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와 같은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진료를 받을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들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완화 의학은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질병을 가지신 환자분들께 다 해당되며 암 환자분들께만 제공하는 의료가 아닙니다. 그리고 완화 의학의 목적이 완치가 아니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것은 완화 의학 환자분들이 더 이상 완치 목적의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완화 의학과 호스피스의 개념을 잘못 혼용하여서 오는 오해입니다.
    완화 의학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기대여명이 6개월 미만으로 예상되는 임종 말기 환자를 위한 돌봄이 호스피스 돌봄입니다. 실제로는 완화 의학의 도움을 받으신 환자분들이 삶의 질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더 오래 사시기도 하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많은 수의 초기 암 환자 분들이 일찍부터 종양내과 진료와 함께 완화의학과 진료를 더불어 보십니다. 이러한 협진은 종양내과 의사가 항암 치료에 집중할 수 있고, 항암 치료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전담하는 완화의학 의사가 있어 통증, 구토, 호흡곤란, 불안, 변비와 같은 여러 증상들이 잘 조절되기 때문에 환자분들의 만족도도 높습니다. 
셋째, 완화 의학 정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의 부족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완화의학의 여러 가지 효용도 사회와 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연명 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9월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가정형 호스피스 시범 사업이 본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앞으로 한국형 호스피스 완화의료 정착에 더욱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상 완화 의학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좀 더 많은 분들이 웰다잉에 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